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편번호 없이 부치는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지기를.
생전에 너에게 해주지 못했던 일, 미루었던 말들을 향불처럼 피운다.”
지난 2012년 암 투병중에 세상을 떠난 고(故) 이민아 목사의 9주기를 맞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2016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10쇄까지 찍으며 꾸준히 사랑받아온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는 이번에 개정판을 펴내면서 암 투병중인 이어령 교수가 딸을 생각하며 새로 쓴 서문을 싣고, 초판에서 한 부를 차지했던 시들이 빠진 대신 따듯한 그림들을 넣어 1부와 2부 모두 편지글로만 묶었다. 1부는 떠나간 딸에게 전하는 아버지 이어령의 말이며, 2부는 고(故) 이민아 목사와 생전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은 것이다. (개정판에서 빠진 시들은 이어령 교수가 새로 쓴 시들과 함께 이후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로 출간될 예정이다.)
딸을 보내고 난 아버지의 독백은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대화가 된다
“딸을 잃었다. 처음에는 나에게만 닥쳐온 비극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겪는다.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당신도 그랬냐고. 그때 그 골목을 지나다가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느냐고. 그게 죽음인데도 오히려 그 애가 태어나던 때 생각이 나더냐고.” -‘초판 서문’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자기의 우는 모습이나 눈물 자국 같은 것을 보여주기를 꺼린다. 울음소리가 새지 않게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던 흔한 기억처럼 말이다. 딸을 잃은 슬픔을 독백처럼 쓰던 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글이 점점 딸에게 건네는 대화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방류하듯 쏟아낸 슬픔과 치유의 언어는 그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까지 가 닿는다. 자신을 달래고, 딸을 달래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모든 이의 운명을 달래기 위해 그는 허무한 생의 끝 맛을 되새기며 자신의 연약함과 아픈 상처를 담담히 드러낸다. “요즘은 왜인지 자꾸 울음이 난다”는 누군가가 일상의 아픔에서 선뜻 고개 들 수 있도록. 마르지 않던 눈물이 기꺼이 그쳐갈 수 있도록. 저자는 딸의 출생부터 영원한 이별까지 짧은 생애를 회상하며 그녀가 이 땅에 남긴 사랑의 자취를 되짚어본다. 수많은 상실을 껴안는 거대한 사랑과 희망의 발견이 바로 이 여정의 종착지가 된다.
네가 태어나는 순간 나도 아버지가 된 것이니까,
전하지 못한 사랑을 대변하는 부(父) 이어령의 고백록
“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이라고 날 두둔해주었지만, 아니다. 진실은 그게 아니야. 그건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부족함이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이면 된다. 그런데 그 순간이 너에게는 어쩌면 일생의 모든 날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네가 없는 굿나잇 키스’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굿나잇 키스를 기대하며 서재 앞을 서성이는 아이와 등을 돌린 채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 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회상하며 저자는 글로써나마 딸에게 늦은 ‘굿나잇 키스’를 보낸다. 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무료한 오후의 햇살이 방 안을 비출 때, 무엇보다 가장으로서 의욕을 잃고 손등의 파란 정맥만 바라볼 때. 아버지란 무엇이며 자신은 어떤 아버지였나 자문한다.
아내의 입덧을 체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남과 겨루기보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딸에게 염려와 경외를 느끼기도 하며,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기적적 순간들을 목도하며 더 순수한 진리를 배우기도 한다. 세상 많은 아버지가 딸을 구한다고 믿지만 실은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 더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지막까지 미숙하기만 했던 아버지로서 딸을 위한다고 했던 일들이 오히려 아이를 외롭게 하지는 않았는지 그는 뒤늦게나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의 진솔한 고백에서는 서툰 시절에 담지 못한 온유한 사랑이 느껴진다.
“내가 너를 위해 울거나 네가 나를 위해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다.”
죽음이라는 절벽 앞에 절망하기보다 그 너머 재회의 세계를 관망하다
“나는 이제 너의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아. 그만큼 죽음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야.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건 이름처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아주 구상적인 명사로 죽음은 그렇게 내 앞으로 온 거야.”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그 모든 것’에서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면 슬픔만 남는 것이 아니다. 흔히 자식은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냥 묻어두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어느 서쪽의 지는 노을이 다른 동쪽의 여명이 되는 것처럼 죽음은 그 자체로 종결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 탄생을 의미한다. 저자는 ‘너는 내 곁을 떠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태어나는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딸의 탄생을 기억한다. 그 기억 속에서 딸을 잃은 슬픔을 재생의 기쁨으로 포옹한다.
암과 투병하면서 저자에게 죽음의 개념은 더욱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게 된다. 하지만 딸이 보여줬듯 죽음이 허무요 끝은 아니다. 그는 슬픔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 지나간 생애를 의젓하게 되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딸에게, 상실을 견디는 또 다른 모든 이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고. 우리의 이별은 또 새로운 만남이 될 것이기에.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
딸을 잃은 슬픔을 딛고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쓰인 이 글은 독자로 하여금 상실의 고통과 좌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다정한 독려의 메시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