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각종 인문학 강연의 유행, 실용주의 중심의 학문, 지식인의 실종, 기업형 대학……
인문학, 이대로 가르치고 배워도 되는 걸까?
대학, 교수, 지식인, 언론, 출판계에 인문학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다. ‘인문 경영’, ‘소통의 인문학’, ‘도심 속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등의 이름으로 각종 행사와 특강이 넘쳐난다. 대학을 벗어나 단체, 도서관, 백화점, 박물관 등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겠다며, 다양한 인문학 연구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사...
각종 인문학 강연의 유행, 실용주의 중심의 학문, 지식인의 실종, 기업형 대학……
인문학, 이대로 가르치고 배워도 되는 걸까?
대학, 교수, 지식인, 언론, 출판계에 인문학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다. ‘인문 경영’, ‘소통의 인문학’, ‘도심 속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등의 이름으로 각종 행사와 특강이 넘쳐난다. 대학을 벗어나 단체, 도서관, 백화점, 박물관 등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겠다며, 다양한 인문학 연구공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인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경영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인문학과 접목된 연구가 눈에 띈다. 인문학이 전문 연구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인문학은 모든 학문과 계층을 넘나들며 삶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인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깊어졌는가? 우리가 이 질문에 선뜻 답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문학이 보편화, 대중화되는 동안 정작 인문학의 발본지인 인문대학이 자리를 잃어갔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지식인의 종말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인문학의 유행과 공존하는 한국사회. 이러한 상황에서 인문학과 관련한 종사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좀 더 정확히 말해 인문학은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일까? 인문학 교육 제도와 인문학을 가르치는 지식인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인문학의 비전을 꾸준히 제시했던 대표적인 인문학자다. 철학과 교수, 편집자, 번역자, 서평가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그는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갖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1970년대 미국 대학의 인문학 풍토와 교양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해 한 권으로 담은《인문학의 미래》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는 인문학 대학의 현실을 읽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인문학 교육의 목표, 비판적인 독서 방식, 종교 교육 및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이 담겨있다. 국내에 1998년에 초역?출간된 이 책은, 당시 잘못된 번역과 무책임한 편집으로 비판을 받으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30년 전의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을 볼 때,《인문학의 미래》의 재번역과 재출간은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카우프만이 던지는 메시지는 인문학의 미래를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틀을 제공할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인가, 인문‘대학’의 위기인가?
괴테는 통찰가 유형, 한나 아렌트는 저널리스트 유형이라고?
인문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능력은 무엇인가?
2011년 9월, 숙명여대 여성학통합대학원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학원생 정원이 줄어 더는 학과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국대도 이미 2005년 전공자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독문과와 불문과를 통합했고, 동국대 독어독문학과도 같은 이유로 2010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유행하지만, 정작 연구의 근원지인 대학에서 인문학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취업이 잘 되지 않는 비인기 학과의 수업은 폐강되기 일쑤고, 인문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줄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연구소를 만들고 프로젝트 진행비로 수많은 비용을 지원하지만, 막상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졸업자들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다시 말해 인문‘대학’ 즉 인문학 연구자들이 종사하는 공간과 인문학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위기인 것이다.
카우프만이 이 책에서 주로 겨냥하고 있는 독자 역시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인문학자, 인문학 대학의 교수들, 인문학 행정가들이다. 그들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묻는 것이 곧 인문학의 위기를 타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논의의 탄탄함을 위해 카우프만은 먼저 1장에서 인문학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통찰가 유형, 사변가 유형, 저널리스트 유형, 소크라테스 유형이 바로 그것인데, 그는 대학에 무엇보다 토론과 비판능력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소크라테스 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형이 우월하다는 가치판단이 아니다. 주로 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특정한 학파에 속해 연구를 하는 사변가 유형만이 넘쳐나면서 벌어진 인문학 대학의 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은 더 이상 인문학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아주 좁은 분야에만 몰두하거나, 유행하는 이론을 따라가며 글을 발표하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비전을 가진 괴테 같은 ‘통찰가 유형’이나 ‘소크라테스 유형’의 학자들은 대학에 남기가 힘들어졌고, 자연히 학생들도 인문학을 배우며 인간의 가치나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카우프만의 유형 분류에 따르면 저명하다고 여겨지는 학자들도 비판 대상이 된다. 가령 한나 아렌트의《전체주의의 기원》의 주요 개념인 ‘악의 평범성’은 당시 끊임없이 뉴스에 등장하던 것으로, 그 책은 순간적인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저널리스트 유형의 저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인문학의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인문학자이며, 이 위기를 가장 소리 높여 경고해야 하는 사람들도 바로 인문학자다. 인문학의 위기가 온전히 대학교육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문학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방기했을 때 곧 인문학의 위기가 찾아온다. 지금처럼 말이다.
남발하는 서평, 무비판적인 전집 출간, 동일한 고전의 반복되는 번역……
왜 그 책을 기획하고, 번역하고, 소개하는가?
그렇다면 인문학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서평, 번역, 편집은 어떠한가? 이것들은 인문학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카우프만은 2장 〈독서의 기술〉에서 텍스트를 읽는 방식을 성서해석적 독서, 독단론적 독서, 불가지론적 독서, 변증법적 독서인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중에서 텍스트의 저자와 대화를 시도하고, 시대배경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변증법적 독서’를 강조한다. 그리고 연장선상에서 책을 읽는 데 영향을 주는 편집자, 번역가, 서평가의 윤리에 대해 논한다. 인문학자들의 글을 받아 출판하는 편집자나 출판사, 그들의 책을 소개하는 잡지사는 인문학의 미래를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을 번역하는가의 문제는 곧 출판사의 출판 목적과 결부되고, 어떤 책을 서평으로 다룰 것인가의 문제 역시 편집자의 판단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역시 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카우프만은 우선 다양한 잡지의 신간 서평에 숨어 있는 학파들 간의 권력을 읽어낸다. 서평은 강력한 홍보방법이자 저자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장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힘이 있다. 그렇지만 학파들 간의 세심한 의견차를 읽어내기 힘든 독자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동일한 고전을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반복해서 출간하는 현상, 자신의 논문 주제임에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번역본에 의존해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상황, 비판적으로 가려내지 않고 저자의 모든 전작을 전집으로 담는 출간 방식에 쓴소리를 가한다. 기획자와 번역자는 이 책을 왜 출간해야하는지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고전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인문학의 역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한다.
비전은 가르칠 수 있는가?
인문학 교육은 다양한 사회현상을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