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말은 어떻게 명언이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짓이 되는가
우리를 속이고 감동시켜 온,
우습고도 서늘한 인용과 왜곡의 역사
이 책에는 플로베르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플로베르에서 한번 출발해 보자. 다른 이유는 없고, 단지 나무위키의 ‘명언’ 항목이 플로베르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까닭이다. “격언: 결코 새롭진 않지만 언제나 위안을 준다.(MAXIME: Jamais neuve mais toujours consolante.)” 플로베르의 사후 발표작 『통상 관념 사전』에서.
격언에 관한 정의로서는 이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나도 마침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는 말, 느낌표를 띄우는 말이 격언이 된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퍽 위로가 되는데, 어록까지 기억될 만큼 유명한 양반이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면 더더욱. 거기다 약간의 운율과 유머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문제는 플로베르가 썼다는 이 ‘사전’의 진짜 성격이다. 이번에는 국내에 이 책을 번역한 책세상 출판사의 도서 소개를 인용해 보자. “상식적으로 분명하고 명쾌하다고 생각되는 추론 방식이나 정의(正意)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지식과 사고 체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해 준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해당 항목에서는 이 책을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상투적인 표현(cliche)들을 모아 놓은 사전”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름 모를 인터넷 필자의 초점은 ‘위안’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플로베르의 방점은 ‘진부함’에 찍혀 있었다. 플로베르는 격언을, 아니 격언을 되는 대로 가져다 쓰는 동시대 부르주아들의 지적 게으름을 비웃으려 했다. 사유를 생략하고 기분만 소비하는 말의 유통 방식을. 그가 오늘날 우리의 언어 생활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경구, 명언, 격언, 아포리즘…
현란한 말들의 난장판 속에서
오해가 번식하는 말의 생태계를 탐구하다
잠깐의 위로로 그칠 따름이라면 달리 트집 잡을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명언’을 사용하는 방식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위무에 그치지 않을 때가 잦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명언은 우리의 막연한 믿음을 확증해 준다. 단지 유명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말의 권위는 정당화되고 널리 퍼진다.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말을 바꾸고, 또 다른 이는 무심코 와전된 말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맥락은 어느새 지워져 버리고, 그 말을 끌어다 쓰는 현재의 형편 또한 흐려지고 만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생각보다 문장을, 문장보다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하여 오해는 상식이 되고, 날조는 교양이 된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처럼 왜곡된 통념의 역사를 파고든다. 저자 박강수는 6년 차 기자로, 인턴기자 시절 몸담았던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에서 ‘가짜명언 팩트체크’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 닳고 닳은 말의 소비와 유통에 관한 일련의 문제의식은 줄곧 이어져, 이후 《한겨레신문》에서 ‘박강수의 허언록’ 시리즈로 확장되었다. 그 오랜 탐색의 결과물을 깊이 있게 보강하여 묶어 낸 것이 바로 이번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명언의 진위를 판정하고, ‘사실은 이렇습니다’ 하는 투로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들을 추려 놓은 트리비아 모음집도 아니다. 이전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다시 살피면서, 저자는 오해를 일소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해를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또한 재밌다는 점”을 배웠노라고 고백한다. “명언의 진가(眞假)를 가리는 작업은 일종의 맥거핀이나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를 호리는 멋진 문장들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소비해 온 우리의 서투른 태도일지 모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말들의 이상한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듣고 싶은 말을 사실로, 믿고 싶은 바를 진실로 만들어 온 인간의 오래된 습벽에 실소가 새어 나오고, 이내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게 될 것이다. 그야 물론 남의 일이 아닌 까닭이니, 부디 저자의 말마따나, “여러분의 사려 깊은 독해를 당부한다.”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고
있어 보이는 말에 취하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
그렇다면 우리가 상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명인들의 말 뒤에는 과연 어떤 진짜 맥락이 숨어 있을까? 저자가 집요하게 추적해 낸 '오해의 연대기'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책은 동서고금의 유명한 어록 20개를 해부대에 올린다.
어떤 말은 주인이 아예 틀렸고, 어떤 말은 원작자가 맞지만 뜻이 완전히 뒤집혔으며, 또 어떤 말은 허위인 줄 알았으나 사실로 밝혀지기도 한다. 저자는 이 집요한 탐색을 통해, 오랜 세월 상식의 탈을 쓰고 행세해 온 말들의 생애를 하나씩 복원해 간다.
예컨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장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속삭였다는 일화를 살펴보자. 대체 누가 혼잣말을 엿들었을까? 저자는 이 의심스러운 전언(傳言)이, 종교를 비판하고 갈릴레이를 진리의 투사로 숭상하고자 했던 후대 작가의 창작임을 밝혀낸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와 같은 일부 과학철학자들은, 갈릴레이더러 증명을 요구한 당대 교회의 처분이야말로 오히려 ‘과학적’이었다고 반박한다. 갈릴레이의 사례는 때로는 진실보다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밖에도 이 책은 이승만이나 카뮈, 단테의 ‘가짜 어록’처럼 역사의 해석과 정치적 행로에 끼어드는 말들부터, 정성일이 지어낸 트뤼포의 ‘시네필 3법칙’처럼 열정에서 비롯한 귀여운 실수로 읽힐 법한 말들, 앤디 워홀이나 〈스파이더맨〉의 사례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적 풍경을 비춰 보는 말들까지 폭넓게 다룬다. 링컨이나 볼테르의 말처럼 그 뜻은 옳으나 실상은 아전인수격으로 사용되는 말들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명언들,
우리는 왜 생각을 멈추고 남의 말에 기대어 쉬는가
이처럼 복잡한 말들의 생애를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이상야릇한 지점에 서게 된다. 진위 너머에서도 무성히 자라나는 각양각색의 서사 앞에서, 해방감과 서늘함이 묘하게 소용돌이치는 자리다. 화로의 불이 꺼진 뒤에도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제 우리가 짚어야 할 것은 ‘이 연기가 진짜인가’가 아니라, 연기를 보고도 불씨를 확인하려 들지 않는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함'을 논하며 경계했던 것도 바로 그런 나태함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닳아 버린 말들을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삼켜 버리는 사유의 정지. 명언의 수풀을 헤치고 다다른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을 떠다니는 게으른 말들의 불씨를 보게 될 것이다.
괴벨스를 다루는 장에서 저자는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엘륄의 다음 문장을 인용한다. 어쩌면 이 책의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압축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선전자는 선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을 사로잡을 수 없다. (…) 잠재적 피선전자가 없다면, 선전자도 없다. (…) 선전은 피선전 집단의 필요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엄격하게 사회적 현상이다.”
비효율적이고도 성의 있는 이 기나긴 탐색을 끝내고 나면, 우리는 마침내 저자의 전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탐구는 못 되어도 덜 불행해지기 위한 공부는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