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갓 튀겨낸 도넛은 색깔이며 향기며 씹었을 때 바삭한 식감이며, 뭔가 사람을 격려하는 듯한 선의로 가득 차 있다. 많이 먹고 건강해집시다. 다이어트 따위, 내일부터 하면 되잖습니까.” _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하는 면도의 매력, 요절과 장수의 딜레마,
스키야키, 장어, 크로켓, 도넛을 향한 예찬…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하루키 씨의 유쾌한 단상
무라카미 에세이의 매력은 무엇보다 소설에서는 절대 눈치챌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나는 데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는 경쾌한 리듬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소확행’적 일상을 전한다. 저녁 무렵에 하는 면도의 쾌감부터 음식과 음악, 여행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거창한 사건도 특별한 교훈도 없는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인생에는 감동도 수없이 많지만 부끄러운 일도 그만큼 있더군요” “인생에는 어느 정도 터무니없는 수수께끼와 유쾌한 오해가 필요한 게 아닐는지” “다이어트 따위, 내일부터 하면 되잖습니까” 같은 문장에서는 세계적인 작가의 진지한 얼굴 뒤에 숨은 장난기와 유머도 만날 수 있다. 늘 완벽해 보이기만 하던 그가 수줍은 듯 털어놓는 ‘헐렁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지한 소설을 써온 작가가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상하리만치 재미있다는 것이 ‘무라카미 라디오’의 묘미다. 별것 아닌 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 생각의 끝에서 뜻밖의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하루키의 화법은 천진난만하고 또 능청스럽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조금 더 친근한 무라카미 하루키 씨를 만나게 된다.
책 속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자살을 하는 것 같다.
로마의 프랑스학교 교장이 키우던 수고양이는 프랑스대사가 기르는 암고양이에게 구애했다가 단호히 거절당하자, 파르네제 저택의 발코니에서 몸을 던졌다. 세상을 비관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로는 “아무리 봐도 자살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_ ‘고양이의 자살’에서
요절하는 게 좋은지, 장수하는 게 좋은지, 한쪽을 고르라고 하면 물론 조금이라도 장수하는 쪽을 강력히 바라겠지만, 문학사전을 펼쳐놓고 동서고금의 작가들의 사진을 보다보면 ‘너무 장수하는 것도 좀 그렇군’ 하는 생각이 든다. 젊어 죽은 작가들은 언제까지고 젊을 때 얼굴로 남아 있는데 비해, 장수한 작가는 죽기 직전의 사진이 ‘기본’으로 정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_ ‘장수하는 것도 말이지’에서
직업상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에게 심한 말을 듣는다. 말로 들을 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에서 기사로 맞닥뜨리기도 한다. 칭찬받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비난 쪽이 더 많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는 바보다”라든가, “무라카미는 위선자다”라든가, “무라카미는 거짓말쟁이다”라든가.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그렇게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다(기분이 좋으면 성격이상이지).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넌 위선자야”라는 비판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난 위선자가 아닙니다!”라고 당당하게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반론할 수 없다. _ ‘싸움을 하지 않는다’에서
나는 체중계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체중계를 몇 개째 바꿔가며 함께 생활해왔다. 언제나 말없이 욕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한 번씩 끌려나와 사람을 태우고는 “으으” 혹은 “아아”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다시 또 구석으로 치워지는 체중계. 왠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나는 체중계를 볼 때마다 ‘만약 내가 체중계였다면 대체 어떤 기분으로 일생을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한다. 흠, 그렇다고 해서 내 쪽에서 체중계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특별히 없지만. _ ‘체중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