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도자가 겪는 도덕적 딜레마와 마키아벨리의 솔직한 해결 방안
1513년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가 지은 책《군주론》은 이러한 지도자의 통치 기술과 자질을 논한 책이다.
당시 마키아벨리가 본 이탈리아의 가장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주변 강대국인 프랑스와 스페인이 이탈리아에 오랫동안 큰 피해를 끼쳤음에도 이탈리아에는 그것을 저지할 만한 어떠한 강력한 세력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혼란의 시발점은 주변국의 성장을 눈여겨보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반도 안에서의 주도권 문제에만 관심을 갖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근시안적 정책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고유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주도권 싸움을 위해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외국 원군과 용병군을 대신 사용하려다가 오히려 이들 세력에 휘둘리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분열된 도시국가들을 통일하고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유린당하는 사태를 극복하는 작업, 바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할 이탈리아의 새로운 지도자를 위한 책이《군주론》인 것이다.
과연 그러한 일을 누가 맡게 될지 모르지만 만일 그러한 인물이 나올 경우 그가 현실적으로 겪게 될 여러 가지 어려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과 자세가 필요한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리타분한 도덕적 훈계도 아니고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적 정치체제의 논의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각종 장애를 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기술적인, 정치공학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러한 공학적 논의에서는 위선, 권모술수, 부정직한 현실정치의 폭로 등과 같은 부정적인 현실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현실세계의 부정적인 모습과 함정을 알지 못하면서 현실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정치인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400년대 인문주의자들이 이상적 군주들이 갖춰야 할 자질로서 너그러움, 자비심, 신앙심, 겸손, 중용적 태도, 정직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주위에 보는 눈이 있어 이러한 자질들을 반드시 따르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지만 군주들이 진정으로 실천할 경우에는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려 무엇이 실제 행해지는가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보전보다 파멸을 훨씬 빠르게 배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점이 착하다는 것을 공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반드시 파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권력지위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군주는 착하지 않을 수 있음과 착하지 않음을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본문 15장)
이 말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비열한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한 성공이 그 비열한 행위를 정당화해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비열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고, 정치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도덕적 선악과는 별도의 효용성이라는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에 있었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이 겪는 도덕적 딜레마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점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러한 딜레마를 그대로 사실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관심하다기보다는 그러한 도덕적 갈등은 현실 속에서 정치인 자신 외에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가 강조하는 지도자의 자질(비르투)은 단순히 무력이나 완력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주어지는 도덕적 딜레마를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능력도 포함하는 것이라 하겠다.
최신의, 그리고 가장 신뢰할 만한 이탈리아어 원본 번역!
국내에 군주론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어 원본을 번역 대본으로 삼은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에 관한 학술적 토론이나 논문에서 이용될 수 있는, 학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우리말로 된 텍스트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발간되었다.
이 책을 포함해 지금까지 20권의 'SNUPRESS 동서양의 고전' 총서를 내고 있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은 고전의 선정기준뿐만 아니라 해당 고전의 번역 대본을 선정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어는 중세 이탈리아어일 뿐 아니라 그 자신 적지 않은 라틴어를 섞어 쓰고 있고, 또한 토스카나 방언, 그리고 피렌체에서만 독특하게 사용하던 표현 등을 마구 섞어 쓰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마키아벨리 작품 번역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출간된《군주론》리날디(Rinaldo Rinaldi) 판에서는 최신의, 그리고 가장 신뢰할 만한 잉글레제(Inglese) 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단어와 특수한 표현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 마키아벨리가 언급하지 않고 사용한 고전 텍스트의 출처와 그 정확성 여부, 마키아벨리의 다른 글 속에서의 반복되는 언급과 역사적 사례에 대한 설명 등을 붙여 마키아벨리 연구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군주론》이탈리아어 번역본은 가능한 한 이 모든 것을 번역문 속에 담아낸 결과물이다.
책 속에서
[소요를] 멀리에서 예견하면 대비책은 쉽게 마련되지만 [소요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질병이 치료될 수 없기 때문에 약은 시간에 맞지 않는 것이 된다. 이것은 의사들이 폐결핵(etico)이라고 하는 병과 같은 증세를 보인다. 즉 이 병의 초기에는 치료가 쉬우나 알아내기가 어렵고 초기에 알아내지 못해 치료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알아차리기는 쉽지만 치료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은 국가의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3장)
새로운 체제를 앞장서서 도입하는 것보다 실행이 더 어렵거나, 성공이 더 의심스럽거나, 그리고 처리가 더 위험한 일도 없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질서의 도입자들은 구체제하에서 이익을 얻던 사람 모두를 적으로 만들게 되고 신체제에서 이익을 얻게 될 모든 사람들은 단지 미온적인 지지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온적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법률을 자신의 편에 갖고 있는 적대자들에 대한 공포로부터, 또한 부분적으로는 확실한 체험이 있지 않으면 실로 새로운 일[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신으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적대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는 지지자들이 미온적으로 방어하는 사이에 언제든지 당파적 열성을 바탕으로 공격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미온적으로 방어하는데 이들과 함께한다면 새로운 체제의 선도자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훌륭히 토론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개혁자들이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서있는지 아니면 타인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의 작업을 추진함에 [도움을] 빌려야만 할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이들은 항상 나쁜 결말을 보게 되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힘에] 의존해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다.(6장)
[군주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새로운 이익을 얻게 되면 오래된 상처는 잊게 된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판단을 잘못하는] 것이다.(7장)
평민들의 후원을 얻어 군주가 된 사람은 평민을 자신의 지지자로 유지해야 한다. 평민은 억압받지 않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일은 쉽다. 그러나 평민의 입장과는 반대에서 귀족의 후원을 통해 군주가 된 사람은 다른 무엇에 앞서 평민을 자신의 편에 서게끔 노력해야만 한다. 군주가 평민의 보호자로 나선다면 그것도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쁜 일을 행할 것으로 예상하던 군주로부터 좋은 일[=은혜]을 얻게 되면 그 시혜자에게 더욱 더 애착을 느끼기 때문에 평민들은 신속하게 이러한 군주에 대해 자신의 후원을 통해 군주 지위에 오른 경우보다 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제9장)
시민과 백성은 통상적으로 행정관으로부터 명령을 받게 돼 있어 ... 위기 시 군주에게는 절대적 권위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러한 불확실한 시기에 그는 항상 신뢰할 만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 죽음이 멀리 있는 이러한 때[=평화 시]에는 모두가 달려와서 약속하고 군주를 위해 죽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국가가 시민들을 필요로 하는 역경의 시기에는 소수만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시민이, 항상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그 자신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두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항상 충실할 것이다.(9장)
자국 군대 없이는 어떤 군주국도 안전하지 못하며 역경 시에 자신 있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비르투[=군대]를 갖지 못하면 운(運)에 전적으로 따라야만 한다. ... “자신의 무력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명성보다 더 허술하고 불안정한 것은 없다”라는 말은 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자 판단이었다.(13장)
너그러운 씀씀이만큼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 없다. 당신이 그것을[=당신의 자산을] 사용하는 동안 당신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따라서 당신은 가난해져서 경멸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가난을 피하기 위해 탐욕적이고 가증스러운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 가운데 군주가 반드시 조심해야 할 일은 경멸이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인데 씀씀이의 너그러움은 이 두 가지 모두로 당신을 인도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명과 함께 증오심도 유발하는 너그럽다는 명성 때문에 탐욕스럽다는 평판을 초래하기보다는 증오심 없이 [오직] 오명만을 유발하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유지하는 일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16장)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랑받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받게 만드는 사람을 해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의무의 고리에 의해 유지되는데 사람들은 비열하기 때문에 그들의 효용상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그것을 깨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의 공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는 사랑을 얻지는 못해도 증오는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증오를 받지 않는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17장)
군주는 짐승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그는 여러 종류의 짐승 가운데 여우와 사자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덫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사자에게만 의존하는 사람은 [정치세계의 성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제18장)
최선의 성채는 백성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일단 무기를 잡으면 그들이 도울 수 있는 외국 세력은 항상 존재하고 백성들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어떠한 성채도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성채를 건설하는 군주나 그리하지 않는 군주 모두에 동의하지만, 성채만 믿고 백성들로부터 미움받는 것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 군주는 누구라도 비난하고자 한다.(20장)
많은 사람들은, 어떤 군주가 현명하다는 명성을 갖는 것은 자신의 자질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위에 확보하고 있는 훌륭한 조언자들 때문에 그러한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잘못된 것이다. ... 한 사람 이상의 조언자들로부터 조언을 받게 될 경우, 스스로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조화된 조언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다양한 조언들을 하나로 조화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모든 조언자들은 각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데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도 또 교정하지도 못한다. ... 군주의 현명함이 좋은 조언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좋은 조언은, 그것이 [한 사람에서든 여러 사람에서든] 어디에서 비롯하든 간에, 반드시 현명한 군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2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