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진시황과 진 제국 연구의 결정판
秦의 기원, 건립, 멸망, 영향까지…진시황을 중심으로 오므리고 펼치는 1152쪽의 대장정
“운몽진간 등 방대한 사료와 후대 연구에 대한 엄격한 상호 비교연구로 진시황의 대업부터 사소한 언행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진정 역사를 창조할 역량이 있는 인물이라면 꼼꼼하게 연구해야 한다. 물론 내용도 구체적이고 상세해야 한다. 또한 그 인물이 달성한 대업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업을 다룸으로써 환경, 사회, 풍속, 시대를 볼 수 있고 작은 일로 그 인물의 성격, 가문, 지방, 취미, 평소의 언행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것이라고 해서 절대 간과하면 안 된다. 역사적 인물이 어떻게 그런 역량을 지녔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_ 본문에 인용된 량치차오의 말
“만일 사건의 선택, 줄거리 및 서술 양식 모두 진나라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쓴다면 당시의 역사상을 『춘추』와 『사기』보다 훨씬 더 잘 보여주며 역사적인 명맥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춘추전국의 역사를 진나라의 역사로 단순화한다면 다른 나라에서 회자하는 사건들이 꽤 많이 생략되겠지만 이 시대의 역사적 본질, 큰 흐름,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것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진나라의 역사, 특히 진나라 정치사의 명맥과 지엽적인 내용을 좀더 단순화하면 바로 진시황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_ 본문 67쪽
◆ 진시황의 백그라운드인 신흥후발 개혁국가 ‘진秦’에 대한 본격 해부 ◆
◆ 후발신흥국 진이 선진국 제와 초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이유 추적 ◆
◆ 전통 사상에 기반한 중앙집권 사회의 기원 명료하게 서술 ◆
◆ 통일 진 왕조의 정치, 법, 사회, 풍속이 후대에 끼친 영향 객관적으로 파악 ◆
◆ 수천 년간 이어져온 ‘진시황 문화현상’을 역사적으로 총체적으로 정리, 평가 ◆
◆ 화폐통일, 조세제도, 통치기술 등 현대사회에 대한 시사점 풍부 ◆
■정평난 판본의 완역■
장장 1152쪽에 이르는 본격 『진시황 평전』이 출간되었다. 진시황은 현대 중국의 시스템을 만든 인물로 알려져왔지만, 동시에 포학한 정치로 30년만에 제국이 단명한 원인을 제공한 군주로 그 이미지가 양극화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진시황은 가장 유명한 고대 중국의 제왕이지만, 여지껏 제대로 된 평전이 소개되지 않았다. 이 책은 중국 런민출판사人民出版社가 펴내는 정평 있는 「중국역대제왕전기」 시리즈 중 하나인 『진시황전秦始皇傳』(2003년 초판, 2007년판 저본)을 완역한 것으로, 진시황에 대한 모든 것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치우치지 않게 평가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는 ‘황제’라는 호칭의 확립, 사상 통일, 신분제도 정립, 제도 정비, 문자 통일, 도량형 통일, 대규모 토목공사, 법제 정비 등 각 측면에 대해 사료를 근거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진시황은 평지돌출이 아니다■
이 책의 매우 방대한 내용을 일관되게 관통하며 강조되는 것 한 가지는 진시황이 결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추진한 모든 정책과 사업은 과거 춘추전국시대에 각 제후국에서 시행되었던 각종 변법, 주나라를 정통으로 삼는 사상과 문화적 전통, 진나라의 과거 선대 왕들이 추진했던 각종 법률, 제도의 개혁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예컨대 만리장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각 제후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하기 시작한 것으로 진시황은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를 기반으로 장성을 확대한 것이었다. 또 저자는 사람들이 진시황은 ‘법가’ 황제라고 하지만 사실은 ‘잡가’적인 황제였다고 지적한다. 진시황이 매우 잔인한 황제였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한나라의 황제들이 그보다 훨씬 잔혹하면 잔혹했지 결코 형벌을 줄이지 않았다고 꼬집어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군주 또는 왕을 가리키는 각종 호칭을 비롯해 진나라 법제의 구체적인 실상, 왕실 내부의 예제와 규율, 관료체계의 복잡한 시스템을 일일이 꼼꼼하게 추적하고 있다. 중국 전통 사상에 기반한 중앙집권 사회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될 것이다.
■평전을 넘어선 춘추전국시대의 재인식■
정리해서 말하자면, 『진시황 평전』은 진시황 개인에 관한 평범한 전기가 아니다. 약 500여 년 동안 전쟁으로 점철된 춘추전국시대의 격변기 속에서 서쪽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제후국이 어떻게 독립된 진나라로 발전했는지, 진시황의 천하 통일을 정점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그 서막이 열리자마자 어떻게 드라마 같이 허망하게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비극적인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일 후 진나라의 역사가 불과 30년도 안 된다고 폄하하지만 이 책에서는 통일 진 왕조 이전에 존재했던 진나라의 500년 역사가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진나라는 춘추시대부터 시작된 500년이 훨씬 넘게 경영된 나라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진나라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수많은 고서를 진나라 관점에서 읽음■
『진시황 평전』에는 수많은 고문이 숨겨져 있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평전을 읽는 것 자체가 『사기』 『상군서』 『한비자』 『관자』 『순자』 『전국책』 『설원』 『여씨춘추』 『염철론』 『한서』 『정관정요』 『자치통감』 운몽진간雲夢秦簡 등 수많은 고서를 ‘진나라’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다. 진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수호지 운몽진간(1975년 12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운몽현雲夢縣 수호지睡虎地에서 발굴된 진묘秦墓에서 나온 죽간)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저자는 한나라 때 저술된 『사기』를 위주로 진나라에 관한 내용을 꼼꼼하게 재정리하면서 이를 운몽진간과 비교해가면서 검증했다. 나아가 이러한 진나라에 대한 탐구는 역사의 현재성이라는 관점에서 ‘진시황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물리며 책의 대단원을 이룬다. 결국 저자는 진시황을 제대로 보고 평가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할 수 있다.
■수천년 전해진 진 제도의 영향 입증■
진나라 제도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다. 역사문헌과 연구물들을 읽다 보면 “한나라는 진나라의 여러 제도를 계승했다漢承秦制”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 제도秦制’의 기본 원칙과 제도가 2000여 년간 중국 역사에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진시황이 확립한 천황제도는 그야말로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대로 수천 년간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진시황이란 인물에 함축된 사회역사적 의미 독해■
진시황이라는 인물에는 사회역사적인 의미가 다각도로 함축되어 있다. 세계사에서 그는 최초로 진정한 국가와 법의 이론체계를 현실화했으며 유라시아 대륙에서 제국을 세운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국의 고대문명사에서 진시황은 춘추전국의 사회적, 역사적 변혁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정치사적 관점에서는 왕조 교체를 이룬 장본인이며 정치제도사에서 볼 때는 최초로 명실상부한 ‘대일통大一統’을 달성해 군주제도를 수립한 통치자이다. 또한 사상사의 관점에서 선진先秦시대의 군주라는 관념을 집대성하여 ‘황제皇帝’라는 호칭을 만들어냈다. 법제사의 관점에서 진시황은 최초로 ‘법치’를 실천한 황제였다. 문화사적인 관점에서는 문자, 수레바퀴의 너비, 각종 제도, 이론을 통일하여 중화문명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한편 토목건축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의 이름은 세계 불가사의로 불리는 만리장성과 진시황릉 병마용에 연계되어 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볼 때 절대 권력이 그에 버금가는 역사적 인물은 또 있겠지만 중국 고대사에서는 그의 존재가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영웅과 폭군, 야누스처럼 얽힌 구조 해명■
진시황은 영웅과 폭군의 일면을 모두 지닌 야누스적인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사납고 용맹스러운 효웅만이 정치적 영웅이 될 수 있었으며, 전제 정치를 위해서는 독단적이고 포악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시황은 통치 기간 중 6가지 악정을 저질렀다. 즉 무절제하게 황궁을 증축했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규모의 황릉을 조성했으며, 모든 일을 다 제치고 태산에 올라가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렸다. 또한 불로장생할 수 있는 선약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동원했고, 『시경』과 『서경』을 비롯한 수많은 서책을 불태웠으며, 수많은 학자術士를 생매장하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연좌시켰다. 역대 황제와 비교해볼 때, 진시황이 세운 공적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지만 그가 저지른 악정 역시 매우 심각하다. 그는 중국 군주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주었고 심지어 군주제도의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황제千古一帝”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악한 독재자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까지 진시황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어느 것이 옳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시황과 진나라의 여러 제도를 ‘폭압’이라고 막연하게 폄하하면 중국의 군주제도와 관련된 여러 역사적 현상을 전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전제주의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산력 향상과 사회개혁이라는 시각■
결과적으로 『진시황 평전』은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 다양한 각도로 진시황을 개성 있게 재현했다. 진시황의 일생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그의 업적과 과오를 평가했다. 나아가 진나라의 형성과 복잡한 제국의 역사도 명쾌하게 해명했다. 진 제국은 진시황을 비롯한 몇몇 정치 영웅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건설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일련의 사회개혁의 결과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