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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호수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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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어째서

해설 | 상상력의 비거리를 절감하게 하는 아득한 이야기
옮긴이의 말 |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려면
저자 소개
저자 : 가와카미 히로미
환상과 일상이 서로 우아하게 스미는 독보적 세계관을 구축해온 우화의 마술사.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나 오차노미즈여자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5년 동안의 교직생활을 거쳐 1994년 『어느 멋진 하루』로 파스칼 단편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일상을 묘사해내는 그녀는, 늦은 등단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력한 문학상을 차례로 거머쥐면서 일본 문단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여성의 자의식을 주제로 한 『뱀을 밟다』로 제11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빠지다』로 이토세이 문학상을, 2001년 여제자와 교사의 사랑을 그린 『선생님의 가방』으로 다니자키 준 이치로상을 수상하며 확실하게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일본 문학 특유의 서정적 향취 속에서 인류의 진화와 소멸을 아득한 시간 너머까지 그려낸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으로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9년 일본에서 자수포장을, 2023년 프랑스에서 문예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역자 : 이지수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온다 리쿠의 『스프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센류 걸작선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아무튼, 하루키』, 『우리는 올록볼록해』, 『내 서랍 속 작은 사치』, 『사랑하는 장면이 내게로 왔다』(공저), 『읽는 사이』(공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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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작
2016년 이즈미 교카상 수상작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이자 심사위원,
독보적 감각의 마술적 사실주의로 일본 문학을 이끄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대표작

진화한 인류들과 인공지능이 끝내 맞이한 소멸의 시간,
마지막 인류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이었고,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생기 넘치는 새로움으로 가득한 이야기”
_인터내셔널 부커상 심사위원회

인류가 멸망하기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서정적이고도 기이한 열네 편의 이야기로 직조한 연작소설. 작가는 동일본 대지진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 사이에 이런 의문 속에서 작품을 썼다. 스스로 만든 기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 자신과 다른 존재를 점점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2016년 첫 출간 시 일본의 대표적 환상문학상인 이즈미 교카상을 받은 이 소설은,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는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겨누는 작품이 되었다.

1996년 『뱀을 밟다』로 아쿠타가와상을, 2001년 『선생님의 가방』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받으며 30년 넘도록 일본 현대문학의 중심에 서온 가와카미 히로미는 이 작품에서 환상과 현실이 서로 우아하게 스미는 독보적 감각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억겁의 시간 속에 펼쳐낸다. 자연의 무상함과 애틋함으로부터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일본 문학 특유의 정념 속에 ‘인공지능’, ‘인간-비인간 경계의 존재들’ 그리고 ‘마지막 인류’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향취의 세계관을 열어 보인다.

이야기는 인류가 황혼기에 접어든 아득한 먼 미래, 하지만 기이하게도 태초의 그리움을 품은 정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로 번성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지구 곳곳에 작은 마을 단위로 흩어져 살아간다. 아이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들이 아이들을 양육하는 세계. 목가적이면서도 기묘한 그 풍경을 인간이 만든 어떤 존재가 오래도록 지켜본다. 수천 년을 건너뛰며 이어지는, 화자도 문체도 완전히 다른 열네 편의 작품들은 페이지를 넘겨 뒤로 갈수록 하나의 거대하고도 정교한 서사로 완성되어간다. 한 종으로서의 인류가 맞이하는 긴 소멸의 과정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는 무엇이었고,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단 몇 페이지 만에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야기

“독자는 작가의 굵고 강인한 상상력의 팔에 덥석 붙들려
낯선 세계를 실컷 끌려다닐 것이다”

수천 년을 넘나드는 장대한 이야기는 작은 마을의 강가 온천에서 시작된다. 첫 작품 〈유품〉을 여는 장면은 하얀 거즈 옷을 포개어 걸친 여자들이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목욕하러 가는,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목가적인 마을에서 남편들이 일하는 ‘공장’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동물의 세포에서 유래되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무엇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죽은 뒤에야 경추 옆의 작은 뼈 하나가 유족에게 건네진다. 유래한 동물의 두개골을 꼭 닮았다는 ‘닮음뼈’다. 남편을 잃는 주인공은 그 뼈를 도감에 비춰보고서야 남편이 돌고래의 세포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의 유래를 알게 되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문득 자문한다. “먼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알아서는 안 될 것이 많은 세상을 살아갔을까?” 강가의 목욕은 제의처럼 치러지고, 죽은 이의 닮음뼈를 상자에 간직하는 일은 오래된 신앙처럼 이어지며, 까마득한 강 저편으로는 정체 모를 동물이 헤엄쳐간다.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돌바닥을 두고 “이 지역은 잘 유지되고 있으니까”라고 무심히 주고받는 대화 사이로 세계의 황혼이 언뜻 비친다. 작가는 짧은 단편 하나, 몇 페이지로 독자를 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설정의 한가운데로 데려다놓는다.

이어지는 이야기들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차례로 열린다. 나와 똑같은 ‘나’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가는 세계, 먹는 행위로 ‘분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햇빛으로 ‘합성’하며 존재하는 이들, 인간을 관찰하며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시뮬레이션해보는 먼 훗날 어떤 존재의 목소리까지, 한 편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거대한 서사 속 시간은 수백 년, 수천 년씩 건너뛴다. 처음에는 무관해 보이던 마을과 마을, 목소리와 목소리가 서서히 연결되고 세계의 설계가 모습을 드러내는 후반부에 이르면 앞의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한다. 『로커스 매거진』의 니얼 해리슨이 “수천 년을 넘나드는 모자이크”라고 부른 이 작품의 구조는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이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정점이다. 장르적으로도 일본 고대 문학의 서정적 향취가 가득한 작품부터 서스펜스, 하드SF, 마술적 리얼리즘이 정교한 세계관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한 편씩 아껴 읽어도 좋고, 단숨에 읽고 첫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도 좋다. 어느 쪽이든 두 번 일게 되는 책이다. 이 책의 해설에서 예고하는 대로 “독자는 작가의 굵고 강인한 상상력의 팔에 붙들려 낯선 세계를 실컷 끌려다닐 것이다”.

이토록 다정하게
우리의 멸망을 다룬 작품이 있었을까?

“늘 정리되지 않은 혼란을 품고 있는 당신들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경이는 세계관보다 문장을 짓는 온도에 있다. 파국의 스펙타클 대신, 작가는 목욕과 산책, 빨래와 저녁 식사 시간의 리듬으로 인류의 마지막 시간을 그린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온천을 다녀오는 여자들의 행렬이 지나간 돌바닥에는 물기가 “거대한 뱀이 지나간 것처럼” 한동안 남아 있다. 세계의 끝을 이야기하면서도 문장은 이렇듯 낮고 고요하다. 『에스콰이어』의 몰리 템플턴이 썼듯 “붕괴 이후의 세계를 정밀하게 그려낸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언어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이 문장들 속에서 우리의 소멸은 그저 다음 계절이 오듯 다가온다.

그 온기의 정점에 먼 훗날 어떤 존재의 고백이 있다. ‘쓸쓸하다’는 감정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알 수 없게도 내부에서 그와 비슷한 반응이 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당신들이 좋습니다. (…) 늘 정리되지 않은 혼란을 품고 있는 당신들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비합리적이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를 구해지 못하는 종. 그러나 그 결함과 혼란이야말로 인간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소설은 인간과 가장 먼 것 같은 존재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이것은 종말의 이야기이지만,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모토야 유키코는 이렇게 고백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어느새 이 책의 화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지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종말 속에서 온기를 길어 올리는 이야기들을 사랑해온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그 계보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먼 지평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존재의 이야기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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