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밖에 안 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왕 그렇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하겠습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
진지한 사색과 넘치는 위트
전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두 번째
무라카미 스타일로 에세이 쓰기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소설보다 번역이, 번역보다 에세이 쓰기가 더 어렵다는 작가는 위와 같은 세 가지 원칙 아래 에세이를 쓴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화제가 한정되고, 결국에는 한없이 ‘쓸데없는 이야기’에 가까워진다며 웃음 섞인 겸손을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쓸데없는 이야기’가 ‘무라카미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좋아하는 음식과 음악, 달리기와 여행, 학창 시절 추억, 낯선 이국땅에서의 깜찍한 실수담,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작가는 솔직한 일상의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와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때로는 올림픽 중계나 프로야구 이야기를 꺼내며 툴툴거리기도 하고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며, 때로는 문득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생각을 건넨다. 작가가 권하듯 편안히 어깨 힘을 빼고, 라디오를 듣듯 읽어보자. 채소의 기분을 상상하고, 바다표범의 키스를 궁금해하는 동안 평범했던 하루가 조금 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 속으로
· 잡지에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새삼 이런 말을 하긴 뭣하지만, 에세이 쓰기는 어렵다.
나는 원래 소설가여서 소설 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간단한 건 절대 아니지만, 소설 쓰기는 내 본업이니 묵묵히 해내는 것이 당연하므로 일일이 어렵네 어쩌네 하는 말은 할 수 없다.
번역도 부업으로 오랫동안 하고 있지만, 절반은 취미 같은 것이어서 특별히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음 가는 작품을 마음이 갈 때 마음 가는 만큼 번역한다. 그러면서 어렵네 힘드네 하는 소리를 하면 벌받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에세이라는 것은 내 경우, 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미도 아니어서 누구를 향해 어떤 스탠스로 무엇을 쓰면 좋을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대체 어떤 걸 쓰면 좋을까 하고 팔짱을 끼게 된다.
---「에세이는 어려워」 중에서
· 수년 전, 모 항공사의 기내지 일로 오리건 주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시험 삼아 “가능하면 유진의 나이키 본사에 있다는 이러저러한 전설의 조깅코스를 달려보고 싶은데” 하고 제안해보았다. 편집자가 나이키 홍보부에 문의했고 “좋습니다. 얼마든지 달리세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야호! 그것만으로도 오리건에 갈 가치는 있었다.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나이키 본사에 갔는데, 문득 깨달은 사실! 맙소사, 내가 갖고 간 것은 뉴발란스 옷과 신발이었다. 그런 차림으로 나이키 본사의 코스를 달리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몹쓸 짓이다. 게다가 내가 달리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는데.
---「궁극의 조깅코스」 중에서
· 슈트를 사러 갈 때는 슈트를 입고 간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가게에 들어가서 슈트를 고르는 건 결코 쉽지 않으니까. 일단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머릿속을 슈트 모드로 바꾼 뒤 슈트를 사러 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슈트를 입는 일은 이 상황일 때가 가장 많다. 즉 슈트를 사러 갈 때 입기 위해 슈트를 사는 것 같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슈트를 입어야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