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동서양 과학의 비교와 과학의 전파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의 거장, 김영식의 핵심 연구를 모으다!
지난 수십 년간 내 주된 학문적 관심은 ‘동아시아 전통 속의 과학’이라는 주제에 향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전통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지적 주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지식과 태도에 관해 주로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서양에서의 과학과 동아시아 과학의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 사회의 과학이 서양에서 유래해서 발전해 온 것이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과학사의...
동서양 과학의 비교와 과학의 전파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의 거장, 김영식의 핵심 연구를 모으다!
지난 수십 년간 내 주된 학문적 관심은 ‘동아시아 전통 속의 과학’이라는 주제에 향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전통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지적 주도층이었던 유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지식과 태도에 관해 주로 공부하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서양에서의 과학과 동아시아 과학의 상황을 비교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 사회의 과학이 서양에서 유래해서 발전해 온 것이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과학사의 표준적인 훌륭한 업적들이 대부분 서양 역사상의 과학에 대한 것들이었기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의 과학을 비교하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를 빚어 왔다. 가장 널리 퍼지고 심각한 문제는 그 같은 비교의 과정에서 서양의 과학을 동아시아 문화를 포함한 다른 모든 문화의 과학이 본받고 지향해야 할 모범이자 기준으로 가정하는 오류인데, 그 같은 가정은 동아시아의 과학은 물론 서양의 과학에 대한 이해마저 왜곡시켜 왔다. 물론 동아시아와 서양의 과학을 비교함에 있어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본문에서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구와 성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서구와 일본 사회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근대화, 산업화의 압박 때문에 한국 과학 기술은 선진국 수준으로 고도 성장한 지 오래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의 총 연구 개발 투자 비용은 43조 8548억 원(2010년 현재)으로 세계 7위이며, SCI(세계 과학 기술 논문 인용 색인)급 논문의 수는 3만 9843건으로 세계 11위(2010년 현재)이며, 특허 건수는 1993건으로 세계 5위(2010년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새 정부는 과학 기술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창조 경제 구현을 목표로 17조 R&D 예산을 2014년 투입할 구상을 밝히고 있다.
1959년 한국원자력연구소 발족으로 시작된 한국 과학 기술 연구는 50여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의 과학 기술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급팽창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맹목적인 급팽창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연구 부정과 논문 표절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에 대한 성찰이 균형감 있게 이뤄지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김영식 서울 대학교 동양사학과 명예 교수의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는 질풍노도의 급팽창 과정을 거쳐 온 한국 과학 기술, 나아가 세계 과학 기술사 전반에 걸쳐 냉철하게 성찰할 수 있는 대학자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서양 과학과 동양 과학의 차이, 서양 과학의 동양으로의 전파와 그 주변 담론을 역사학이라는 메스로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는 김영식 교수의 글들은 오랫동안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이래 오랫동안 동아시아 과학 기술 엘리트, 아니 지식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해 온 열패감와 추월에 대한 열망을 해독(解毒)하는 해독제 역할을 해 왔다. 이 책은 민족주의적 열망이나 서구 중심주의적 열패감에 흔들리는 법 없이, 비교사적 방법론으로 서양 과학과 동양 과학의 차이를 엄밀하게 분석해 내고,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 전파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발굴해 낸 김영식 교수가 평생 써 온 연구 논문들 중 고갱이들만 묶은 것이다.
서울 대학교 화학 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론 화학으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영식 교수는 1977년 서울 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과학사 및 과학 철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왔다. 그리고 1984년 서울대에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을 정식으로 발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불모지와도 같았던 한국 사회의 과학 기술에 대한 성찰적, 반성적 연구에 새로운 기초를 닦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과학 기술학 연구자들을 배출하고 키울 수 있는 요람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의 자연관과 당대 중국 철학자들의 자연관을 서양의 자연 과학자들의 그것을 비교사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지동설과 지구설 같은 서양 천문학의 여러 이론이 중국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 사회에 전파된 과정을 엄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조지프 니덤 등 세계적 석학 역시 버리지 못했던 동아시아 과학에 대한 기존 학계의 선입견을 교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서양 과학 전파에 대한 중국, 한국(조선), 일본의 수용 과정을 세밀하게 비교함으로써 세 나라의 근대화 과정이 달라진 이유를 민족주의적 관점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번에 출간된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는 김영식 교수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최근에 써 온 연구 논문들을 묶은 것이다. 동양 과학과 서양 과학의 차이, 서양 과학의 전파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반응, 그리고 한국 과학사를 둘러싼 논쟁적 이슈를 주제로 한 11편의 논문이 묶여 있다.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양 과학사에서 시작해, 서양 과학이라는 거울에 비친 동아시아 과학의 허와 실, 유교와 동아시아 과학의 관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근대적 과학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를 다루는 Why not 문제, 서양 과학의 동양 전파 과정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반응, 근대 일본의 과학 기술사, 한국 과학사에서 중국의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말 그대로 비교사적 관점에서, 과학의 전파 측면에서 바라본 동아시아 과학사의 모든 문제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양 과학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처 입은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자존심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양 과학의 중국 기원론 문제나, 한국 과학사를 과연 중국 과학사와 분리해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한국 과학사에서 ‘중국의 문제’나, 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나 하는 ‘Why not’ 질문 같은 학계의 논쟁적인 핵심 이슈들에 대한 김영식 교수의 예리한 분석과 해석은, 급성장 과정에서 왜곡되어 온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이뤄진 과학 기술 발전 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바라볼 혜안을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다.
서구 과학만이 과학사적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동서양 과학의 비교」는 서구 과학을 비교의 거울로 삼아 동아시아 전통 과학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2부 「과학의 전파」는 16세기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 서구 과학이 전래되는 현상을 다루고 있으며, 3부 「한국의 과학」은 비교와 전파의 관점에서 한국 과학사를 조망하고 있다.
1부 「동서양 과학의 비교」에 실린 네 편의 글은 서양과 중국 두 문화권의 과학을 ‘비교’하는 적절한 태도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利點)에 대해 다룬다. 특히 서양 과학에 비추어 동아시아 과학의 독특함을 탐색하는 김영식 교수의 연구 방법을 잘 보여 준다. 김영식 교수는 서양 과학의 역사를 과학사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이 연구해 온 동아시아 과학의 관점에서 서구 과학의 특징을 바라본다. 그렇게 해야만 평소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던 서양 과학의 몇몇 특징이 실제로는 서구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특수한 현상임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1부의 글들에서 김영식 교수는 근대 서유럽에서 출현한 현대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