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춘원 이광수의 진짜 얼굴
저자는 이광수가 변절자로 낙인찍히게 된 결정적 지점을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지목한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앞두고 민족운동단체인 동우회 회원 181명 전원을 투옥하고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도산 안창호마저 옥고 끝에 순국한 후 지도자의 책임을 떠안은 이광수는 감옥에서 신음하는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스스로 일제에 굴복하는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동우회를 자진 해산했으며, 그 대가로 1941년 동지들의 무죄 석방을 이끌어냈다. 저자는 이광수의 이러한 선택이 일신상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민족의 지도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십자가처럼 내던진 비극적 희생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고통스럽고 처절한 희생의 흔적이 책 표지에 실린 두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책 표지에는 두 달의 시차를 두고 찍힌 춘원의 얼굴이 나란히 실려 있다. 1937년 6월, 《문장독본》을 출간하며 안경을 쓴 채 지적인 문인의 자태를 뽐내던 이광수의 모습과 불과 두 달 뒤인 1937년 8월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받아 삭발을 한 채 한없이 어둡고 수척해진 모습이다. 저자는 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컷의 사진을, 책의 얼굴인 표지에 반드시 담아달라 했다. 이 외모의 변화야말로 춘원이 감내해야 했던 시대의 폭력과 참혹한 고통을 가장 직관적으로 대변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저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친일 행적들 역시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다른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광수에게 쏟아지는 가장 뼈아픈 비판인 '학병 지원 권유'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의 무자비한 보복으로부터 청년들과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당시는 학병 지원을 거부할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철저히 탄압받고 가혹한 노동 현장으로 징용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에 이광수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병역이라면, 차라리 군사 훈련을 받아 장차 독립군의 지도자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훗날 당시의 비정의성과 반민족성에 대한 재판이 일제가 아닌 광복된 조국의 법정에 올려진 것만으로도 만족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듯 저자는 일제강점기 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조직이 해체되던 상황 속에서, 이광수가 고민했던 선택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당대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이광수가 민족 지도자들의 생존과 석방, 민족문화의 보존을 위해 스스로 모든 비난을 감수하는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광수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 속 인물을 영웅 아니면 악인으로만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시대를 이해할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광수의 친일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무정』과 『흙』을 통해 근대문학의 기초를 놓고, 한글 문장과 근대적 서사 형식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던 그의 공적 또한 함께 살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 문체와 근대적 글쓰기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이광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춘원 이광수』는 결국 이광수 개인에 대한 책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단순히 이광수를 다시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자신의 기준 역시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이광수를 완전한 영웅으로도, 완전한 악인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를 시대의 거대한 폭풍 속에서 고뇌했던 한 인간으로 발자취를 따라가 볼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이 책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