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염·저당·대체육 시대, 맛은 어떻게 감각하고 설계되는가?
현대 식품산업은 저염·저당 제품, 대체 단백질 식품, 지속가능한 먹거리 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기후 위기와 같은 사회적 문제는 식품의 건강성과 환경성을 요구하지만, 시장에서는 건강과 지속가능성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다. 소비자가 ‘맛이 없다’라고 느끼는 순간, 아무리 좋은 제품도 철저히 외면당한다. 저염·저당 식품은 풍미가 밋밋해지기 쉽고, 대체육은 특유의 비린내와 이질적인 질감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지속가능 원료를 활용한 제품도 기존의 익숙한 맛을 재현하지 못해 상업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맛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혁신적 시도는 시장에서 좌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맛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절할 것인가’가 식품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과제가 되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미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단맛은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 짠맛은 전해질 균형, 쓴맛은 독성 회피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미각은 단순히 생리적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음식은 문화적 상징이자 사회적 경험의 매개체이며, 미각은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문화를 함께 형성하는 복합적 감각이다. 따라서 오늘날 미각은 ‘주어진 감각’이 아니라 과학, 기술, 심리, 환경에 따라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경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각 해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발한다.
‘해킹(hacking)’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법과 범죄가 먼저 떠오른다.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개인정보 유출’이나 ‘전산망 침투’ 같은 사건이 그렇다. 그러나 해킹의 본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괴적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해킹이라는 단어는 1960년대, 미국 MIT의 동아리인 ‘테크 모델 철도 클럽’에서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철도 모형을 더 정교하게 움직이기 위해 전기 회로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배선하며,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개량하는 일련의 창의적 시도가 바로 ‘해킹’이었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고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탐구였다. 이후 이 정신은 컴퓨터와 전자 시스템으로 옮겨와 운영체제를 바꾸거나 기계를 전혀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해킹이란 결국 ‘파괴’가 아니라 ‘재해석’이고, ‘침입’이 아니라 ‘창조적 개입’이다.
이러한 해킹의 개념은 점차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타이머가 없는 커피 메이커에 스마트 플러그를 연결해 타이머의 역할을 자동화하는 것, 어린이 장난감을 개조해 뇌파 실험 장비로 사용하는 것, 더 나아가 수면 시간을 조절하거나 특정 방식의 식단을 실험하는 ‘바이오 해킹’까지. 해킹은 더 이상 특정 기술자들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생활 속 작은 불편을 해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맛과 향을 다루는 감각적 경험 역시 해킹의 대상이 된다. 달콤한 향을 연출해 디저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 실제로 먹었을 때 훨씬 더 풍부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후각이 자극되면 뇌는 이미 ‘맛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세우고, 혀는 그 예측에 맞추어 경험을 해석한다. 디저트가 단순한 음식에서 하나의 몰입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것은 단순한 조리 기술을 넘어 감각의 구조를 이해하고 개입하는, 일종의 ‘미각 해킹’이다.
감각을 설계하다: AI와 과학이 이끄는 ‘미각 해킹’의 세계
맛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영양학과 조리학의 범주에서 다루어져 왔다. 영양학은 영양소와 건강의 상관성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지만, 미각 경험 자체를 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조리학은 전통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맛을 탐구했지만,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 기반 전략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뇌과학은 맛과 후각, 청각, 시각의 통합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있으며, 감각공학은 전자혀나 전자코와 같은 장비를 통해 인간 감각을 모사하고 있다. 데이터 과학과 인공지능은 분자의 구조를 학습해 향미를 예측하거나, 소비자 반응을 분석해 맞춤형 레시피를 제안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전통 요리가 재료의 본래 풍미를 존중하며 불과 물, 시간과 숙련을 통해 맛을 다듬어 왔다면, 미각 해킹은 뇌가 맛을 해석하는 방식을 직접 겨냥한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음식의 색을 붉게 만들면 더 달게 느껴지고, 바삭한 소리를 증폭시키면 실제보다 더 신선하고 고소하게 인지되는 현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나아가 미세한 전기 자극을 이용하면 소금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음식에서도 ‘짜다’라는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미각 해킹은 물질 자체를 바꾸기보다 감각과 인식의 경로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각 해킹은 단순한 요리 기법이 아니라 생리학, 공학, 심리학이 결합된 융합 기술로 이해해야 한다. 목표 또한 단순히 강한 맛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건강을 위해 염분과 당을 줄이면서도 만족감을 유지하거나, 질병이나 노화로 미각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맛의 경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일에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미식과 예술, 감각 디자인을 결합하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각 세계를 여는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미각 해킹은 더 이상 ‘맛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기술’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 구조와 뇌의 해석 방식을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건강과 예술, 교육과 산업, 나아가 사회 전반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감각 혁신의 전략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경험하는 ‘맛’은 결코 혀의 수용체 반응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각과 청각, 후각과 촉각이 동시에 작동하고, 개인의 감정과 기억, 문화적 맥락과 기대 심리가 겹쳐질 때 비로소 하나의 맛 경험이 형성된다. 미각 해킹은 바로 이 복합적 감각의 교차 지점을 의도적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다.
최근의 미각 해킹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AI와 빅데이터, 딥러닝과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인간이 직관적으로는 접근하지 못했던 새로운 조합과 소재의 가능성을 추론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맛의 방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미각 해킹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흐름 중 하나인 ‘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푸드테크 산업 안에서 새로운 영역과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해킹은 결국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다.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이 회로를 개조하는 일이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발상이든, 혹은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여는 시도든 말이다. 해킹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세상은 이미 정해진 대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이해하고 개입하는 만큼,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린다.”
책 속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미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한다. 단맛은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 짠맛은 전해질 균형, 쓴맛은 독성 회피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미각은 단순히 생리적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음식은 문화적 상징이자 사회적 경험의 매개체이며, 미각은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문화를 함께 형성하는 복합적 감각이다. 따라서 오늘날 미각은 ‘주어진 감각’이 아니라 과학, 기술, 심리, 환경에 따라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경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각 해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발한다.
- 16p
21세기 식품 산업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건강이다. 이제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서 대사를 조절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소비자의 관심 역시 ‘맛있는 음식’에서 ‘건강에도 좋은 음식’으로 이동했다. 저당, 저염, 저지방, 고단백, 기능성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오래된 역설이 자리한다. ‘건강하면 맛이 없고, 맛있으면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이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기능성 식품은 시장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바로 이 간극을 메우는 전략이 미각 해킹이다.
- 95p
대체육은 단순히 동물성 단백질을 식물성 원료로 치환하는 모방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미각 시스템을 정밀하게 이해하고, 실제 고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감각 설계의 과학이다. 같은 단백질이라도 사람은 그것을 고기 혹은 콩고기 혹은 정체불명의 단백질 덩어리로 해석한다. 이 차이는 영양소 조성보다도 향과 질감, 육즙감, 색, 조리 맥락, 그리고 그 모든 자극을 통합해 의미를 부여하는 뇌의 해석에서 발생한다. 대체육은 결국 고기 대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기라는 ‘경험’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며, 식품공학·향미 화학·감각공학·인지과학이 한 지점에서 결합되는 미각 해킹의 대표적 응용 분야이다.
- 162p
시장에서는 건강이 첫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재구매를 결정하는 힘은 언제나 감각 만족에 있다. 저염·저당 전략이 반복적으로 실패했던 이유는 결핍의 메시지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한 번은 선택할 수 있지만, 맛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저염과 저당은 감축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무언가를 빼는 일이 아니라 맛의 골격을 다시 짜는 일이다. 염도와 당도를 줄이되 감칠맛, 향, 질감, 점도, 색채, 서사를 함께 조정하여 ‘건강하지만 맛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미각 해킹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감각 공학과 인지 심리 그리고 시장 전략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경험이다.
- 225p
미각 해킹의 확장 가능성이 가장 절실하게 드러나는 영역은 고령층과 환자식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세계적으로도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의료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고령층의 식사는 더 이상 부드럽게 만들면 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저작 기능이 약해질 뿐 아니라, 미각과 후각 자체가 둔화된다. 연구에 따르면 70세 이상 고령자는 20대 성인에 비해 단맛과 짠맛에 대한 민감도가 약 30% 낮아지고, 쓴맛과 신맛에 대한 인지는 그보다 더 크게 저하된다. 침 분비량 감소까지 겹치면 음식 속 맛 분자는 혀 표면에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음식은 ‘밋밋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 3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