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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1955 351
소설의 계절에 그들의 찬란함을 풀어놓다│작가의 말 367
격동의 시대를 산 인간들의 서사│김미옥 371
저자 소개
저자 : 이화경
소설가. 1997년 『세계의 문학』에 소설 「둥근잎나팔꽃」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수화』 『나비를 태우는 강』 『그림자 개』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화투 치는 고양이』 『꾼-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탐욕』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열애를 읽는다』 『윗도리』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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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여름처럼 뜨거웠던 그들의 이야기

『비밀구락부』를 끌고 가는 힘은 한 사람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선이 겹쳐지고 어긋나는 방식에 있다. 누군가에게 애란은 미군의 치마폭에 숨은 변절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내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동지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친구, 연인, 혹은 파괴해야 할 적이거나 전리품이다. 남한 VIP의 수양아들이 될 뻔한 주드는 권력의 거대한 힘에 부딪혀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소설은 이 시선 중 어느 하나에 특권을 주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숭고한 정답’으로서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삶에 대한 증언을 차곡차곡 정교하게 쌓아올린다. 일견 개인의 삶의 한 조각으로만 보이던 이야기들은 그렇게 한 권의 대서사시로 완성된다.

이 다층적 구조는 단순한 형식적 묘기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한 가지 정답에 가두려는 폭력에 맞서는 이화경의 윤리적 소설론이다. 시점이 옮겨갈 때마다 독자는 앞서 내렸던 판단을 의심하게 된다. 선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악이 되고, 악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을 연민하게 된다. 인물들은 어느 한 장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미오기傳』의 작가이자 이화경의 소설을 오래 지지해온 김미옥의 추천사처럼, “악인의 독백에도 설득력을 부여하고 독자를 흡입하는 유려하고 독특하며 기이한” 작품이다. 이화경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게 인생이고, 이게 곧 역사라고.

그 겹겹의 시선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이는 곳에 바로 6·25라는 비극이 있다. 한때 같은 비밀을 나눠 가졌던 이들이 남과 북으로 갈라서고, 같은 말을 쓰던 사람들이 끝내 서로를 겨눈다. 첩보전의 승패도, 누가 옳았는지도 이 종착지 앞에서는 모두 허울 좋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화경에게 이들이 겪은 뜨거운 여름은 각각의 인물이 누린 찬란한 한 철인 동시에,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한 시대의 참극을 상징한다.

버둥거림으로 가득했던 찬란한 여름. 그 여름은 아름다웠으나, 결국 비극을 향해 질주했고, 바로 그렇기에 단 한 번만이어야만 했다. 『비밀구락부』가 박제된 신화를 깨부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어이 조명해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거대한 승패의 서사가 아닌 개개인의 삶의 총합으로 되돌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생존 자체가 삶의 승리가 되는 희비극

이화경은 1997년 『세계의 문학』에 소설 「둥근잎나팔꽃」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여러 권의 소설을 펴내며 자신만의 문체를 벼려온 작가다. 김미옥은 『비밀구락부』를 “등장인물들이 기이하게 독특하고, 열정적이면서 동시에 냉소적”이라고 평했다. 무엇보다 그 세계에서는 ‘생존’ 그 자체가 삶의 승리가 되는 희비극이 펼쳐진다고 짚었는데, 이는 끝까지 “Go Forward!”를 신조 삼아 버려지고 또 버려져도 멈추지 않았던 애란의 삶을 요약한다. 8년 만의 이번 장편에서 이화경은 평안도 사투리의 질긴 입말부터 첩보의 차가운 문법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한 사람을 선뜻 미화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은 채 역사의 서사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바로 김미옥이 이 소설을 두고 “사랑의 완결자이자 공동체의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라는 ‘만들어진 신화’가 끝내 전복된다”고 평한 까닭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화경은 백합 구근의 춘화현상을 이야기한다. 한겨울의 냉기를 충분히 견뎌낸 구근만이 비로소 꽃을 피운다는 것. 자신을 흙 속에 파묻는 것이 곧 찬란함을 향한 것이라는 역설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다. 소설 속 인물은 모두 그 시대라는 엄혹한 계절의 자식이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어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피어남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개인을 손쉽게 내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던 시대. 그러나 그 차가운 시절을 살아낸 이들은 나름대로 뜨거웠고 나름대로 찬란했다. 단 한 번도 다정한 적 없던 시대를 통과한 이들이 누렸던 단 한 번의 여름을, 이제 독자들이 마주할 차례다.

책 속에서

애첩, 남한 현지 세컨드 와이프, 부르주아 탕녀… 그리고 양키의 애인. 애란을 일컫는 숱한 호칭들이 그녀의 귀에도 들려왔다. 에이든의 통역을 해주는 그녀를 미군정의 흑치마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역사적인 수치를 혐오로 바꾼, 역사의 끓어오르는 용암에 데인 일그러진 흉터를 하찮다고 여기던 여자의 얼굴에 덮어 씌운 멸칭들이었다. _19쪽

어떤 예감이, 어떤 미래가 저절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 어쩌면 삶 전체를 바꿔버릴 수 있는 문지방 위에 서버렸다는, 문지방에 올라서면 안 된다는 옛 어른들의 금기를 기어이 어기고야 말 것 같다는 예감. 그를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설레면서도 두려운 예감이 들었다. _34쪽

오늘은 만나지만 내일은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절박감 때문에 그들은 밤마다 네 다리와 네 팔로 꼭 껴안았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기 위한 발작적인 안간힘 같기도 하고, 오래 기다려온 시간의 굶주림 같기도 한 사랑이었다. 날개를 접고 서로에게 곤두박질치기 위해 추락을 스스럼없이 감행하는 밤의 사랑, 숨어 있기 좋은 가난한 방의 연인. _135쪽

…안다, 그녀는. 필사적일 때 가장 외롭고 위험하다는 것을. 필사적이면 다른 너머를 내다볼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꿈꾸는 것은 단 하나, 살아남는 것,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로워지는 것. 그러니까… 고 포워드. _177쪽

이론은 세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미쳐서 돌진하는 세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조선 해방의 국제성을 그토록 설파했건만 정작 자신은 그 국제 질서의 톱니바퀴 사이에서 으스러지고 있었다. _233쪽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반만 맞는 말이다. 권력은 총구뿐만 아니라 정보에서 나온다. _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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