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의사는 병이 아닌 사람을 치유해야 한다”
의학이 어루만진 한국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치료받을 수는 없다. 가난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특정 질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도 있다. 전쟁과 전염병이 닥치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의학 역사는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하고 의료 기술을 발전시킨 과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의료의 문턱을 낮추고, 질병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고, 더 많은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온 과정까지가 의학의 역사인 것이다.
책에서는 조선시대 여성 의료 개척, 최초의 민간 의료 보험 설립, 한센병 환자 인식 개선 등 병 너머 사람을 생각했던 의학의 따뜻한 손길을 되짚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의학과 질병에 관한 지식은 물론,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한국 역사의 중요한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한국 의학을 세계로 이끌다
근대식 병원과 의학 교육이 막 시작되던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의학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환자와 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헌신한 의사들이 있다. 세계가 주목한 성취도 있었다. 이호왕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인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진단법과 백신 개발까지 이끌며 노벨 의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이종욱 총장은 결핵과 소아마비 퇴치에 앞장선 끝에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 올랐다. 환자를 치료할 제대로 된 병원도 없던 최빈국에서 세계 의학을 선도하는 선진국의 자리까지, 한국 의학이 성장해 온 역사를 1세대 의사들의 삶을 통해 생생하게 만난다.
· 〈방과 후 인물 탐구〉 시리즈
“학교 밖에서 시작하는 교과서 안팎 인물 공부”
01 여기는 18세기, 음악이 하고 싶어요 - 모차르트부터 윤이상까지 세계적 음악가들은 십대에 뭐 했을까?
02 이상한 나라의 기발한 건축가들 - 지구에 없는 디자인으로 도시의 풍경을 창조하다
03 애덤 스미스 씨, 경제를 부탁해! - 국부론부터 암호화폐까지 인물로 읽는 경제사
04 스마트폰에서 나온 수학 천재들 - 계산기부터 보안 체계까지 수학이 만든 세상
05 유배도 예술은 막을 수 없어 - 허균부터 정약용까지 고난 속에서 피어난 조선 7인방
06 그래서 과학자는 단위가 되었죠 - 일상 속 어디에나 있는 과학 천재들
07 지구를 선택한 사람들 - 우리 지구를 위해 행동한 11명의 환경 이야기
08 별 헤는 광야의 시인들 - 일제강점기에도 꺾이지 않은 저항 시인 7인
09 인권을 들어 올린 스포츠 선수들 - 한계를 정면 돌파한 12명의 올타임 레전드
10 작은 것들을 사랑한 생물학자들 - 세포부터 DNA까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쓸모를 찾아서
11 한국사를 바꾼 협상의 달인들 - 총칼 대신 지혜로 맞선 여덟 번의 승부
12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 지구 너머를 꿈꾼 우주 발견의 역사
13 주기율표를 만든 원소 수집가들 - 실험실의 고인 물부터 과학계의 아이돌까지
14 빼앗긴 나라의 한글 독립투사들 - 주시경부터 이수열까지 우리말 애국자 6인
15 신문을 뚫고 나온 인권 운동가들 - 테레사부터 말랄라까지 역사를 바꾼 히어로들
16 왕을 사로잡은 조선의 덕후들 - 과학부터 예술까지, 역사를 바꾸다
17. 희망을 처방한 대한의 낭만 닥터들 - 한국 의학의 첫걸음이 된 의사 7인
책 속으로
병원에서는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고, 바깥에서는 나귀를 타고 각지를 누비며 진료를 이어 가던 박에스더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어.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지. 그래서일까? 한국 생활이 5년째에 접어들던 1905년 여름,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앗아 간 전염병인 결핵에 걸리고 말았어. 당시 결핵은 조선뿐 아니라 유럽에도 엄청난 희생자를 안긴 무서운 병이야.
박에스더는 결핵에 걸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진료를 포기하지 않았어. 몸이 버티는 한 환자들을 돌보겠다며 멈추지 않고 당나귀를 몰았지
--- pp.23-24〈조선 최초로 흰 가운을 입은 여성 _ 박에스더〉 중에서
박서양은 간도에 ‘구세의원’이라는 병원을 세워 조선인들을 치료했어. 그리고 여기서 번 돈을 아낌없이 내어 숭신학교를 설립했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직접 독립군의 장교가 되어 무장 항쟁에도 뛰어들었어. 우리에게 익숙한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나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에도 직접 참여해 부상자를 치료했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 눈 덮인 만주 벌판과 험난한 산악 지대에서 박서양은 독립군 곁을 지켰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술을 하고 약을 지어 먹였어.
--- p.40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정 출신 의사 _ 박서양〉 중에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임시 수도 부산은 몰려든 피란민으로 터져 나갈 듯했어. 수많은 사람들이 판잣집을 지을 땅이 없어 누울 곳을 마련하려 산비탈을 기어올랐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 고단하고 불안한 피란민 생활 중 가장 두려운 건 가족 중 누군가 병에 걸리는 일이었어. 당시에는 제대로 된 병원이나 약국이 많지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당장 먹고살 돈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웠거든. 그런데 그런 피란민들에게 뜻밖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
“병원이 생겼는데 무료래! 의사 선생님이 무료로 진료해 준대!”
1951년, 부산 영도에 ‘복음진료소’라는 이름의 무료 진료소가 생긴 거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던 피란민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지. 이 진료소를 처음 연 사람이 바로 한반도 최고의 의사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야.
--- pp.46-47〈가난한 병자를 돌본 바보 의사 _ 장기려〉 중에서
전종휘가 온갖 전염병과 분투하고 있던 1949년 여름, 고열,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우후죽순 병원에 몰려오기 시작했어.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원인을 밝혀 내지 못했지.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며 ‘괴질’이라 불렀어. 결국 1949년 한 해에만 5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 괴질에 걸렸고, 절반이 세상을 떠났어.
--- p.73 〈조선의 전염병 추격자 _ 전종휘〉 중에서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이 계속되던 1961년 9월, 군복을 입은 의사 한 명이 소록도에 발을 내딛었어. 그의 이름은 조창원. 조창원은 소록도에 오기 전 강원도 홍천의 육군 제2야전병원에서 병원장으로 근무했어. 당시 한국은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격동의 시기였어.
--- pp.84-85〈편견에 맞선 한센인의 아버지 _ 조창원〉 중에서
세계보건기구와 여러 나라 전문가들이 급히 조사에 들어갔어. 검사 결과, 원인은 ‘한타 바이러스’였지. 의료진은 위급한 환자를 먼저 병원으로 옮겼고, 그들과 접촉한 승객들은 철저한 관리 아래 순서대로 배에서 내릴 수 있었어.
다행히 크루즈선 집단 감염은 대규모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았어.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타 바이러스에 사람들은 주목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그거 알아? 세계를 긴장하게 만든 이 바이러스의 이름이 우리나라의 한탄강에서 이름을 딴 ‘한탄 바이러스’ 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말이야.
--- p.101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다 _ 이호왕〉 중에서
어느 날 환자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던 이종욱에게 뜻밖의 제안이 날아왔어.
“세계보건기구에서 함께 일해 보지 않겠습니까?”
세계보건기구는 여러 나라가 공중 보건과 위생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기 위해 유엔에서 설립한 국제기구야.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보건 대책을 세우고, 전염병 예방과 치료 계획을 세우는 곳이지. 결국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한다는 것은 환자 한 명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해 전염병의 최전선에 서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어. 이종욱은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 pp.128-129 〈지구촌의 건강을 책임진 리더 _ 이종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