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이 사람은 세상 어느 먼 곳에서 오셨나 보다. 스위스 같은 곳,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 시드니 같은 곳, 울루루같이 멀고 또 신비로운 세상에서 오셨나 보다. 먼 옛날로부터 오셨나 보다.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때, 부처님과 예수님이 살아계시던 때, 깨달음과 사랑을 펼쳐놓으시던 때,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가 귀하게 태어나 온갖 고초를 겪던 때로부터, 반조 패터슨이 살던 때로부터 오셨나 보다. 아니, 어쩌면 아름다운 저 동화 속 나라에서 나오셨나 보다. 측백나무와 앵무새와 애버리지니의 삶이, 어둠과 달빛의 신비로움이, 칼끝의 아슬아슬함이, 한보의 안쓰러운 삶이 함께하는 이 시집에서, 나는 남태평양의 고운 바닷물에 씻어 올린 언어들을 본다. 깨끗하고, 맑고, 그리움과 사랑 가득한 시들, 상록의 나무처럼 늘 거기 푸르게 서 있을. 깊고 아름다운 시인의 언어다.
―방민호(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
강애나 시인이 등단한 지 23년이 되었다. 해외 교민을 통틀어 이처럼 부지런한 시인이 또 있을까? 한국과 호주를 오가면서 부지런히 쓰고 고치면서, 정리하고 송고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23년이 되었다. 강 시인은 내 강의를 한 학기 들은 제자다.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에 등록해 강의를 들었을 뿐 아니라 특별과외지도를 요청, 학교 근처 카페에서 예닐곱 번 따로 만나 시를 봐주기도 했다. 2011년에 낸 시집 『어머니의 향기』의 해설을 썼던 것도 그 당시에 그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에 음력설 무렵에 네 번이나 가서 보름 동안 박덕규 교수가 수필 작법을, 내가 시작법을 교민들에게 지도하였다. 제6시집이 2024년 11월에 낸 『내 마음속 모차르트』인데 출간 이후 대단한 몰입감으로 써 또다시 60편의 시가 쌓였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을 ‘역사의식’과 ‘사회의식’과 ‘민중의식’으로 꼽고 싶다. 물론 본인과 가족의 소소한 일상사가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시의 진폭이 아주 넓어진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근년에 들어 미국에도 여러 차례 간 것으로 아는데, 호주 대륙과 북미 대륙을 보아서 그런지 호방한 대륙의 기질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소박한 ‘서정’에서 튼튼한 ‘서사’로 나아간 것이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인의 말
어린 시절 나는
장미 가든의 향기를 먹고 살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 믿으며
가슴속에 작은 『시크릿 가든』을 품고 자랐다.
그 정원이 나의 첫 번째 시집이 되었다.
사춘기에는
엄마의 마음이 삼촌과 이모에게 먼저 가 있던 날들,
미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들이
제2집 『어머니의 향기』로 피어났다.
대학 시절,
데모대에 휘말려 휘경동에서 아현동까지 걸어오던 날들.
연세대의 함성이 아현동까지 밀려오던 혼란 속에서
겨우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밤,
세상의 오아시스가 말라가는 듯한 허무는
제3집 『오아시스가 말라가다』가 되었다.
그 후,
최동욱의 ‘한밤의 음악 편지’를 들으며
밤별을 마중하던 고요한 시간.
그리움과 기다림의 숨결 속에서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사우디로 떠났다.
나는 친정의 은근한 눈치 속에서
또 하나의 기다림을 건너며
제4집 『밤 별 마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주에 와서는
남편과 함께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새벽마다 울리던 범종 소리와
어둠을 가르던 맥파이의 울음은
제5집 『범종과 맥파이』가 되었다.
낯선 땅에서
다섯 살 첫 딸의 손을 잡고 살아내야 했던 날들.
언어도, 아이 학교도,
나의 대학과 직장도 버거웠지만
힘겨운 날마다
모차르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였고
그 시간은
제6집 『내 마음속 모차르트』로 남았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마저
시가 되어 내 안에서 길을 찾았다.
이렇게 나는
「붉은 결」의 시간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일곱 번째 시집 앞에 다시 선다.
2026년 6월
호주 시드니에서
책 속에서
<붉은 결>
남편 어깨에서
스위스의 찬 공기,
사우디의 모래바람,
2년간의 먼지가
떨어졌다.
겨울 창문엔
오션을 스치고 온
김이 맺혔다.
시드니의 바람이
세 해를 쌓는 동안,
어디선가
울음이 날아왔다.
비행기 표 한 장과
늙은 심장 하나,
오지의 문이
환하게 열렸다.
늘어난 시간은
저녁 빛 아래
말없이 접혔다.
두 개의 대륙
허공에서 느슨히 풀린
붉은 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