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좀 더 걸어볼까
빛이 잡아먹힌 곳
이끼들이 나란한 서늘한 그 밑
한기가 시작되었던 우리를 향해”
- 김영미 「관목숲」 중에서
“이게 뭐에요? 만지면 말랑말랑하다가 너무 바싹 다가 앉아버리면 딱딱하게 굳기도 했다가, 멀리서 보면 흐리멍텅했다가 막상 안 보이면 자꾸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강력하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요사스러운 이것 말이에요. 이걸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요? 울퉁불퉁하고, 결말도 없고, 어떤 가정도 할 수 없는, 기다렸다가, 토라졌다가, 푸하하 웃음보따리로 풀어졌다가, 흐물흐물거리다가, 빽빽해서 틈이 없을 것 같은. 도대체 이건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요? 그러니까 일월 육일에서 네 사람이 웃고 떠들고 마시다 기어코 멀리 나아갔다가는 같은 장소로 돌아와서요. 전보다 더 왁자지껄해지는 우린, 왜 이 시간을 이토록 부여잡고 마는 걸까요? 어쩌면 이 부분에서 점점 뻔뻔해져서는 생활을 벗어던지고,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미래에 가닿는 걸 바라기 때문이겠단 생각. 시간 같은 건 삶은 풋콩처럼 까먹기 위해서란 생각. 그렇담 우린, 뻔한 우정 같은 소리 그만하고, 우리만의 놀이를 펼치는 거겠구나! 깨달았어요. 함께 있으면 우린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쪼글쪼글해질듯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느라 딱새가 되었다가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주문을 외우면서 해파리가 되었다가요. 아무도 먼저 가겠다고 하지 않으며 결국 주저앉아버린 네 개의 외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언니. 그런 우정 같은 소리만 해요. 서로에게 침투하며 서로의 삶에 코러스를 불러주는 사람으로 남아요. 절대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 자로 걸어요. 또 걷고 걸어요. 끝까지 걸어요. 비트 깎는 승유와 국수 삶는 영미와 전 부치는 주혜와 막걸리 빚는 연희. 이렇게 네 할머니로 남아 글을 쓰고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또 멀리멀리 나아갈 준비를 해요. 그러니 이번엔 언니들이 물어봐 줘요. 좀 더 걸어볼까? 아쿠아랑 오아시타에 한 번 가보기로 할까? 제주도에도. 하코다테에도. 저쪽이라면 어디든. 기어코 봄날이라면 어디든.”
- 한연희 시인 추천사 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라는 대명사에 대해, 우리라는 일반명사에 대해,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는 실체에 대해. 우리는 우리를 가두기도 하고 우리를 품기도 하겠다. 딱새가 날아드는 우리는 투명한 살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살 사이에는 틈이 있겠다. 우리는 살로 이루어졌는가, 틈으로 이루어졌는가. 틈의 사이가 살인가, 살의 사이가 틈인가. 틈새로 깃드는 것들과 살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그 사이로 드나든다. 딱새처럼. 한 마리가 한 마리를 불러오고 두 마리가 네 사람이 되기도 하면서. 간혹 우정 같은 소리를 내면서. 딱딱. 정수리를 쪼다가. 똑똑. 들어가도 되나요? 호롱호롱. 아, 웃겨.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웃고 우정하고 우정 같은 소리나 하고.
영미랑 승유가 숲으로 들어갔다. 조약돌 옆에서 기다리다가, 그만 무릎이 아파져 일어났다가, 가만 있어 보자, 하면서 가만 있지 못하고, 잠깐만 여기가 숲의 뒷문이면 어쩌지? 저 뒤집힌 앞에서 누가 또 망설이고 있으면 어쩌나. 우린 또 여기라고. 우린 또 우리라고. 저 숲에 무엇이 있을까 싶은데, 적어도 혀들이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비눗방울이 앞니처럼 솟구치는 풍경은 또 기억나버려서, 나는 새하얀 망설임을 정수리에 붙이고 걸음을 옮겨본다. 소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다음 계절까지는 붙어있자. 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던 기억도 나는데. 미워해 본 다음 다시 좋아하기로 마음먹는 건 어떤 경지일까? 우리는 늘 이 지경이고. 우정 같은 소리는 입김에도 화상을 입고, 입김에도 꽁꽁 언 발을 녹이는 경지, 혹은 지경. 우정 같은 소리를 똑똑거리며 나는 숲의 뒷문을 열어젖힌다. 저 숲에 승유와 영미가 있다 하니, 우정 같은 소리를 읽고 싶어서, 나는 밖으로 들어간다.
-이주혜 소설가 추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