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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범행 이전

011 … 브라운존 씨의 사생활
023 … 이즌비 멜런 소령의 사생활
039 … 이중생활의 배경
056 … 말끄미다끄미
066 … 적절한 방법은?
079 … 엉뚱한 결과
094 … UGLI에서 온 남자
108 … 해결책
119 … 준비
131 … 마무리
148 … 범행

2부 범행 이후

157 … 발견
166 … 커버데일과의 대화
173 … 계속되는 인생
184 … 커버데일과의 두번째 대화
191 … 차와 집
216 … 아서 브라운존의 진짜 정체성
239 … 여정의 끝
256 … 커버데일과의 마지막 대화
283 … 작가 정보
294 … 해설|이동윤
저자 소개
저자 : 줄리언 시먼스 (Julian Symons)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시먼스는 영국이 낳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추리 작가 중 한 명이다. 1912년 런던에서 러시아계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시먼스는 14세 때 학교를 그만둔 뒤 타이피스트, 사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20대부터 시인으로 활동했다. 첫 시집 『X에 관한 혼동』은 1938년에 발간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였던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으나 결국 징집되어 부상으로 제대할 때까지 2년간 복무했다. 1945년 첫 번째 추리 장편인 『비실체적 살인 사건』을 발표했고, 1947년부터는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시먼스는 시인이자 추리 작가이며 영문학사가이자 전기 작가로서, 사회사와 전쟁사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80편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이중 가장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역시 30여 권의 추리 소설들이며,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추리 소설의 역사를 다룬 이 책 『블러디 머더』(1972, 개정판 1993)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블러디 머더』는 지금도 추리 소설의 역사를 다룬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작가와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을 감안하면 아마 추리 소설의 역사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몇 권의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을 바라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시먼스는 이 장르가 가끔은 형식의 제약을 초월하는 뛰어난 소설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고, 이 예외적인 작품들을 선명하게 옹호하는 것만이 추리 소설의 지위를 높이는 길임을 알았다. 좋은 것은 좋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그 결과 『블러디 머더』는 착실하게 고증된 본격적인 역사책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 편애와 냉소가 가득한 극히 개성적인 책이 되었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크리스티에게 사용했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이처럼 여러 장점들이 정확하게 조합된 경우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먼스는 『살인의 색깔』(1957)로 골드 대거상을, 『범죄의 진행』(1960)으로 에드거상을 받았다. 이 책 『블러디 머더』에는 에드거 특별상이 수여되었다. 시먼스의 소설들의 특징은 무표정한 얼굴들 이면의 폭력을 탁월한 솜씨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1982년에는 미국 추리 작가 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상을, 1990년에는 영국 추리 작가 협회로부터 카르티에 다이아몬드 대거상(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영국 범죄 소설의 대사제’로 불렸던 시먼스는 1994년 켄트에서 타계했다. 그 해에도 신작을 출간할 정도로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였다.

역자 : 정향
연세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능률교육 편집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현지화팀을 거쳤다. 현재는 출판 및 게임 번역가로 활동하며, 게임 현지화 회사인 링고크래프트 대표로 있다. 파인다이닝에 심취하여 미슐랭 5성급 레스토랑을 섭렵하기도 한 쾌락지상주의자이자 재미지상주의자. 옮긴 책으로 『벨연구소 이야기』 『하늘에 보내는 상자』 『부의 심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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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기성 정통 미스터리의 교조주의를 향한 가장 날카로운 반기
평범한 개인이 거대한 압력에 짓눌려 파멸하는 시먼스식 범죄심리소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42번째 작품으로 줄리언 시먼스의 『자신을 죽인 남자』가 출간되었다. 영국의 범죄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줄리언 시먼스는 범죄소설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장르의 흐름을 새롭게 정리한 비평서 『블러디 머더』로 장르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자신을 죽인 남자』는 시먼스가 『블러디 머더』에서 역설한 범죄소설의 가능성을 자신의 창작으로 구현해낸 대표작이다. 평범하고 온순한 남자 아서 브라운존이 억압적인 현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자신과 정반대되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차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접어드는 과정을 그린다. 시먼스가 이 작품에서 추적하는 것은 한 인간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심리적 과정이다. 그는 아서에게 닥친 정체성의 위기와 자기기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평범한 개인의 내면에 잠재한 위선과 모순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자신을 성공적으로 죽인 남자가 맞이하는 정교한 파멸

“그러면 난 뭐지?
난 진짜 뭐지?”

인간 심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시먼스는 자신의 관심사를 비평적 신념과 결합해 소설 전반에 투영했다. 그의 범죄소설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영웅적인 탐정이 아니라 일상과 사회의 압력에 짓눌린 평범한 소시민이다. 『자신을 죽인 남자』의 아서 브라운존 역시 전형적인 시먼스식 주인공이다. 특별한 성공도 실패도 없이 위압적인 아내에게 눌려 살아가던 아서는 어느 날 또다른 자아인 이즌비 멜런 소령을 만들어낸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아서와 달리 이즌비는 대담하고 자신만만하며 과장된 남성성을 과시하는 인물이다. 두 개의 자아를 오가는 역할놀이에 빠져든 아서의 이중생활은 제법 오랫동안 순조롭게 이어진다. 그가 큰 사기를 당해 아내의 거액을 잃기 전까지는.

범죄심리소설로서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아서의 치밀한 범죄 계획보다 그 밑바탕에 자리한 위선과 자기모순에 있다. 아서에게 이즌비는 자신의 편의와 쾌락을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이므로, 이즌비라는 남자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언제든 간단히 없애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랫동안 두 개의 삶을 오간 끝에 아서의 정체성은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말과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뒤엉킨다. 아서가 벗어나려 했던 것은 위압적인 아내와의 숨막히는 일상이었지만, 정작 그 환경에서 벗어나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방황하기 시작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만들어낸 두번째 자아가 도리어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죽인 남자』라는 제목은 단순히 기발한 범죄 계획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기만 끝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워버린 한 인간의 파멸을 함축한다.

007의 시대, 스파이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남자
범죄소설의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의 유머가 만나다

“그냥 궁금했어요. 그 사람이 왔었거든요.”
“UGLI에서 온 남자요.”

『자신을 죽인 남자』가 발표된 1967년은 영화 〈007 살인번호(Dr. No)〉의 성공을 기점으로 스파이 붐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시먼스는 이러한 시대의 유행을 작품 속으로 능숙하게 끌어들였다. 특히 1부 7장의 제목 ‘UGLI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UGLI)’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된 텔레비전 스파이극 〈맨 프롬 엉클(The Man from U.N.C.L.E.)〉의 원제를 절묘하게 비튼 패러디다.

시먼스는 1972년 출간된 『블러디 머더』에서 007 시리즈와 텔레비전 스파이극의 성공 요인으로 장르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꼽은 바 있다. 이러한 비평적 관점은 그보다 앞서 발표된 『자신을 죽인 남자』에서 이미 유머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소심한 중년 남자가 가발과 콧수염을 붙이고 목소리와 걸음걸이까지 바꾼 채 대담한 군인 겸 첩보원 행세를 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희극적이다. 아서가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상황은 더욱 우스꽝스러워지고, 완벽하다고 믿은 계획이 사소한 우연으로 어긋날 때마다 시먼스 특유의 건조한 유머가 빛을 발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역할에 잠식되어 가는 한 인간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희극과 비극, 서스펜스와 풍자를 절묘하게 오가는 균형은 작품이 무겁게만 흐르지 않게 하는 동시에 아서의 파멸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자신을 죽인 남자』는 치밀한 범죄 계획을 따라가는 미스터리의 재미, 두 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심리적 긴장, 당대 스파이물을 비트는 기발한 유머를 한데 갖춘 작품이다. 범죄소설의 문학적 가능성을 탐구한 비평가 시먼스의 날카로운 통찰과 독자를 웃기고 놀라게 할 줄 알았던 소설가 시먼스의 재능을 이 작품엣허 동시에 확인하기 바란다.

엘릭시르의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줄리언 시먼스의 『자신을 죽인 남자』는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를 통해 42번째로 출간되는 작품이다. 2012년 첫 출간된 ‘미스터리 책장’은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 전집이다. 이전까지 일서 중역과 축약본으로밖에 읽을 수 없었던 전설의 미스터리, 미처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믿을 수 있는 전문 번역가의 번역과 멋진 장정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본격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서스펜스, 스릴러, 유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하는 데 힘써왔다.

2022년에 10주년을 맞은 ‘미스터리 책장’은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리부트되었다. 엘릭시르는 미스터리 초심자부터 장르 문법에 익숙한 마니아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펼쳐볼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다채로운 미스터리 걸작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책 속으로

“그래서 그 존슨이라는 남자는 어떻게 했어요?”
“비욘슨이야. 별일 없었어. 국장님은 그 친구를 더 써먹을 생각인 것 같아. 그 친구가 계속 러시아의 앞잡이 노릇을 하도록 두자는 게 국장님의 생각이지.” 소령은 존 러카레이와 렌 데이턴의 작품에 빠삭했기 때문에 삼중, 사중 배신이 횡행하는 이 세계에서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었다. 그는 두 거장의 수법으로 덧붙였다. “첩보의 세계란 더럽거든.”
---p.36

아서의 하숙집은 2~3킬로미터 떨어진 철도 다음 정거장이 있는 스톤헤드에 있었다. 그는 사회적 계층 면에서 프레이컷이 스톤헤드보다 한 단계 높다는 것을 잘 알았다. 돈 많은 통근자들은 마을 변두리에 작은 저택이라 할 만한 주택을 줄줄이 건설했고, 아서는 그 지역을 둘러보며 흥미로운 오후를 보냈다. 리빙스턴 로드는 이러한 고소득 통근자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타 지역 기준으로는 교외에 가까웠지만, 월계수 집의 외관을 살펴본 아서는 이 집이 풍기는 부르주아적 분위기에 감탄했다. 슬래터리 씨는 몇 년 전에 죽었고, 슬래터리 부인은 남편보다 먼저 죽었으며, 다른 자식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클레어는 상당히 풍족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상당히 매력적인 상대였고, 아서가 혼자서 생각했듯 극히 현실적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었다. 튼튼한 다리와 거칠고 살짝 튼 피부를 보면 비현실적인 것이란 (테니스 용어를 쓰자면) 코트 밖의 일이었다. 클럽에서 즐거운 저녁을 보낸 다음, 그는 클럽하우스 바로 앞에서 함께 선 클레어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클레어가 냉큼 승낙하는 바람에 괜스레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비유를 들자면, 꼭 배가 불러 보이는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덥석 물린 기분이 그럴까 싶었다. 두 사람은 등기소에서 결혼했고, 테니스 클럽 회원들의 배웅을 받았다. 결혼식 날 신부를 처음 만난 아서의 아버지는 소감을 간략히 표현했다. “침대 안에서나 밖에서나 네 생활이 많이 변하지는 않겠구나.”
---p.44~45

그는 사기당한 것이다.
이 사건이 그에게 미친 효과는,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이상했다. 그는 터브스에게 화가 났지만, 클레어를 향해 더욱 격렬한 감정을 느꼈다. 그제야 희미하게 깨달았다시피 아서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클레어의 노예라는 처지에서 벗어날 거라는, 언젠가는 발명품으로 큰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자유를 사고 말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서는 이젠 발명품으로 돈을 벌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고, 클레어에게 분기 명세서가 도착하는 무시무시한 심판의 날이 바로 몇 주 후로 다가오고 있었다.
---p.65

“클레어는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을 보십시오. 절 떠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서는 대머리를 문지르며 계속 읽었다. “맞는 말이긴 하네요. 전 클레어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없습니다.”
순경 시절에 결혼해서 십대 딸이 둘 있으며 집에서는 늘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커버데일은, 정말로 아서가 딱했다. “그건 맞습니다. 당신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게 사건의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즌비 멜런이라는 남자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브라운존은 고개를 저었다. “멜런이 그 남자입니까? 모르는 이름입니다.”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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