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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능선에서 만난 여자들

part 1. 바닥을 다지다
현실에 안전하게 착지하기 전에
불행한 시선이 잇는 역사_이선화(자청)
우리의 영화 만들기_마민지(마밍)
신체영토에서 신체주권으로: 해먹 같은 결계에서 단잠 자자!_천샘(나무늘보)
예술치료사-연대인의 교차로에서: 치유의 언어 확장하기_김하람(라무)
성폭력으로부터의 생존, 반성폭력 운동으로부터의 생존, 아무튼 일단 숨쉬기 운동_탁수정(탁)
예술가와 양육자,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대한 두 가지 시선_서경선(늘)

part 2. 바닥을 구르다
애써 버텨 온 몸에 일어난 변화들
살아 있는 연대의 발견_양보름
방향을 잃은 몸들의 착지술_송진희
진심을 다해 심은 나무_햄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이다_이슬비

part 3. 바닥을 넓히다
너와 나, 우리를 연결하는 것은
고립에서 연결로_이성미
예술의 쓸모_고주영
작업은 느슨한 연대를 만드는 과정_김경진

저자 소개
저자 소개
저자 : 이선화 (자청)
순이 씨와 철이 씨가 지어준 이름 하나, 스스로 지은 이름 3개로 살아가는 예술노동자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사회와 싸워나가는 몸과 이야기에 기울어진 채로 시각예술과 활동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산다.
노뉴워크(No New Work), 안녕독구말 외에 의미 있고 즐거운 제안들에 결합하여 작업하고 있다.

저자 : 마민지 (마밍)
다큐멘터리의 수행적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두 번째 장편영화 〈착지연습〉을 만들고 있다. 영화관 밖에서는 예술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모색하는 공동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리서치 기반 작업에 결합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를 만들었고 연극 〈연극연습2. 연기연습 - 배우는 사람〉, 연극 〈내 얘기 좀 들어봐〉 등에 공동창작 및 영상으로 참여했다.

저자 : 천샘 (나무늘보)
천샘은 ‘예술가 시민’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본인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한다. 시민의식을 장착한 여성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이를 바탕으로 발화하는, ‘발언으로서의 작품’이 지닌 예술의 역할을 믿는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주체’가 아닌 ‘배경’으로 여겨진 이들, 즉 여성, 지구, 동물을 주제로 한 움직임보고서인 리서치-공연 3부작 시리즈 ‘세상의 배경’을 진행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슬픔 속으로〉(2015), 〈전사의 땅〉(2020), 〈오늘의 날씨〉(2022)가 있다.‘움직임은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

저자 : 김하람 (라무)
기독교학과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신체와 깊은 연관이 있는 마음에 관심이 생겨 무용·동작심리치료를 공부하였다. 현재 오후의 예술공방에서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용·동작심리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 : 탁수정 (탁)
2014년 모 대형출판사의 성폭력 피해 공론화 이후 직장을 비롯한 모든 위계가 존재하는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후유증을 얻게 되었다.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출판계 내 노동운동, 미투 운동 등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소소하게 손을 보태어 왔으며 성폭력생존자의 재사회화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연대방법을 모색한다. 2018년 『내 꿈은 자연사』를 출간했다.

저자 : 서경선 (늘)
서경선은 여자이지만 여자로서 살지 않고 나이 들고 있지만 정정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시작과 끝을 자연과 맺는 관계로 이해하고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는 무용가이다.

저자 : 정수빈 (구구)
이것저것 만들고 그리는 것이 좋아서 지금까지 쭉 해 오고 있다. 비둘기에 유독 관심이 많다.

저자 : 양보름
2011년에 반성폭력운동을 시작한 전주 청년. 페미니즘이 기준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현재 전주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 중이다.

저자 : 송진희
2011년부터 영상, 설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사회가 음소거하는 목소리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미술 작업을 해 왔다. 2016년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부산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반성폭력 활동을 시작하며 예술인 활동가이자 기획자로 출판, 전시 기획, 성평등 교육 등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저자 : 햄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 공연 〈재난 이후의 사서함: 분실된 8720에 대하여〉, 연극 〈생활풍경〉 등에서 공동창작자 및 배우로 참여했으며 앞으로 ‘더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에 집중하며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저자 : 이슬비
1970년생. 아동기 성폭력 피해 이후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다가, 10년간 영성수련, 명상, 절수련 등의 영적 세계 탐구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사회에 복귀하여 사회복지학 전공 후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전주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저자 : 이성미
시인. 시집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칠 일이 지나고 오늘』, 『다른 시간, 다른 배열』을 출간했다.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계기로 2017년에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연합에서 예술계 반성폭력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활동을 해 왔고, ‘예술인권리보장법 입법추진 TF’에서 법 제정운동을 했다.

저자 :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을 이루는 요소에 변수를 인풋하여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 ‘정상’이라는 규범에 지속적으로 질문(Question)을 던지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이상한(Queer) 존재들의 삶을 응시하고 동행하는 〈플랜Q 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저자 : 김경진
먹고 살며 만나게 되는 개인의 고민을 복수의 것으로 확장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한다.

기획 : 상-여자의 착지술
상-여자의 착지술은 2020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자가 모여서 만들어진 프로젝트팀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피해자 대상의 통합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난 3년간 부산, 전주, 서울에서 진행했다. 피해자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치유의 힘을 같이 발견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경험을 예술 매체로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개발 완료했고,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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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상-여자’란 ‘상남자’의 개념을 전유,
야성을 회복한 여자
정말 여자다운 여자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런 여자

‘상-여자의 착지술’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문화예술계 미투가 정점으로 올라가던 시기에 생존자로서 혹은 연대자로서 그 경험들을 관통한 여성 예술가들이 주축이 된 팀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는 사건이 일어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도 위협적인 질병이나 폭력 등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순간 사건 당시로 되돌아가는 증상을 겪기 일쑤다. 감정뿐만 아니라 몸의 감각까지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증상에서 벗어나려면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다고 온몸으로 상기해야 하는데, 이를 트라우마 치유 기법의 하나인 ‘그라운딩’이라 한다. 상-여자의 착지술에서는 그라운딩을 ‘땅 잘 딛기’라고 해석하고 지난 3년간 무용, 미술, 영화, 출판, 일러스트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목시켜 피해생존자들에게 예술적 치유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융합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피해자의 회복 과정에 함께하며 그가 자신의 속도대로 회복되고 스스로 원할 때 자신이 속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바닥을 만들고자 한다. 이 책은 ‘상-여자의 착지술’ 팀원들은 물론 프로그램 참여자들, 각 지역에서 연대자로 활동 중인 협력단체 활동가들, 동료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고루 담아내며 예술로 연결된 공유지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상담소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전문적인 치료에는 제도 내에서의 끝이 있다. 그러나 제도가 호명하는 피해자의 정의를 넘어, 이제는 괜찮아졌음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에는 약속된 끝이 없다. 그래서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구호는 명료하고 묵직하다. (……) 마법 같이 사건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금의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지우는 일이다. 전문적 치료는 사건 초기에 빠르게 진행되어야 하고 필요할 시 언제든 개입해야 하지만, 일상을 꾸려가는 몫은 오롯이 생존자 자신에게 있다. 그 몫이 버겁거나 고립감이 느껴질 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예감했다.“ - 서문 중에서

책 속에서

p.36~37
시선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존재가 만났을 때, 양자 사이의 거리는 존중과 협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모두 안전할 수 있다. 상대의 거리감을 무시하고 시선이 불쑥 들어온다면 폭력적인 상황이다.
폭력이란 타자의 영역을 동의 없이 침해한다는 의미로 이는 시선에서도 마찬가지다. 폭력이 벌어졌을 때 대상화되는 감각을 느끼는 이유는 나와 세상 사이의 입체적인 거리감을 상실하고 평면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사물이 적정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으면 잘 보이지만 눈앞으로 확 다가오면 어두운 색덩어리로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성폭력 피해생존자 대상의 프로그램에서는 참여자의 동의를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성폭력 피해란 생존자의 생각, 감정이 존중받지 않는 경험이기에 그가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이 있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마찬가지로 참여자가 시선의 주체임을 다시 돌려주고자 했다.
- 1부 ‘불행한 시선이 잇는 역사’ 중에서

p.55
판타지 영화를 보면 ‘결계’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결계는 특정 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림막의 일종인데, 외부의 침입자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결계가 지닌 힘으로 인해 침입자는 튀웅웅웅~ 튕겨져 나간다. 결계를 뚫는 작업은 쉽지 않다. 막강한 도술과 내공을 필요로 하며, 악의 축은 어떻게 해서든 결계를 해체시키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따라서 결계를 치는 도사들은 온갖 공력을 다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이 장막을 구축하여 자국의 영토와 하늘과 사람들을 보호한다.
문화예술계 미투 연대 활동가들이 진행하고 있는 안전망 작업, 그리고 상-여자의 착지술에서 예술을 매개로 신체주권의 의미와 쓰임새를 강화시키는 일련의 프로그램은 바로 이 결계를 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칼로 가를 수도 없지만 예술가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1부 ‘신체영토에서 신체주권으로: 해먹 같은 결계에서 단잠 자자!’ 중에서

p.84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잘 일어나는 과정은 한 사람이 몸을 다쳤다가 재활하는 지난한 시간에 비유할 수 있다. 발목이 삐었거나, 골절이 되었다면 진단에 따라 치료를 받는다. 푹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뛰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오래 깁스를 하고, 또 빠진 근육에 힘을 천천히 불어넣어야 한다. 안전한 길로 다녀야 하며 무리한 산행도 자제해야 한다. 작은 예시를 들었지만, 외상의 크기와 신체적 상태에 따라 다시 일어나고 회복되는 시간은 제각각 다르다.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갖는 이른바 외상 후 증상, 삶의 고통과 어려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딘가에 살아남아 숨 쉬고 있는 몸들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표한다. 우리가 함께 만든 작은 온기와 신뢰의 반창고가 또 다른 이들에게도 붙여지기를 바란다.
- 1부 ‘예술치료사-연대인의 교차로에서: 치유의 언어 확장하기’ 중에서

p.139
한 명씩 돌아가면서 서로의 몸에 기대고,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참여자들이 받쳐주고 잡아주는 과정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내가 또 다른 이들을 지지해 주는 따뜻하고 깊은 온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말이 아닌 몸의 연대를 통해서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인상적인 경험을 “모닥불 같은 몸이 되는 거 같아요”라고 그날 일기에 써놓기도 했다. 서로 모여 있는 것들이 따듯한 기운을 만들어내는 무해한 온기와 충만감. 이 온기는 언젠간 흩어지지만 이 온기를 경험한 몸의 기억은 오래오래 지속된다. 지금이 엉망일지라도 따뜻하게 존중받는 몸의 경험에는 삶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이 있다. 방향을 잃은 몸이 땅에 두 발을 딛기 위해서 안전하게 기대고 연대할 수 있는 모닥불 같은 곁이 있다면 방향을 잃는다 해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 2부 ‘방향을 잃은 몸들의 착지술’ 중에서

p.161
한편 내 몸의 경계를 설정하고 내가 원하지 않을 경우 거절할 수 있으며, 내가 만든 방에서는 누구든 내 방의 사용설명서를 따라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에 대해 내가 과거에 결심했던 내용과 겹쳐지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가해자가 내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하여 강제로 당했었고, 내 몸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데 엄청난 치욕감과 모욕감이 들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다. 내 몸에 대한 소유권은 내게 있으며 내 허락 없이 내 몸을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는 노력 없이 나에게 섣부르게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프로그램 과정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원하고 있는가?하는 진지한 상념에 몰입하게 한다.
- 2부 ‘더 이상 숨지 않을 것이다’ 중에서

p.179~181
2018년에 문체부와 국가인권위는 공동으로 100일간 특별조사단을 운영하면서 예술계 종사자와 대학(원)생 4,300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성폭력 실태와 제도개선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예술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가 부재한 것을 예술계 성폭력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정책과 법은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듯하지만 당사자의 이런 실제 감각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젠더폭력 전문가와 예술인의 현황 진단이 왜 달랐을까? 답은 ‘프리랜서’라는 사각지대에 있었다. (중략) 예술인은 예술활동 특성상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 고용된 방식이 아닌 프리랜서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약 75%의 예술활동이 프리랜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문화예술 용역이라 부르든, 저작권자라 부르든, 사업소득 세금을 내든, 제도화된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인 것은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자가 프리랜서라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피해를 어디에 신고할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지, 책임 있는 조치를 어디에 요구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며 아는 사람도 없다.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을 회복하고 폭력으로 멈추어졌던 작업과 공부를 다시 잇는 과정 또한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 한다. 프리랜서는 제도의 돌봄 없이 제도의 바깥에 방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 3부 ‘고립에서 연결로’ 중에서

p.217~218
이렇게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로서 나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존재들이 무대 위에서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는 작품을 주로 만들고 있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을 드러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이자,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방식이다.
(중략) 나의 삶을 살다가 어떤 계기로 존재가 궁금해진 사람들을, 우선은 사전이 아닌 책이나 영화를 통해 알아가고, 몸을 부딪치며 일상을 공유하고, 때로는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함께 (예술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다른 프로젝트에서 만나기도 하는 방식으로 접점을 할 수 있는 만큼 늘린다. 그것이 어떤 존재를 알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존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때, 상대 역시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예술이든 어떤 것이든 함께할 의향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 그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쑥스럽게 ‘예술’이라는 제안을 던져보는 것이다.
- 3부 ‘예술의 쓸모’ 중에서

p.227~228
나와 같은 분모의 아픔을 공유하는 여성들의 몸을 만나겠다는 의지는, 여성으로서 이곳에 살아내는 개인에게 있어 어쩌면 당연한 욕구였다. 사회적으로, 건강하기보다는 아름답기를 강요당하는 몸. 흰 살결, 크고 부드러운 가슴, 탄탄하지만 가는 허벅지로만 해부되고 그렇게만 호명되어 왔던 우리의 몸. 릴리스는 이러한 강요를 거절하고, ‘나’의 결정으로 ‘나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나의 몸을 긍정하는 한편으로 타인의 몸 또한 대상화와 재단의 시선이 아니라 애정의 시선으로 관찰 기록하기를 함께 시도한 프로젝트였다. 스스로를 작업자나 예술가로 호명하지 않는 여성들이 맨몸으로 각자가 사용할 카메라를 들고 모여서, 서로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을 남겼다.
- 3부 ‘작업은 느슨한 연대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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