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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하나, 길심 씨의 인생 여행
그놈의 아들이 뭐라고
시골 두 노인의 별거 아닌 별거
그녀만의 추석맞이
길심 씨의 퍼주기 사랑법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꽃사랑
오지 말라는 거짓말
사랑을 머리에 이고
느그들도 늙어 봐라!
게미가 있어야지!
내 운은 내가 부른다
줄어들지 않는 장작 벼늘
달님 안녕하신가요?
양면 거울
감정의 물꼬
빚진 자리
둘, 길심 씨의 음식 여행
요리랄 것도 없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요리
남아나지 않는 술
밥도둑보다 더한 도둑
잔칫상의 주인공은 누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못밥
한여름 날의 달달 국수
모든 것이 정성이제
가을바람 찬바람이 일 때
찰밥 한 그릇에 수다는 세 그릇
뱅뱅뱅 굽은 길을 돌아 나오는 우렁이
나는 오늘도 숙성중이다
레시피도 세월 따라 진화한다
엄마, 오늘은 뭐해 드셨어?
추울 때 먹어야 지 맛이제
음식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솥에 묵이 부글부글, 엄마 속도 부글부글
인생도, 음식도 간간해야 깊은 맛이 나는 법
시장이 반찬? 나이가 반찬?
셋, 길심 씨의 시골 여행 ? 여름
빨래하고 싶은 날
가계부 일기장
꽃들의 전쟁
자고로 사람은 일을 해야제
환골탈태
아침이 벌써 한나절
오리 대(vs) 장어, 오리 승
나이가 깊이 들어가는 것은 다시 아이가 되어 가는 것
시골살이 하며 좋은 몇 가지
성수 씨의 농사투혼
풀과의 전쟁
길심 씨의 60년지기 혼수품
밭고랑 어록
붕어빵을 냉장고에?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의 공생
고모네 집을 찾아서
이래도 저래도 아픈 건 마찬가지
일해 준 품삯이여!
넷, 길심 씨의 시골 여행? 가을
가을, 다시 슬기로운 시골생활
먹는 재미보다 잡는 재미가 더 큰 것이여
또 다른 탄생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 한가
가는 길, 오는 길
지금 내 나이가 참 좋다
기다림
다 이름이 있다
천고아비(天高我肥)의 계절
시골노인, 성수 씨의 루틴
무슨 농사든 농사는 다 힘들어
도깨비장에 가다
그러니까 부모다
어따, 성수 씨 이제 속 씨연하것다
길심 씨의 벼이삭 줍기 투혼
나오며
저자 소개
저자 : 전난희
농부의 딸로 태어나 전남 영암에서 자랐다. 도시에 살지만 시골을 좋아해서 늘 귀촌을 꿈꾸며 산다. 젊은 시절엔 공기업에 다녔고, 육아를 위해 퇴사하고 전업주부로 20여년을 살았다. 현재는 책방의 매니저로 책을 큐레이션하고, 커피를 내리고 짜이를 끓이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에서 엄마 음식과 시골 생활에 대한 향수가 담긴 시골일기를 연재했으며, 이외에도 50대를 지나는 삶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수필 전문지인 <선수필>에 2020년 ‘양면거울’로 등단하면서 수필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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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엄마가 할머니 이야기를 썼습니다.
- 작가의 딸, 길심 씨의 손녀가 이야기합니다.

전업주부로 살아오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책으로 낼 만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빨간 머리 앤>을 유달리 아끼는 문학소녀 우리 엄마는 사실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 속에도 엄마는 언제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정말로 글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몇 년 전부터 엄마는 꾸준히 글을 써왔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글을 읽고 의견을 내놓는 것은 늘 제 몫이었는데... 어?! 엄마의 글,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무엇하려고 딸을 대학에 보내느냐’ 하던 그 시절, 할머니는 농사만 지어 두 딸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8남매 시가에서 유일하게 아들을 낳지 못했던 할머니는 때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가시로 무장했습니다. 엄마의 글 ‘그 놈의 아들이 뭐라고’ 에서처럼 말이죠. 저는 어렸을 적 일부러 날을 세워 말하는 할머니의 화법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듯 할머니의 삶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 내려간 엄마의 글을 통해 비로소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가시를 세우셨다는 것을요. 연세가 들어가며 할머니의 그 뾰족한 가시는 다 빠졌는데 이제는 허리가 굽으셨습니다.

할머니는 말하기를 정말 좋아하고, 음식은 그보다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목포 여행 중 숙박비 절약을 위해 친구들과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여행 후 저와 2명의 친구는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졌는데, 할머니가 남은 한 명의 친구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이나 딸 자랑에 온갖 시골 동네 이야기를 했답니다. 친구 할머니 이야기라 끊을 수도 없었던 제 친구는 온전히 그 수다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아마 다시는 안 와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할머니표 특제 찰밥을 먹은 친구는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본다며 다음에 또 먹으러 오고 싶다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졸음을 참아가며 친구 할머니의 수다를 들어야만 했던 고통을 잊어버릴 만큼 맛있었던 할머니표 특제 찰밥, 엄마는 그런 할머니의 맛을 기억하고 싶어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 엄마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할머니와 함께 한 이야기라면 놓치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거의 한달 가까이 시골에 내려가 있으면서 저에겐 블로그에 글을 올렸으니 읽어 달라고 할 때만 연락을 했지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었고, 읽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웅다웅 시골생활이 눈에 그려져 웃음이 났습니다. 엄마가 여름과 가을 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그 글들이 모여 지금 이렇게 책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엄마는 할머니의 인생을 깊이 여행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글은 나중에 할머니를 추억할 소중한 기록이 되겠지요. 엄마가 너무 늦지 않은 때에 할머니의 인생을 여행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엄마에게로 떠난 여행

이 책은 오십대의 딸이 팔십이 넘은 엄마, 길심 씨에게로 떠난 여행 이야기이다. 이 여행에는 길심 씨의 인생과 음식, 시골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생을 흙과 씨름하며 살아온 길심 씨의 인생을 여행할 때는 울컥하여 울음을 삼킨 적도 있고, 음식 여행을 할 때는 엄마 음식이 먹고 싶어 시골로 바로 달려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시골살이 이야기에는 부모님 두 분이 건강하여 같이 농사지을 수 있어서 함께 하는 행복감이 묻어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행간들에 펼쳐진 <길심 씨의 인생 여행>에서 누구라도 서정적인 시골 향수를 잔잔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애달픈 삶도 여행이라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꼭 그리 퍽퍽하지만은 않다. 여행은 그런 거니까. 그래서 엄마에게로 떠난 여행이라고 부제를 달았다. 저자는 인생 여행에서 본인을 딸들과 어머니의 사이에 끼인 양면거울이라 생각하며 이쪽저쪽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딸들을 보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머니를 보고 딸들의 대한 저자의 태도를 비추어 본다. 그리하여 <길심 씨의 인생 여행>을 마칠 즈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어머니를 떠올리면 그 기억의 8할은 시골 음식이다. 어머니 음식을 택배로 받아먹기도 하고, 직접 가서 먹기도 하지만 유년시절 이후 사라진 음식도 있다. 엄마음식, 시골음식의 그리움을 글로 풀어 남겼다. 언제라도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설탕물 국수’는 추억으로 남겼고, 이제는 먹을 수 없게 된 ‘못밥’은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 음식은 추억으로도 먹고 기억으로도 먹을 수 있으니까.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어릴 때처럼 부모님 품 안의 자식으로 두 계절 잠깐 살았던 시골일기를 담았다. 시골에 살 때에는 농사일이 지긋지긋하여 떠나고만 싶었다는데... 저자는 어린 시절 그 속에 파묻혀 살 때, 잠깐 다니러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에 빠졌다. 잠깐이나마 삼시세끼의 부담에서 놓여나 “딸이 밥 해준께 좋다.”를 연발하는 길심 씨의 환호성이 책속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책 속에서

송동 댁네는 두 딸이 출가하고 하나 둘 손주가 늘어났다. 식구가 많지 않아도 어느덧 손주들이 다 장성해 명절 때면 집이 북적거렸다. 작은 집이 아닌데 자식들은 집이 좁다고 새집을 짓자고 자꾸만 졸랐다. 그럴 때면 송동 양반은 양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아들도 없는디, 나 죽으면 이 집은 어쩔라고? 느그들이 내려와서 살래?”
그러고는 자전거를 타고 쌔앵 집을 나가 버렸다.(...)
수년이 흐르면서 명절 때면 집 짓자는 이야기가 으레 나왔다. 큰 사위가 총대를 메고 새집을 짓자고 서울에서 빈번하게 전화를 해대며 설득했다. 큰 사위의 설득에 송동 댁은 “알아서 하소.”했지만 송동 양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딸도 아닌 사위의 설득에 송동 양반이 지금 있는 집은 허물지 않기로 하고 집 짓기를 허락했다. 두 딸 사위는 머리를 맞대고 이쁜 집을 지어 보겠다고 동분서주했다. 드디어 마당 한편에 있던 헛간채를 허물고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고 황토 집을 짓기 시작했다. (...)
새 집을 짓고 나서부터 두 노인은 별거 아닌 별거를 하고 있다. 송동 양반은 헌집에서, 송동 댁은 새집에서 각자 생활한다. 송동 양반이 초저녁 잠이 많아 저녁 8시 반만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 바람에 송동 댁은 좋아하는 연속극도 그동안은 못 보았더랬다. 큰딸에게 전화가 오면 이제야 소원성취한 듯 목소리가 밝았다.
“테레비도 마음대로 보고, 아이고 좋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송동 댁도 저녁 9시를 못 넘기고 TV는 저 혼자서만 떠든다.
시골 두 노인은 오늘도 밥은 헌집에서 잠은 각자 따로따로 잔다. 송동 양반은 사람이 안 살면 집이 못쓰게 된다고 항상 헌집에서 생활한다. 가끔 저녁에 내기 화투라도 칠 양이면
새집에서 티격태격, 그러다가 돈내기에 질 성부르면 송동 양반은 얼른 헌집으로 내빼 버린다. 오늘도 호동마을의 두 노인, 성수 씨와 길심 씨는 한 마당 두 집에서 별거 아닌 별거를 하고 있다. 별거가 별거겠나. 이런 별거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을 듯하다.
- [시골 두 노인의 별거 아닌 별거] 중에서

큰 솥단지에 초가을에는 부드러운 고구마 줄거리(보통 고구마순, 줄기)를, 깊은 가을에는 무를 나박나박 썰어 깔고 국물이 자작자작하게 지졌다. 특별한 양념이랄 것도 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큰 솥단지에 지지면 그만이었다. 텃밭에서 바로 딴 빨간 고추를 갈아 넣고, 국물도 붓고, 장독대에서 가져온 간장 한 사발 붓고, 길심 씨 말대로 이것저것 손 가는 대로 찌클면(끼얹으면) 맛이 났다. 남아 있는 양념장도 찌클고, 밥상에 오르락내리락 안 먹는 반찬도 넣고 반찬통도 물에 헹궈 찌클었다. 간은 볼 필요도 없이 신기하게 딱 맞았다.
길심 씨 손맛에, 싱싱한 물고기에, 아궁이 솥단지에 지졌으니 얼마나 맛이 있었겠는가. 많던 국물이 자작자작해질 때까지 아궁이에서 불이 타올랐다. 불이 사그라들고 잔불에 뭉근하게 맛이 들어갔다. 처음 먹을 때는 아주 빨갛지도 않고 적당히 갈색 빛이 감도는 국물이 맛있었다. 그 다음 불을 지펴 데워 먹을 땐 간이 쏙 벤 무가 맛이 있었고, 그 다음에는 형체가 사라진 무와 물고기를 같이 먹었다. 마치 진한 갈색 수프 같았다. 한 솥단지 지져서 여러 끼니를 먹고 또 먹었다. 그래도 질리지 않았다. 이 맛있는 물천어탕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 [가을바람 찬바람이 일 때] 중에서

누구나, 무엇이나 저마다 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두 이름이 있거늘, 하물며 너른 들판에 이름이 없겠는가. 이곳 호동마을 들녘에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린다. 시골 생활에 점점 젖어가면서 어릴 적 듣고는 까맣게 잊어버린 들판 이름이 다시금 새롭게 들린다.
이른 아침, 운동 겸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 온 들판을 한 바퀴 돌고 온 성수 씨는, 굽은 허리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는 길심 씨를 위해 들판 상황을 소상히 보고한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온 들판 이름이 다 나온다.
“등가래 우리 논에 나락이 점점 더 쓰러지고 있데.”
“범굴샘 ○○네 논은 나락이 깨끗하게 잘 되얏드만.”
“나들이, 삿갓등, 갓골, 어리등을 지나 무내미 우리 논까
지 빼앵 돌아왔구만.”
“무내미 우리 논은 오늘 나락을 빌라는가, 갓을 다 둘러놨등만.”
(...) 하루가 다르게 들녘의 색깔이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농로 한쪽에 무리지어 서 있는 키 큰 억새는 새초롬한 옛날 새색시처럼 몸을 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성수 씨가 벌써 눈독을 들이고 있다. 베어다가 빗자루를 만들 모양이다. 모쪼록 들판도 제 이름을 잘 간직하고 많이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
- [다 이름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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