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아이돌은 왜 악령과 싸우고 귀신은 왜 다시 돌아오는가
이 책의 출발점은 가장 현재적인 K컬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세계적인 K팝 걸그룹 헌트릭스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동시에 악령과 싸운다. 아이돌과 퇴마사라는 얼핏 기묘한 조합이다. 그러나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의 오래된 문화적 상상력이 모습을 드러낸다.
루미의 검은 조선시대 의례용 검인 사인검의 이미지를 끌어오고 미라의 곡도는 한국의 전통 장병기인 월도와 협도에서 가져오고 조이의 신칼은 무속에서 사용하는 대신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매기 강 감독 역시 한국의 무당과 굿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며 굿을 ‘최초의 콘서트’에 비유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돌이 무당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능의 비유’다. 무당이 굿판에서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한곳으로 모으고 해소의 방향을 열었다면 오늘의 아이돌은 무대와 팬덤 안에서 흩어진 감정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는다. 노래와 춤, 응원법과 응원봉, 댓글과 스트리밍이 결합할 때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그 판의 일부가 된다.
「도깨비」와 「파묘」를 바라보는 시선도 같다. 「도깨비」가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 기억과 환생, 한과 사랑을 판타지로 풀었다면 「파묘」는 조상과 묫자리, 땅의 기운과 역사적 원한을 오컬트로 끌어올렸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오래된 감각을 공유한다. 죽은 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조상과 후손의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풀리지 않은 원한과 기억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형 오컬트의 핵심을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관계와 해원에서 찾는다. 귀신을 없애는 것보다 왜 그 귀신이 아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지 묻는다. 귀신, 저승, 조상, 묫자리는 공포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한국인이 오랫동안 삶의 불안을 해석하고 견디고 풀어온 서사의 장치이다.
굿판에서 아이돌 콘서트장까지 한은 어떻게 신명이 되는가
K컬처의 또 하나의 비밀은 ‘참여’에 있다. 사람들은 K팝을 가만히 앉아 구경하지 않는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안무를 따라 하고 정해진 응원법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같은 색의 응원봉을 흔든다. 팬들은 스트리밍과 투표에도 참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성공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굿판이 떠오른다. 굿판 역시 무당 한 사람의 공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음악과 춤, 장단, 말과 울음, 의복과 무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한 판 안에서 움직인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굿판 위에 올라오면 노래, 춤, 말, 울음이라는 형식을 얻고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건이 된다. 굿은 고통을 없애는 마술이라기보다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고 관계의 막힘을 살피며 다시 살아갈 방향을 찾게 하는 의례라고 설명한다.
오늘의 K팝 콘서트 역시 응원봉, 떼창, 팬 구호, 군무, 앙코르를 통해 흩어진 감정을 모으고 폭발시킨다. 물론 굿과 K팝은 전혀 다른 시대와 산업에 속한다. 그러나 음악, 춤, 의상, 무대, 이야기와 관객의 참여가 결합되어 하나의 강한 몰입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비교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원’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여기에 한국 문화의 감정 엔진인 ‘한과 신명’이 들어온다. 이 책에서 신명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 신나는 상태가 아니다. 슬픔과 분노처럼 눌려 있던 감정이 장단, 춤, 추임새, 공동체의 호응을 만나 움직이기 시작할 때 생기는 감정의 전환이다. 판소리, 농악, 굿판에서 느린 장단이 점차 빨라지고 마침내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폭발에 이르는 것처럼 K팝 역시 반복, 고조, 몸의 참여를 통해 집단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팬들이 K팝을 단순히 ‘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몸으로 따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K컬처는 관객을 밖에 세워두기보다 판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공지능 시대에 왜 다시 사주와 타로를 찾는가
이 책에서 저자들의 시선은 마지막에 뜻밖의 장소로 향한다. 스마트폰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사주 앱을 켜고 유튜브에서 타로를 보고 라이브 방송에 고민을 적는다. 인공지능에 자신의 사주를 묻기도 한다. 정보와 데이터가 어느 시대보다 넘쳐나는데 오히려 오래된 운세와 점술의 언어가 디지털 세계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왜일까? 저자들은 젊은 세대가 사주와 타로를 찾는 이유를 단순히 미래를 맞히고 싶어서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왜 관계가 어려운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움직여야 하는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설명해줄 언어를 찾는다. 과거 철학관, 점집, 굿판이 일부 담당했던 자리를 앱, 유튜브, 라이브 방송, 댓글창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받는 것이다. 사주와 타로는 때로 불안을 다루는 작은 완충재가 된다. 그 역할을 조명한다. 다만 책은 여기에 명확한 선도 긋는다. 위로와 통찰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정과 책임까지 운세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완충재는 어디까지나 완충재다. 삶을 움직이는 운전대와 혼동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운전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K컬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이 말하는 K컬처의 힘은 ‘한국적인 것이어서 특별하다’는 단순한 민족 문화론이 아니다. 한국 문화 안에 오래 축적되어온 감각이 현대의 장르와 기술을 만나 전혀 새로운 형태로 번역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귀신과 저승은 이야기와 영화가 되고 굿판의 몸과 리듬은 공연의 새로운 언어와 비교될 수 있고 한과 신명은 팬덤이 함께 감정을 고조시키는 문화로 이어진다. 사주와 운세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 전통의 겉모양이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불안을 이야기로 바꾸고, 막힌 감정을 몸과 리듬으로 풀고, 혼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공동의 판으로 옮기는 방식이 새로운 매체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인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답을 내놓는 시대를 산다. 그러나 답이 많아졌다고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술은 결과를 제시하지만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견디는 마음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K콘텐츠가 반복해서 다루는 상실과 관계의 회복, 한과 해원, 몸의 참여와 공동체의 감각이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닿는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세계는 왜 K컬처에 홀리는가?” 그 답은 화려한 무대나 세련된 영상미에만 있지 않다. 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서사로 부르고 막힌 감정을 몸으로 풀고 혼자의 불안을 공동의 판으로 옮겨온 “한국인의 오래된 감각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K컬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감각을 품고 살아온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 속으로
한국 문화는 겉으로 보기엔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화려한 무대, 압도적인 퍼포먼스, 정교한 서사, 빠른 편집, 눈부신 미장센이 돋보인다. 그런데 한국 문화를 접할수록 표면 아래에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더 오래 남는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떨림, 말로 정리하기 전에 먼저 몸이 알아채는 기류, 누군가의 한숨과 기도가 겹칠 때 생기는 밀도…….
한국 문화의 보이지 않는 요소는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 스며든 운과 때와 기운과 관련이 깊다. 무속, 명리, 주역은 서로 다른 전통이면 서도 한국인의 삶 속에서 운과 때와 기운을 해석하는 언어로 함께 활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굿판의 북소리, 카페의 사주풀이, 경전의 괘 풀이가 한 사람의 삶을 해석하는 기술로 다양하게 쓰인다.
--- p.6
무당은 본래 신과 인간,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오가며 공동체의 불안을 대신 감당하는 존재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역할을 오늘의 아이돌 이미지로 바꾸어 보여준다. 아이돌은 무당이 아니지만 현대의 공연장에서 팬들의 감정과 에너지를 모으고 집단적 몰입을 만들어내는 매개자가 된다. 그 상상력은 여기서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진다.
작품 속 무기와 의례적 이미지도 한국적 퇴마의 상상력을 떠올리게 한다. 사인검은 검을 연상시키고 칼과 부채와 방울 같은 무구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은 관객에게 정화와 보호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K팝의 표면만 빌려온 작품이 아니라 한국 문화 안에 오래 축적된 퇴마와 의례의 상상력을 현대적 애니메이션 문법으로 바꾸어낸 작품임을 보여준다.
세계의 관객들은 화려한 음악과 캐릭터에 끌렸지만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악을 물리치고 불안을 노래와 춤으로 밀어내고 팬들과 함께 보호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K팝의 세계적 문법과 한국인의 무속적 상상력이 만난다.
--- pp.20-21
아이돌이 악령과 싸우는 상상력은 하나의 작품 안에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 콘텐츠는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불러내고 그 세계와 산 자의 관계를 다시 묻는 방식으로 깊이를 만들어왔다. 물론 아이돌을 실제 무당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샤먼이 된 아이돌’은 기능의 비유다. 무당이 굿판에 서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한곳으로 모아 해소의 방향을 열었다면 오늘의 아이돌은 무대와 팬덤 안에서 흩어진 감정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는다. 노래와 춤, 응원법과 응원봉, 댓글과 스트리밍이 결합할 때 팬들은 단순히 관람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도 그 판의 일부가 된다. 바로 이 참여의 구조가 K팝의 매혹을 깊게 만든다.
--- p.28
이렇게 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악령, 「도깨비」의 저승, 「파묘」의 묫자리는 서로 떨어진 소재가 아니다. 모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불러내고 그 세계와 산 자의 관계를 다시 묻는 K컬처의 깊은 문법이다. 그 문법은 이제 이야기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빛을 흔들고 같은 구호를 외치고 같은 리듬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K팝 콘서트장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난다.
한국형 오컬트의 힘은 귀신을 무섭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귀신이 왜 그 자리에 남아 있는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어떤 말이 끊겼는지, 조상과 후손 사이에 어떤 빚과 기억이 남아 있는지를 묻는 데 있다. 그래서 한국 콘텐츠에서 공포는 자주 해원과 위로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악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얽힌 관계를 풀고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이 점이 한국형 오컬트가 세계 관객에게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하게 다가가는 이유다.
--- p.35
K팝 콘서트는 무대 위의 아이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이 같은 색의 응원봉을 흔들고 정해진 구호를 외치고 후렴을 함께 부르고 앙코르를 요구하는 순간 공연장은 하나의 거대한 판이 된다. 굿판에서 참여자가 추임새와 호응으로 판의 열기를 올렸듯이 K팝 콘서트의 팬도 무대의 리듬을 함께 만든다. 이 점에서 팬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공연의 공동 수행자다.
응원봉은 단순한 굿즈가 아니다. 수만 개의 빛이 동시에 켜지고 꺼지며 같은 색의 파도를 만들 때 관객은 자신이 거대한 리듬의 일부가 되었음을 몸으로 느낀다. 팬 구호 역시 단순한 함성이 아니다. 미리 정해진 구호를 같은 박자에 맞춰 외치는 일은 개인의 목소리를 집단의 호흡으로 바꾸는 장치다. 그 순간 공연장은 보는 공간에서 참여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이 참여의 구조는 K팝이 세계적으로 강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 pp.46-47
K팝에서 세계관도 똑같이 문턱을 만든다. 티저 이미지, 인트로 영상, 로고, 뮤비의 서사, 콘셉트 필름은 홍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 이제부터 너는 이 이야기의 규칙 안으로 들어온다는 입장권이다. 이 입장권을 가진 팬은 음악을 그냥 소비하지 않는다. 곡을 해석하고 연결하고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세계관이 K팝의 두께와 깊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는 팬덤이 아이돌의 이미지와 콘셉트로 소비했다면 세계관을 도입한 후에는 활동 전반이 설정으로 체계화되고 통합되어 계속 파고들 수 있는 텍스트가 됐다.
신명도 이와 비슷하다. 굿의 장단은 한 번 치고 끝나지 않고 판이 깊어질수록 의미가 두꺼워지고 몸이 더 깊이 들어간다. 즉 둘 다 깊이를 설계하는 장치다. 또 하나의 접점은 둘 다 참여형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굿은 구경하는 관객을 전제로 하지 않고 참여자를 전제로 한다. 추임새와 호응, 웃음과 탄성, 때로는 춤을 추며 합류한다. 굿판은 항상 양방향으로 완성된다. K팝 세계관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세계관을 더 큰 틀에서 보면 팬덤이 떠들고 몰입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소재, 이른바 ‘떡밥’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