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철학자 이영철이 첫 시집을 출간했다. 〈어느 먼 별의 잔광 같은〉이라는 시집이다. 이영철은 잘 알려져 있듯이 평생 비트겐슈타인을 탐구한 언어 철학자이다. 거장 철학자가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영철의 첫 시집 〈어느 먼 별의 잔광 같은〉은 늦은 나이에 이르러 삶과 언어, 사랑과 죽음, 기억과 망각, 존재와 허무를 되돌아보는 한 지식인의 내면적 기록이면서, 동시에 언어가 세계와 존재를 어디까지 붙잡을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철학적 시집이다. 시집은 「꿈」에서 시작하여 「별」과 「길」을 거쳐 「문」으로 나아간다. 이 시적 구도는 각각 현실의 불확실성, 존재의 빛과 허무, 삶의 여정과 선택, 그리고 막힌 세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상징하면서 시집 전체의 구조적 골격을 이룬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꿈’과 ‘먼 것’, ‘잔광’이라는 이미지가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표현한다는 점이다. 사라진 별에서 도착한 빛은 별의 부재를 증명하면서도 그 존재를 현재에 되살린다. 따라서 잔광은 절망이면서 구원이고, 부재이면서 존재이다. 「별똥별」에서 시인은 결국 별똥별과 자신, 나아가 모든 인간을 ‘잠시 빛나다 사라지는 존재’로 인식하며, 소원을 압축한 ‘똑딱’이라는 말 대신 “온전한 문장”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에게 축복과 감사를 보낸다.
이러한 사유는 부모의 죽음과 결합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어머니의 시간」에서 어머니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어머니는 화자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무시간적 회전축’으로 남는다.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과 사랑을 통해 다른 방식의 존재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인생이란 무엇인가 2」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구체적 현실을 불교적 사유와 결합하여,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돌봄과 연민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시집의 또 하나의 성취는 철학적 사유를 관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언어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언어 철학자로서의 시인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에서 시를 시작한다. 「벽」에서 보이지 않는 벽은 인간 자신이며, 「문」에서는 그 벽을 허물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결국 ‘문’은 언어가 막히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열리는 통로가 된다. 특히 「무제 2」의 ‘거시기’와 ‘무명’에 대한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와 언어의 한계를 선(禪)적 사유로 연결한다.
동시에 이 시집은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는다. 「큰어머니」의 4·3의 기억, 「김재규」의 역사적 평가, 「사이시옷」의 남북 분단에 대한 비판, 「감오도」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성찰은 개인적 서정이 사회적 현실과 만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시인은 자기 존재의 허무를 응시하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결국 이 시집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성과는 철학·서정·해학·언어 유희·사회적 성찰을 하나의 시적 세계 안에 결합한 데 있다. 때로 산문적이고 사유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그 직설성은 오히려 시인이 오랫동안 붙잡아 온 질문을 숨기지 않는 진정성으로 작용한다. ‘꿈’에서 시작한 여정은 ‘별’의 잔광을 거쳐 ‘길’을 걷고 마침내 ‘문’ 앞에 선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의 “후-우-훔!”은 모든 언어가 소진된 뒤 남는 숨소리이자, 말 이전의 존재로 돌아가는 마지막 음성처럼 읽힌다. 이 시집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도 사랑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끝내 ‘온전한 문장’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늦은 시적 귀환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