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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질문을 견디는 자리에서
감사의 글: 함께 사유한 시간에 대하여
1장 심리적 생존자 시선으로 북한을 다시 읽다
2장 충성이라는 이름의 감옥
3장 세뇌의 신화와 허상
4장 복종을 계산하다: 인간의 생존 전략
5장 사회적 뇌와 집단 감정의 신경생물학
6장 집단 트라우마 정치학
7장 복종과 저항 사이에서 살아남는 몸
8장 시민 없는 나라, 시민사회 징후
9장 복원력의 미래: 권력의 틈에 남아 있는 주체
닫는 글: 심리적 생존자-말을 멈추는 자리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자 : 감희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공부했다. 그러나 소위 적대 계급 출신이었기에 많은 제약과 고통을 받아오다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 2017년 탈북 여성의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비전임 교수로 있으면서 북한 체제와 인간 트라우마 이해, 한반도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을 위한 평화와 인권, 용서와 화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 사람 이해하기: 북한에서는 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없는가』(2021),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찰』(2018,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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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체제를 믿지 않으면서도 왜 그들은 충성을 연기하는가
피해자라는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 극단적 억압 속 ‘나’를 지켜낸 인간의 전략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오랫동안 극단적인 이분법에 갇혀 있었다. 체제의 광기 어린 구호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세뇌된 집단’이거나, 혹독한 억압과 기아에 시달리는 ‘불쌍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구도로는 3대 세습의 혹독한 통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작동하는 북한 사회의 복잡한 내면을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심리적 생존자들??은 이 오랜 통념의 벼랑 끝에서 서늘하고도 정교한 질문을 던진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년부터 2025년 사이 북한을 탈출한 50여 명의 남녀노소-장마당 세대 청년, 군인, 대학생, 장사꾼, 간부, 해외 파견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한 이 책은, 만성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심리적·생리학적 손상을 감내하며 ‘나’라는 주체를 지켜내는지 학제 간 통합의 틀로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독특한 경계에 서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공부했지만 소위 ‘적대계급’ 출신이라는 이유로 억압과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냈고, 결국 사선을 넘어 정착한 연구자다. 당사자로서의 문체적·감정적 기억이 해석의 객관성을 침범하지 않도록, 저자는 끊임없이 자의식과 편견을 ‘괄호 치기’ 하는 엄격한 학술적 결기를 보여 준다. 개인의 상처를 신파로 소비하거나 거대 담론의 차가운 해부대에 올리는 대신, 정밀한 사회학·정치심리학·신경생리학적 도구를 들고 당사자들의 일상 속 감정 패턴과 말하지 못한 침묵을 층층이 정제해 냈다.

인터뷰가 포착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불신과 적응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10~30대는 국가가 강요하는 혁명 이념에 완전히 무감각하며, 오직 ‘부자가 되는 것’만을 생존의 목표로 삼는다. 기성세대 역시 체제에 대한 기대감은 접은 지 오래며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고통 섞인 피로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체제의 정당성은 이미 뿌리째 붕괴했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절대적 불신이 묵묵한 공감대로 확산되어 있음에도, 왜 저항은 일어나지 않으며 체제는 유지되는가?

저자는 이 모순의 열쇠를 ‘공포와 고갈, 그리고 조건화된 생존 전략’에서 찾는다. 3대를 멸족시키는 연좌제의 공포는 정치적 판단 이전에 미래를 꿈꿀 상상력 자체를 마비시키며, 하루하루의 먹고사는 문제에 모든 신경을 소진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들은 체제를 믿지 않으면서도 살기 위해 충성을 연기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체제를 공고히 하는 행위를 지속한다. 체제를 유지하는 진정한 엔진은 사상적 세뇌가 아니라, 극단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심리적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고통을 경험한 인간을 함부로 ‘회복’이나 ‘치유’의 서사로 교화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가 명명한 ‘심리적 생존자(Psychological Survivor)’는 완벽히 상처를 극복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파손된 상태 그대로 삶을 감당하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계산하고 조율해 내는 숭고하고도 서글픈 주체들이다. 이때 그들이 보여 주는 레질리언스(회복탄력성)는 정상성의 복원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지속 가능성이다.

북한이라는 극단적 조건 아래 놓인 인간을 추적하지만, 이 책이 다다르는 종착지는 결국 ‘만성적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보편의 조건’이다. 압도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붙드는가. 저자의 정제된 언어의 기록은, 독자들에게 편안한 정답 대신 깊은 여백과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세뇌와 억압이라는 안이한 프레임을 넘어, 위기 속 인간의 실존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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