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역사는 길 위에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
이 답사기는 대일항쟁기 조선인 강제 동원과 관련된 내용 및 현장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혹은 상처받은 자들의 아픔을 품은 현장을 찾아 답사와 함께 사진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중간 과정의 결과물이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 기초한 역사와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변모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박제된 과거 역사로 남겨두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기 위해 당시 현장을 다시 찾아 기록을 넘어 기억을 이어가고자 했다.
---프롤로그에서(이재갑)
우리는 ‘군함도’와 ‘강제 동원’이라는 말을 안다. 윤동주가 스물일곱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도, ‘99엔 사건’의 모욕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실제로 어떤 땅 위에, 어떤 사람들의 얼굴 위에 새겨져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는 그 말과 사실 사이의 빈자리를 두 발로 채워 넣은 기록이다. 사진가 이재갑은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오사카·히로시마·오키나와까지 조선인이 끌려간 자리를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 몇 번이고 되짚어 걸었다. 탄광과 해저 갱도, 군사 벙커와 인골(人骨)댐, 원폭의 도시와 이름 없는 묘지…. 그 자리에 서서 그는 풀과 돌과 나무가 건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사진과 글로 옮겼다.
이 책은 부산을 떠나 도착한 시모노세키가 아니라, 청일전쟁이 시작된 경기도 안성(성환)천에서 첫발을 뗀다. 조선 침략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 땅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세워두기 위해서다. 그렇게 100년의 기억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밟고 선 땅의 이야기가 된다.
과거의 상처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만나고 싶은 이에게,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를 읽고 싶은 이에게,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싶은 이에게 기록을 넘어 기억으로, 대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길을 안내한다.
“자유와 평화는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몸을 움직이고 현장을 다니면 깨닫게 된다.
역시 답은 ‘길 위에 있다는 것’을.”
--- 이재갑(저자)
· 제1장 후쿠오카 - 철도 침목 하나에 담긴 모질었던 삶과 애환
역사는 통계가 아니라 얼굴이다. 후쿠오카는 그 사실에서 시작한다. 오리오역 앞, 한복 차림의 배동록 선생이 저자를 맞는다. 평생을 조선인 강제 동원 규명에 바친 사람, 이 긴 여정의 첫 길잡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는 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야하타 제철소와 지쿠호의 탄광, 손으로 쌓아 올린 인공 산 보타야마. 제국을 떠받친 노동의 주인은 고향을 빼앗긴 조선인이었다. 침목 하나, 갱도 하나에 모질었던 삶이 새겨져 있다. 스물일곱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시인 윤동주, 조세이 해저탄광에 수장된 136명, 이름도 없이 수인 번호로 남은 미이케 묘지의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를 때, 낡은 침목 한 토막이 더 이상 무심한 나무로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를 만난다.
· 제2장 나가사키 - 원폭의 도시에서 만난 기억의 편린들
나가사키에는 두 개의 상처가 겹쳐 있다. 원폭, 그리고 강제 동원. 다카시마·하시마·사키토, 세 섬의 갱도는 바다 밑에서 조선인의 목숨을 태워 석탄을 캐냈다. 저자는 관광지가 된 지옥섬을 걷되, 안내판이 지워버린 조선인의 자리를 되짚어 읽는다. 이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은 미쓰비시다. 강제 동원으로 몸집을 불리고 전후에도 건재한 이 기업 앞에서, ‘99엔 사건’(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에 끌려가 군수공장의 강제노역에 투입된 한국인 여성근로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자, 미쓰비시가 당시 가치로 환산하여 지급한 사건)의 모욕이 왜 끝난 일이 아닌지 이 장은 조용히 증언한다. 그러나 나가사키에는 다른 얼굴도 있다. 진실을 밝히려 평생을 바친 일본인들, 사죄의 뜻으로 세운 화해의 비, 원한만이 아니라 손 내미는 사람도 함께 기록된다. 잊으라 강요받은 것들을 기억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나가사키가 남긴 숙제다.
· 제3장 오사카 - 계속되는 고난과 희망의 역사
아무도 지켜주지 않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지켰다. 교토 우토로 마을은 비행장 건설에 끌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모여 산 곳이다. 비만 오면 하수가 넘치고, 수돗물도 없이 차별을 견뎌야 했던 마을. 그러나 저자가 본 것은 비참함이 아니라 힘이었다. 문패에 또렷이 남은 우리 이름들, 혹독한 대가와도 끝내 바꾸지 않은 이름의 힘.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타치소 지하터널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진심과 마주하고, 오사카성 앞에서는 조선 침략의 뿌리를 되짚는다. 아파치 마을, 그리고 부락민과 조선인의 역사가 뒤엉킨 단바 망간 기념관까지, 차별의 밑바닥에서 서로를 붙든 연대가 이 장을 관통한다. 저자는 단바 망간 기념관을 ‘나의 묘지이자 우리의 묘지’라 부른다. 고난은 계속되지만, 함께 짊어질 때 희망이 싹튼다. 오사카는 그 사실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증명한다.
· 제4장 히로시마 - 가장 낮은 곳에서 싹트는 평화
가장 낮은 곳에서 평화가 싹튼다. 히로시마 편은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땅 아래로 내려간다. 구레의 2단 동굴 터널, 인간 어뢰 가이텐 특공 기지, 산속 깊이 감춰진 지하 공장. 전쟁은 사람을 무기로 삼았고, 그 무기를 만드는 노동은 조선인의 몫이었다. 오타강을 따라 세워진 댐 앞에서 저자는 걸음을 멈춘다. 그중 한 곳은 ‘인골댐’이라 불린다. 시멘트 더미로 떨어진 조선인을 구하려는 순간, 작업을 멈추지 말라며 그 위로 시멘트를 부어 생매장했다는 이야기가 이 이름에 새겨져 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지만, 증언자들은 이보다 더한 일도 많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1945년 8월 6일, 이 도시 상공에서 원폭이 터졌다.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재일 조선인이 2만 명이었다. 평화기념공원 한편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이중으로 잊힌 그 이름들을 붙든다. 저자가 지하와 강바닥에서 길어 올린 것은 절망이 아니라 평화의 씨앗이다.
· 제5장 오키나와 - 끝나지 않은 기억과 기록
남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는 순간이 있다. 오키나와는 그 순간을 기록한다. 평화기념공원이 자리한 마부니 언덕, 태평양전쟁 당시 육군병원으로 사용한 곳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이 곡괭이로 굴을 파서 만든 20호 동굴, 처참한 살육이 일어난 도카시키섬. 전쟁의 참상은 여기서도 조선인을 비켜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상처는 과거형이 아니다. 섬을 뒤덮은 미군 기지 앞에서, 저자는 이 기억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본다. 그리고 이 장에서, 30년 답사의 의미가 한 점으로 모인다. 저자는 ‘한의 비’ 앞에 선다. 끌려온 이들의 주소가 새겨진 돌비에서, 그는 뜻밖에 자기 집안의 본적지(경북 상주군 낙동면 수정리)를 발견한다. 오래전 할아버지가 들려준, 일본으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마을 청년들의 이야기가 그 순간 되살아난다. 이 여정이 왜 자신의 운명이었는지, 비로소 답을 얻은 자리다. 기억은 끝나지 않았고, 기록 또한 멈추지 않는다.
추천평
이재갑 작가는 30년간 일제 강제 동원과 침략의 현장을 발로 뛰며 기록해온 현장주의 사진작가이자 문필가다. 《그 길 위에 우리가 있었다》는 청일전쟁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남녘과 일본의 여러 지역을 아우르며, 일제 강제 동원의 역사를 한층 확장된 문제의식으로 담아냈다. 그의 치열한 작업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과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공감, 그리고 치유를 향한 열망이 살아 숨 쉰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일 과거사의 실상을 깨우고 올바른 미래를 향하게 하는 큰 자양분이자 뜨거운 각성제다. 이 귀중한 기록을 어찌 읽고 보고 음미하지 않을 수 있으랴.
- 박한용 (역사학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30년 동안 멈추지 않고 ‘길 위에서’ 역사의 증인을 만난 이재갑 사진가의 소중한 기록을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이재갑 사진가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 땅으로 끌려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카메라에 담아 고스란히 살려냈다. 잊혀가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오랫동안 온갖 노고를 마다하지 않은 재일 조선인, 일본 시민의 존재도 너무나 귀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이재갑 사진가가 걸어온 그 길 위에서 다시 평화를 꿈꿀 수 있다.
-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