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설국』이 탄생한 그곳, 환상계와 같은 눈의 고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에치고유자와로
『설국』의 주인공인 도쿄 청년 시마무라는 열차를 타고 ‘설국’으로 향한다. 터널을 지나 역에 도착하면 도쿄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환상계와 같은 곳이 펼쳐진다. 딴생각을 하며 걷다가는 전깃줄에 목이 걸릴 만큼 눈이 쌓이는 곳. 『설국』의 배경이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에치고유자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찾아가는 여행은 바로 이곳, 『설국』의 장소인 에치고유자와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쿄에서 연수생으로 머물던 허연 작가는 한 시간 반이면 언제든 에치고유자와에 갈 수 있지만, 겨울이 오기를, 폭설이 내리기를 기다려 에치고유자와로 향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서 묘사한 그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터널 반대편에 비해 습하고 흐렸으며 눈은 역 구내에까지 높이 쌓여 있었다. 온통 흰색으로 된 세상. 설국이었다. 온도와 습도, 색깔이 터널 저쪽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었다. 말 그대로 딴 나라였다. (본문 중에서)
저자가 만난 에치고유자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에서 묘사한 분위기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무르며 『설국』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다카한 료칸부터 소설 속에 등장한 스와사 등 주요 장소들을 돌아보며 『설국』이 지닌 독보적인 미학의 근원을 살펴본다.
죽음과 허무를 통과하며 그가 추구한 세계
현실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궁극을 향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의 초반 생에 불어닥친 기구한 운명은 단 몇 줄의 서술만으로도 향후 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하게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그러나 일곱 살에 할머니가, 열 살 때는 누나가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보호자였던 할아버지마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시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그에게는 ‘장례의 명인’이라는 별명마저 붙을 정도였다.
허연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태어난 오사카 하나마치의 생가를 비롯해, 조부모의 집이 있었던 이바라키, 성장하여 청년기를 보낸 도쿄에 이르기까지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삶을 좇으며 작가로서 어린 시절의 원체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삶의 환희보다 죽음과 허무를 먼저 배운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깊이 이해하고자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하반 생에는 가마쿠라에 정착해 창작 활동을 했다. 1968년에는 『설국』으로 일본에서는 최초로, 아시아에서는 타고르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일본적 미학을 세계에 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 작가로서 명예와 성공을 모두 얻은 시기에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저자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끝없는 문(門)과 같았다. 하나의 문을 열고 나면 또 다른 견고한 문이 서 있었다. 허연 작가는 인간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기 위해,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집 처마에서 비를 피하고, 그가 초등학교에 가
기 위해 걸었던 논둑길을 걷고, 소년 시절 그가 책을 사 보던 서점에 가보고, 그가 마셨던 커피를 마시고, 그가 묵었던 료칸에 머물렀다. 너무도 극적인 삶을 살았던, 무림의 고수와 같았던, 때로는 괴팍한 수행승 같았던 한 작가의 삶이 그렇게 수십 년 후 같은 장소에 선 저자에게 오롯이 다가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나와 같은 몽상가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모든 성을 짓고 또 허물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생을 간파했으므로,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한다는 대전제에 갇혀 있었으므로.
그에게 현실은 이미 무無이거나 거짓과 허상일 뿐이었다.”
_「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