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완전한 등반과 이상향의 여자를 꿈꾸었던‘
자유로운 영혼, 게리 헤밍의 일대기
1966년 알프스의 드류 서벽에서 두 명의 독일인 등반가를 극적으로 구조해냄으로써 게리 헤밍은 순식간에 영웅 대접을 받으며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후 그 구조작업은 ‘샤모니의 전설’로 남게 된다. 평생을 완전한 등반과 이상향의 여자를 꿈꾸며 방랑자로 살았던 헤밍은 끊임없이 영적인 균형을 찾고 있었으며, 그가 올바른 균형을 찾은 유일한 분야는 등반이었다. 등반을 통해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드류 구조작업과 같은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등반에서조차 기록이나 흔적을 남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헤밍으로서는 그 명성의 무게조차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한없이 쾌활하고 감성적이며, 물불 가리지 않는 열정과 바다보다 깊은 우울이 함께 공존했던 치명적인 이 산악인은 그렇게도 추구하던 완벽한 균형에 결국 도달하지 못한 채 거듭된 좌절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등산 가이드이자 암벽등반 강사였던 남편과 알프스에서 지내던 미렐라 텐데리니Mirella Vescovi Tenderini는, 그 유명한 게리 헤밍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작 아무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년에 걸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신화 같은 한 산악인의 이 일대기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현대의 몽상가들과 반항아들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산의 방랑자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 전설적인 그의 등반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내면의 세계를 잘 풀어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분명 진정한 모험정신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서문
산의 방랑자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 전설적인 그의 등반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내면의 세계를 잘 풀어내준 미렐라 텐데리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독자들은 분명 이 책을 통해 진정한 모험정신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p.8
영웅의 탄생
명성은 마치 독주와도 같아서 들이키는 순간에는 그 쓰디쓴 뒷맛을 생각하지 못하고, 알콜이 떨어지면 심각한 금단 증상을 겪을 수 있다. 헤밍의 친구들 중에는 명성으로 그의 머리가 흐트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콧대가 높아져서가 아니었다. 헤밍은 자신을 칭송하던 사람들의 조롱은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즉시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답이 진지하지 못하면 몹시 화를 냈다. 결국 그는 먼저 소개 받고 축하 받는 데 익숙해졌던 것이고, 게다가 그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다는 그의 모순된 본성의 일부였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가 점차 안개 속으로 사라져간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몹시도 슬퍼했다. ---p.35~36
피에르 마조는 헤밍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인류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사람과 사물에 대해 지금과 같은 철학적 인식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p.37
유별난 거짓말쟁이
헤밍의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존재 자체를 가볍게 넘기고자 한 그의 욕망은 인정받고 칭송받으려는 끊임없는 욕망과 정면으로 대립된다. ---p.42
물론 인간은 모순덩어리이긴 하지만 헤밍 안에 잠재된 모순은 그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상당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마음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을까? ---p.43~44
풋내기 시절
“공군사관학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게리에게 중요한 시기였어요. 첫째는 그가 비행기술을 배우려 했기 때문이죠. 자유를 사랑하는 모험심 가득한 젊은이에게 하늘을 나는 것보다 더 큰 야망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사관학교 입학은 큰 영광이고 갈망하는 목표였습니다. 신체검사를 모두 통과해야 겨우 입학할 수 있었죠. 분명 처음엔 기뻐했겠지만, 결코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의무와 규칙에 갇히고 만 거에요. 저항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p.56
그로부터 10년 후 헤밍이 제니 호숫가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을 때 친구들은 아무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토록 생기발랄하던 사람이 자살하리라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경쟁 관계들 속에서 구실을 찾으며, 어떤 싸움으로 인해 생긴 사고이거나, 심지어는 피살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이로써 헤밍의 죽음은 여러 가지 소문들만 무성하게 낳은 채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p.78~79
중요한 한 해
“… 우리가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규범에 어긋나는 길을 일부러 선택했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경멸과 삶에 대한 우리의 진실을 대변한다. 즉 오늘날 사회의 위선은, 받아들이기에 그다지 우아한 대상이 아니라는 걸 모든 사람 앞에서 밝히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악에 대해 단순히 불평만 해서는 안되며, 행동하고, 길을 보여주고, 따라야 할 본보기를 제시해야 한다. …” ---p.133~134
스톡홀름에서 마라케시로
“알다시피 난, 꿈의 왕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현실의 왕국으로 이끄는 게 바로 산이지요. 생사에 맞닥뜨리면 진정으로 자신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p.157
60년대의 영웅
헤밍은 마약에 중독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고양된 상태의 정신과, 환각 속에서 자신이 깨닫는 것이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헤밍에게 마약은 하나의 습관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고 눈앞의 현실을 초월하도록 돕는, 마치 산과 모험처럼, 순수한 경험과 연구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p.205
죽음의 전조
그러면서 그는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또는 혼자서 더 자주 산으로 갔다. 그는 눈과 얼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으며, 비록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하긴 했어도 그 두려움까지도 극복했다. ---p.213
제가 알피니스트라구요?
드류 구조작업 이후 그는 자신을 알피니스트라고 언급하는 기자들에게 종종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제가 알피니스트라구요? 전 모험가입니다.” 그는 ‘모험을 추구한’ 발터 보나티를 가장 존경한다며, 여기서 모험이란 모든 측면과 모든 방향에서의 연구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p.218~219
변화의 시기
“기자들은 완전히 검은 것이든, 완전히 흰 것이든, 독자들에게 보여줄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난 참 운이 좋다! 여전히 나를 흰색으로 칠해주고 있으니. 아주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고, 이런 진실의 결핍이 내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p.243
한계상황
평생 동안 완전체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던 헤밍은 끊임없이 영적인 균형을 찾고 있었다. 헤밍이 올바른 균형을 찾은 유일한 분야는 등반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복합적인 것들로 한 남자의 삶을 이야기면서(장점이나 약점만을 가진 알피니스트나 학자, 예술가는 없다) 알피니스트로서의 헤밍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다. 등반을 할 때 헤밍은, 다른 때는 너무나 쉽게 낭비했던 그 특별한 자질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 등반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발자취를 남겼다. ---p.272
그리고 영웅으로서의 역할은 헤밍에게 완전히 안성맞춤이었다. 그가 바로 선과 악을 모두 대표했던 당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이란 당연히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모든 문화권에서, 자신과 타인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데는 영웅의 죽음이 필요했다. 어쩌면 헤밍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일찍 죽을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순순히 그 운명에 따랐을 뿐일지도 모른다.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