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효율의 시대는 끝나고 생존의 시대가 시작됐다
기술주권과 연결국가로 다시 쓰는 대한민국 성장 전략
세계화는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을 통해 전례 없는 번영을 이끌었다.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지를 찾아 국경을 넘었고, 국가는 시장의 선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팬데믹과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위기는 효율만으로 연결된 세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공급망은 무기가 되었고, 에너지는 안보자산이 되었으며, 첨단기술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되었다.
『공짜 질서는 끝났다』는 이 거대한 변화를 ‘생존 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로 설명한다. 세계는 이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지키고 통제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값싼 생산비보다 안전한 공급망을, 시장의 자율보다 전략산업의 보호를 우선한다. 동맹도 예외가 아니다. 군사안보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동맹은 기술과 산업, 에너지와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관계로 재편되고 있다. 공짜 동맹도, 공짜 시장도, 공짜 성장도 끝난 것이다.
이 책은 세계질서의 변화를 진단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위기론에 머물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세계화를 거치며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어온 대한민국의 경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폐허 위에서 제조업을 일으키고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방산과 원전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은 이미 새로운 질서의 핵심에 들어서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 역량을 어떻게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느냐다.
저자는 산업정책과 한미동맹, 공급망과 자원, 에너지 안보, AI·반도체 기술주권, 자본시장을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구조로 바라본다. AI 경쟁은 기술만의 경쟁이 아니다. 데이터와 반도체, 막대한 자본과 안정적인 에너지, 연구개발과 생산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국가 시스템의 경쟁이다.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와 배터리, 방산과 원전 역시 개별 기업의 경쟁력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산업과 금융, 에너지와 공급망을 장기적인 국가 전략 안에서 함께 설계해야 한다.
특히 이 책은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모든 자원과 시장을 자국 안에 보유할 수 없다면, 우리가 가진 기술과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자본과 자원, 시장을 연결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연결국가’는 서로 다른 경제권을 잇고 그 연결을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만드는 국가다. 한국의 기술과 중동·싱가포르의 자본, 아세안의 시장을 연결해 영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영토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연결의 기반에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 공급망이 무기가 된 시대에는 가격 경쟁력보다 다른 나라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 국가의 협상력을 결정한다. 반도체와 AI, 첨단 제조, 에너지와 방산 등 전략산업에서 기술주권을 확보해야 대한민국도 동맹과 국제 협력 안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잘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국가의 성장은 국민의 삶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과 전략산업을 보유하고도 국민이 그 성장을 자신의 기회로 느끼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 할 수 없다. 저자는 국민의 자산이 미래 산업으로 흘러가고, 산업의 성과가 다시 국민의 자산과 일자리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한다. 자본시장은 일부 투자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이 산업의 미래에 참여하는 통로이며, 산업정책과 자본시장의 성장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업 변호사와 상장기업 임원을 거쳐 국회에서 경제·산업 정책을 다뤄온 이언주 의원은 이 책에서 현장 경험과 정책적 시각을 결합해 대한민국의 생존과 성장 전략을 제시한다. 세계의 변화가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미 시작된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묻는다. 공짜 질서 이후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은 어디에 서야 하며 무엇으로 거래할 것인가. 『공짜 질서는 끝났다』는 기술과 산업, 에너지와 공급망을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설계한다.
책 속으로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기업 현장을 찾고 산업정책을 고민할 때마다 늘 한 가지 질문을 품어왔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성장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성장률을 높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질서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자유무역의 시대가 저물고,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연결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AI와 반도체, 에너지와 공급망, 자본시장과 기술패권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정부만의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가의 방향을 설계해야 하고,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하며, 국민도 그 변화의 주체로 함께 참여해야 한다. 정부·기업·국민, 이 세 축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다시 도약하기 어렵다.
--- pp.8-9
전략산업의 성격은 이미 분명해졌다. 재블린 미사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재가 아니라 군사·안보 전략체계의 핵심 부품이다. 배터리와 에너지 전환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AI와 결합된 무기 체계, 로봇, 이동 수단은 배터리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산업들은 더 이상 성장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영역, 곧 생존의 영역에 들어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개입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개입하느냐’다. 전략산업에서는 공급망 안정, 기술 축적, 인력 확보가 국가안보, 특히 경제안보 측면에서 국익과 직결되므로 국가의 책임이 크다. 전략적 경쟁 산업에서는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되, 비전략 영역에서는 개방성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체한다기보다 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바닥을 받쳐주는 것이다.
--- p.51
이제 기업은 시장만을 보고 움직일 수 없다. 외교 관계가 거래 조건이 되고, 안보 판단이 투자 방향을 결정한다.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과 거래를 원해도 양국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어려워진다. 특히 전략산업에서는 자원 확보조차 국가 차원의 판단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기업과 국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업은 더 이상 국가와 분리된 경제 주체가 아니다. 전략산업에서는 기업의 선택 자체가 국가 전략의 일부로 편입된다. 결국 구조는 명확하다. 과거에는 기업이 경쟁하고 국가는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국가가 산업의 방향을 설계하고 기업은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산업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 되었고, 경제는 더 이상 경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곧 국가안보다.
--- p.99
우주 및 국방 분야에서 활용되는 국방반도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전략 기술이자, 우주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으로써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특히 최근 국제분쟁에서 LEO(저궤도, Low Earth Orbit) 위성통신이 군사작전의 핵심역할을 수행한 사례는 우주 인프라와 이를 구성하는 반도체 기술이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방반도체의 국산화는 산업정책을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과제가 되고 있다.
최근 선진국의 수출 통제 강화와 미·중 기술패권 경쟁, 양안 긴장 등으로 반도체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무기 체계 개발과 전력화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첨단 반도체에 대한 규제와 기술 이전 제한이 확대되는 지금, 국방 분야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는 산업을 넘어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 p.144-145
오늘날 한국은 미국 세력권의 연결국가로서 중국, 러시아와의 소통창구의 핵심 연결자로도 역할을 할 수 있고, 공통된 이해관계의 협상 결과물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비록 미국 세력권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중국, 러시아 등과 꾸준히 우호적 관계를 ‘관리’해 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연결국가로서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나가고 우리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여가는 방안일 것이다.
공급망 협력의 확대와 함께 리스크에 대한 대비도 병행해야 한다. 중국이 원자재를 비롯한 공급망을 제한할 경우를 가정하고, 미국·호주·캐나다 등과 자원 동맹을 구축해 대체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한국 역시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연결국가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지리적 조건이 아니다. 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기회를 읽고, 빠르게 대응하는 전략적 기민성이다. 글로벌 공급망 경쟁의 시대에 한국이 보여줘야 할 것도 바로 그 영리함이다. 결국 경쟁력은 실행의 속도에서 결정된다.
--- p.165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전력수요는 현재보다 약 3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SMR은 탄소 배출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SMR의 활용 가능성도 매우 다양하다.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지역 난방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될 수 있으며 대형 산업 시설에 안정적인 전력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처럼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SMR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SMR 개발 경쟁은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이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약 500기의 SMR이 운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역시 SMR 기술 분야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개발하고 있으며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국의 경우 신규 원전 건설은 주민 수용성과 긴 건설 기간 등의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따라서 기존 대형 원전의 수명 연장을 검토하는 한편, 차세대 원전 기술인 SM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 pp.214-215
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은 동시에 기존 일자리 감소를 수반한다. AI 기반 돌봄서비스와 헬스케어는 일부 보건의료 분야의 인력 수요를 줄일 수 있으며, 자율주행택시인 로보택시의 등장은 택시 운전기사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AI 도입 과정에서 노동계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에서는 AI 제조공장, 휴머노이드, 헬스케어, 자율주행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제조업과 교통, 의료 산업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스스로 인식하고 학습하며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시스템이다. 결국 경쟁력의 핵심은 단순한 제조 기술이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 그리고 기술표준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경쟁이 일단락되면 세계는 AI를 지배하는 국가와 AI에 지배당하는 국가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제국주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거품론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역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전진을 멈출 수는 없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기술혁신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 pp.259-260
지금 한국은 AI 대전환시대의 핵심 수혜 산업을 여럿 갖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 전력, 에너지 저장 기술, 원전, 송전망, 첨단 제조업까지 하드웨어 인프라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적지 않다. AI 시대는 결국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 제조 역량이 함께 움직이는 시대다. 한국은 그 핵심축에 들어와 있다.
외부 환경도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유럽은 전쟁과 에너지 불안정에 흔들리고 있고, 중동과 중남미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크다. 글로벌 자본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이 점점 중요해진다. 중국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시장, 특히 상대적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여전히 저평가된 한국 시장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취약점도 분명하다. 지금 시장이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언제까지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제2, 제3의 성장 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중략) AI 피지컬과 AI 전력인프라 생태계, 바이오와 방산, 첨단 제조업, 코스닥 성장기업 생태계도 함께 키워야 하며, 기존 주력산업의 재구조화와 고부가가치화 작업도 제대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특히 벤처와 스타트업 중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생태계, 결정적으로 기여한 종사자들에게 확실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보상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 pp.316-317
이제 경제영토는 영토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협력으로 확장하는 시대다. 한국과 일본의 기술, 싱가포르와 중동의 자본, 아세안의 시장이 연결된다면 강대국에 버금가는 경제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블록화 시대일수록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경제권을 연결하는 전략적 허브가 되어야 한다. 한편 이러한 연결국가 전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기술주권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급망이 무기가 된 시대에는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 국가의 협상력과 안보를 결정한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모든 것을 잘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다. 반도체와 AI, 첨단 제조, 에너지, 방산 등 전략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국가 전략과 과감한 투자, 규제 혁신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