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그의 희생과 실패의 기억은 지나가버린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바탕에 녹아있는 것이다.”
당산 김철은 민주사회주의를 추구하다가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의 실패는 그냥 실패로만 남지 않았다. 홍을표 전 가천대학교 교수는 “그가 밟아온 발자취 곳곳에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구현된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깃들어 있다. 또한 하나의 통일된 근대국가로서의 자유(자주화)에 대한 갈망 속에 김철 선생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다”라고 말한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개인적 이해와 야심을 이루는 방편이 아니라, 민족과 민중의 편에서 가다듬어온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그는 어떤 고매한 정치적 목적이라도 부정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신념을 평생토록 견지한 고고한 이상주의자였다”라고 평했다. 한편 강원용 크리스천아카데미 이사장은 김철은 “사회주의의 이상과 민족분단의 현실, 감수성의 문학과 이성의 정치라는 양자 사이의 긴장 관계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지적인 성실성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긴장된 성실성은 드높은 이상을 추구한 혁명가로서의 비전과 동시에 현실 속에서 자기규정의 엄격함을 놓치지 않은 현실주의자로서의 인식을 아우르려는 내면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라고 했다.
김철은 현실을 떠난 이상을 품은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현실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했고,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찾기 위해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고군분투했다. 그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 그가 제시한 비전들은 오늘날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노동자의 정치 참여 보장, 복수노조 인정,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 등 그동안 실현된 진보적 정책들은 이미 김철이 꾸준히 주장해 온 것이다. 그의 선구적 안목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 해결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또한 평생 일관된 신념과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한 그의 삶의 궤적은 그 자체로 감동과 울림을 준다.
동시대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으로 그려낸 ‘인간 김철’
책은 크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조시, 축시, 간추린 김철 어록과 김철에 단상을 간략히 보여준다. 제1부는 김철과 평소 교류한 지도급 인사들의 김철에 대한 평가와 소회를 담았다. 이만열, 서영훈, 강원용, 이종찬, 최일남 등 김철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고비마다 고민을 함께했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김철의 삶과 그의 지향을 그려본다.
제2부는 군사독재 시대, 척박한 정치환경에서도 오로지 사회민주주의의 이념하에 김철과 통일사회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활동을 함께한 동지들의 글을 통해 정치인 김철과 한국 혁신정당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추체험할 수 있다.
제3부에서는 20대에 ‘평생 재산을 갖지 않겠다, 한 평의 부동산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철이 일상에서도 얼마나 투철한 사회주의자로 살았는지를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한 가족과 친지의 증언을 통해 살펴본다.
당산(堂山) 김철에 대하여
1926년 함경북도 경흥 출생으로 1945년 경성(鏡城)고보를 졸업한 뒤 1949년 일본 도쿄대학 역사철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49년 《민주신문》 편집국장,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냈고, 1955년에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당산은 정치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사회민주주의의 사상적 체계를 정립하고 세력을 조직화한다. 1957년 민주혁신당 창당과 함께 대변인 활동을 시작으로, 1961년 서상일, 김성숙 등과 통일사회당을 창당하고 국제국장으로 활약했으며 1970년 당 위원장에 이어 대통령후보가 되고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한다.
치열한 국내 정치 참여와 동시에, 당산은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도 앞장선다. 그에 힘입어 1969년 통일사회당이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정회원으로 승격하고, 그는 1970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사회당기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4년 런던 SI 지도자 회의, 1977년 도쿄 SI 지도자 회의, 1980년 마드리드 SI 대회 등에 참석해 한반도 내에 자행되던 독재정치를 규탄하고 국제 연대를 도모하였다.
그는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유신체제에 맞서 대연합을 통해 민주화 투쟁에 나선다. 1969년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며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을 역임하였다. 그로 인해 긴급조치 9호와 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다.
1980년대 신군부의 탄압은 계속되었지만, 1981년 사회당,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에 각각 선출되고, 1984년 한국사회민주문화연구소를 창립하는 등 다각도의 혁신정치 활동을 이어간다. 1992년 소련, 중국, 유럽, 중동 등 순방 여행 후 병환에 시달리다 1994년에 눈을 감는다.
저서로는 민족학생운동의 이념, 떳떳한 민족으로 살자, 일본. 민주화의 좌절, 새 역사의 구상(미발표 유고)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