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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1부
고개를 드는 순간 | 오래된 통증 | 잘못한 인사 | 웃기 위해 | 높은 시선 | 애매한 경계 | 나의 전야 | 면전으로 온다 | 우리가 여기 앉아 | 반성이 과한 만두소처럼 | 탐정처럼

2부
어떤 애도 | 뒤 | 순간의 진실, 영원한 진실 | 귓불을 봄볕처럼 만지는 거짓들 | 꽃 피기 전 | 골목집 문밖 의자 | 여우비 | 아직도 | 극대비 | 꽃들이 오는 길로 사랑이 갔다 | 스승이 꿈에 | 지름길

3부
꽃무늬 손수건 | 지금은 4월 | 타인의 행복 | 어느 간절기 | 시인의 가방 | 강이 여자를 | 인생 총량 | 처음으로 | 집으로 돌아가자 | 화사한 우울 | 속살 | 젠틀맨을 들이다 | 화룡정점 | 빛의 계단참

4부
어제도 내일도 없는 것처럼 | 달빛에 깨다 | 안녕, 안녕 | 그럴 때가 있지 | 눈, 눈빛 | 희한하다 | 한끝 | 회복기의 봄날 | 의심을 품자 | 언니의 언니 | 특급 인생 | 허무의 반전 | 바람이 오는 길 | 직립

해설
두 번의 용서 · 박혜경
저자 소개
저자 : 조 은
196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88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 외의 시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묵시론적 통찰을 보여주면 등단하였다. 그 이후 세 권의 시집 『사랑의 위력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따뜻한 흙』,『생의 빛살』과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조용한 열정』장편동화『햇볕 따뜻한 집』,『동생』,『다락방의 괴짜들』『또또』등을 출간하였다. 이 밖에도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최민식과 공동 작업한 포토 에세이집『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서울 사직동의 소담한 한옥에서 조요하지만 치열하게 글을 쓰며 살고 있다. 한편,어린이들에게 폭넓은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따뜻한 동화 쓰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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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새순은 언제나
통증이 심한 뭉툭한 마디에서
상큼하게 돋았다”

착각과 엇갈림 안에서 가장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생의 이해
그 역설만이 틔워 올릴 수 있는 산뜻한 잎망울에 안녕, 안녕

세계의 정면과 이면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시인 조은의 여섯번째 시집

1988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은의 여섯번째 시집 『잘못한 인사』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37번으로 출간되었다. ‘땅’과 ‘무덤’의 세계에서 골라낸 ‘흙’에 따뜻하게 ‘빛살’을 쬐이며 묵중하고 야문 ‘발자국’으로 제 토양을 다져온 시인은, 차근한 손으로 씨앗을 심듯 8년 만의 새 시집을 내놓는다. 시력(詩歷) 40년을 목전에 둔 그가 특유의 현실감각을 발휘하며 통렬하게 써 내려온 51편의 시가 총 4부로 나뉘어 묶였다.

인사를 받은 사람이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저를 아세요?

당연히 모르겠죠
내겐 흔히 있는 일

이런 일이 생긴 뒤엔
이런 말을 듣죠
왜 사람을 보고도 모른 척해요?

오해하지 마세요
내겐 흔한 일이니

[……]

이젠 이런 생각 들어요
수없이 많은 삶을 죽음이라 생각해
피하며 살았을 거라고
수없이 많은 죽음을 삶이라 믿고
와락와락 껴안았을 거라고
-「잘못한 인사」 부분

면식과 분위기를 가늠하다가 인사를 적절히 건네지 못하는 일. 인사를 하거나 하지 않은 상대로부터 예상과 다른 반응이 돌아오는 일. 이 일상적인 ‘어긋남’의 장면들은 오랜 세월 동안 경계와 모순의 문제를 천착해온 조은의 시를 경유하며 생과 사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 간의 조화를 노래하는 『따뜻한 흙』(문학과지성사, 2003), 생동과 소멸이 자아내는 아이러니와 대면하는 『생의 빛살』(문학과지성사, 2010), 어둠을 몸소 겪어냄으로써 빛을 조명하는 『옆 발자국』(문학과지성사, 2018) 그리고 이번 시집에 이르기까지, 서로 뒤돌아 있으면서도 등을 맞대어 일정한 넓이를 공유하는 면면의 겹침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은 시인만의 특기이자 궁극의 화두다. 이러한 그의 시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삶을 죽음”으로 또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삶”으로 믿는 혼동은 결국 “오해”가 아닌 정확하고 기민한 ‘이해’에 가깝다.

표제작의 제목에서 “잘못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면적으로 표상되는 엇갈림의 이미지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인사”라는 키워드와 연결되고, “알은체해야 하나 머뭇대는”(「높은 시선」) ‘눈길’은 이내 그보다 더 적극적인 ‘눈짓’으로 나아간다. 삶이 죽음 같고 죽음이 삶 같은 “착각이 진실처럼 느껴질 때”(「그럴 때가 있다」), 그러한 감각을 놓치지 않고 “곁눈 한번 주지 않는/그들 삶에/한 발 들여놓듯” “인사를 건”(「처음으로」)네기. 겸연쩍음과 오인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 “묵묵히 인사 나”누는 “젖은 눈”(「꽃들이 오는 길로 사랑이 갔다」)은 모순적인 경계 위의 “삶을 까발리며 빛”(「지금은 4월」)나고, 죽음의 얼굴을 한 생의 “뒷면마다” 그 “빛이 출렁댄다”(「회복기의 봄날」).

나지막하고 눅진한 집터에
타자의 고통이 틈입하여 남긴 얼룩을 그냥 두기

보통의 나날을 고요하게 흔드는 생과 사, 명과 암, 명랑과 애수의 잔영은 친숙한 일상 공간인 ‘집’의 안팎에도 드리운다. 이때 조은의 시에서 집은 마냥 안락하거나 무사한 공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는 “평지에서 네 계단 아래/지층 바닥”(「어떤 애도」)과 “빗물이/뚝뚝 떨어지”고 “줄줄 새는 천장”(「아직도」)으로 집을 짓고 거기에 들어앉아 불안정성과 함께 지낸다. 문학평론가 박혜경이 이번 시집의 해설에서 짚고 있듯 시인은 “도시 생활에 정착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는 일상인의 정서를 보여주”며 “마치 벼랑에서 살 듯 도시의 한 귀퉁이에 매달려 살아가는 자신의 누추한 일상을 수시로 시의 소재로 불러온다”.

조은의 시가 도회 가장자리에 놓인 “집의 맨살이 들춰”(「아직도」)진 모습을 꾸밈없이 내보임에도 그곳에서 펼쳐지는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되려 삶을 보살피는 느낌이 든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바닥이 지면보다 낮다는 것은 곧 눈에 잘 띄지 않고 가려지곤 하는 존재들을 들여다볼 수 있음을, 비가 샌다는 것은 집에 틈새가 있어 무언가가 나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위험 도사린 바깥”에서 “밤새도록”(「젠틀맨을 들이다」) 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밤낮없이 괴성 지”(「처음으로」)르는 이웃의 비명을 허용하는 그의 시 속 집은 변방의 “얕은 숨결에도 감응하”(「순간의 진실, 영원한 진실」)기에 제격이다. 시인의 “집에는 손길이 필요한 목숨들/풀어 헤쳐놓은 잡동사니/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소용돌이친 내면의 흔적들”(「집으로 돌아가자」)이 있고, 그 “문 바깥에”마저 “누구든 앉아 심호흡하게 하”고 “눈물을 멎게 하고/다시 일으켜주는 의자”(「골목집 문밖 의자」)가 있다.

세계의 끄트머리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다른 사람 되어/다른 삶”(「반성이 과한 만두소처럼」)을 살고자 도모하기에는 도통 “죽은 자의 항문처럼 열려 있는 문”(「뒤」) 너머를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진자리 맴도는 나/어디로 가야 할까”(「아직도」) 종종 자문하지만 축축하고 너절할지언정 제 “집 떠나 살 체질/아니라는 걸”(「순간의 진실, 영원한 진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체면 차릴 때가 아니다/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자”(「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되뇐다. 그 담백한 읊조림을 따라 “오늘을 살겠다는 친구”도 “내일을 살겠다는 친구”도 “대충 슬픈 친구”도 “집을 향해”(「어제도 내일도 없는 것처럼」) 간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걸어온 길과 닿은/틈 없는 하늘”은 또다시 “한 뼘이 열”(「의심을 품자」)리고, 시인은 “물방울이 비집고 드는 틈새”(「희한하다」)로 흘러들 작은 생명의 기척을 새롭게 기다린다.

낭만적 꿈이나 환상 없이 일상의 현실을 끝까지 감내해내려는 시인의 의지는 그의 시에 죽음과의 대면을 피하지 않으면서 삶이 부여하는 절망을 고집스럽게 응시하는 꺾이지 않는 내면의 힘을 부여한다. 절망을 정직하게 끌어안는 방식으로 절망의 현실을 이기려는 것, 그것이 조은의 시가 보여주는 절망의 힘이자 고통의 품격이다. 시인으로 하여금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고통을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조은의 시가 자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타자들의 고통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는 것은 그의 시가 지닌 절망의 힘을 입증한다.
-박혜경 해설, 「두 번의 용서」에서

뉘우침과 뒤척임으로 점철된 밤을 지나
단단하고 의연하게 맞이하는 용서의 시간

잦은 반성에 발목 잡혔다
끝없는 반성
과한 만두소처럼
내 삶을 망쳤다
나는 둔해서 고집스럽게
반성 뒤에도 반성했다
[……]

이 또한, 반성!
구제 불능이다
-「반성이 과한 만두소처럼」 부분

벼랑에서, 경계에서, 변방에서 시인은 잘 닦이고 정제된 세계와 맞물리지 못하고 삐걱대는 부조리의 순간들을 필연적으로 목도한다. “늘 불화에 과민”(「귓불을 봄볕처럼 만지는 거짓들」)한 그는 “개운치 않은 느낌의 정체를 내내” 외면하며 “그냥 푹”(「탐정처럼」) 잠들지 못해 밤새도록 “뒤척이고 뒤척이고 뒤척”(「희한하다」)인다. 도저히 멈추어지지 않는 성찰, 그로부터 기인하는 위화감, 그럼에도 계속해서 “반성”하고 그 “반성 뒤에도 반성”하는 “구제 불능”(「반성이 과한 만두소처럼」)의 태도는 끈질긴 우울을 빚지만, 이러한 반추는 시인의 천성과도 같은 것. 그 스스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이 아픔을 잘 알지만/그때로 되돌아가도/달라질 것 없”(「고개를 드는 순간」)음 또한 안다.

그래서 시인은 “한때 이런 말 자주 했다/인간이 왜?”. 하지만 『잘못한 인사』에 이르러 “이젠 자주 이렇게 말한다/인간이니까”(「의심을 품자」). “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지/했던 말들”은 아주 긴 시간에 걸친 겹겹의 반성을 통과하며 “인간은 다 그런 거지/사람만이 그래”(「면전으로 온다」)라는 깨달음이 되었다. 이는 반복되는 좌절과 비감에 깎이고 무뎌진 타협의 결과가 아니라, “어둠이 붉은 해를/바닥으로 끌어 내”려도 “반전이 온다”(「허무의 반전」)는 사실을 체득하였기에 마침내 벼려진, 매섭도록 날카로운 통찰에 가깝다.

“용서가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하면서”(「직립」)도 세상의 불화와 현존의 고통을, 나아가 “뽑히지 않는 뿌리를 뽑아온” 자신마저 “용서”(「고개를 드는 순간」)하게 된 시인은 이제 “맹수 같은 안개가/등 밑에서 일어”날지언정 “무섭지도 않”(「어제도 내일도 없는 것처럼」)다. 이는 “냉소를 머금고/오만”하게 “가슴을 쫙”(「반성이 과한 만두소처럼」) 편 뻣뻣함과는 달리 “한생 꿋꿋했”(「허무의 반전」)기에 갖출 수 있는 똑바름이고, “수없이 삶을 경신해온 먼지들/거침없이 가볍”듯 무수한 성찰을 거쳐왔기에 획득하게 된 가뿐함이다. “삶을 꾸준히 단련하는 자들”(「여우비」)만큼이나, “이 끝엔 반드시/해방이 있다는” 믿음 아래 “우울에 단련되”(「언니의 언니」)어 곧게 바로 선 자는 “얼마나 대단한가”(「여우비」).

돌아가자, 돌아가자, 되뇌며
앞으로 가고 있다

용서가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하면서
이미 다 용서했다

[……]

고뇌가 증발한다

잔잔히
가벼워진다
-「직립」 부분

· 시인의 말

바람에
전신이 떨리는
몸을 끌고
까마득한 곳으로

바람이 없으면
아직
거기 머물고 있을

2026년 7월
조은

· 뒤표지 글(시인의 산문)

말라간다

말라간다

바람,
빛과 어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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