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살아 있는 현재’로서 해방전후사 인식의 중요성을 진단한다!
세계정세의 급변속에서 종교, 민족, 이념, 언어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활하고 미국과 유럽, 아시아와 제3세계는 지구촌이라는 기치 아래 더욱 두터운 갈등과 대립을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모든 것이 기화한 듯 보이지만 배타적 종교이념과 전체주의적 민족애는 기실 경제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집요하고 적나라하게 타문화, 타민족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이 급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래 없이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한창이다. 변화와 안정을 두 축으로 하는 사회의식의 차이는 지역, 나이를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 학벌, 경제수준, 가치관, 세계관의 거리까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합리적 보수, 건강한 진보라고 하기엔 분열의 극이 참으로 멀다. 진보진영을 비판하는 데 빠지지 않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실체 그리고 보수진영의 아킬레스 친일과 유신의 역사. 이념 공방이라 하기엔 맹목적 배타가 짙을뿐더러 친일식민의 역사보다 친북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레드 콤플렉스에의 집착 또한 오늘 서로의 대화를 차단하는 어둠의 그림자라는 사실만은 명징하다. 하지만 공존하지 못하는 진보와 보수의 논리는 공동체를 위한 대안으로 더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공존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위해, 대화의 합의점을 모색하기 위해, 나아가 참다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우리는 아픈 현대사의 원류를 향해 객관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4반세기 만에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다시 펴내면서
‘일제 말 친일의 형태는 이후의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해방의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우리 민족은 어떤 상황 아래 분단되었는가, 월북과 월남의 움직임 속에서 서로의 삶과 문화가 몰살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북한의 1인 체제와 남한의 공포정치는 그 본질에서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들은 반세기 이전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오늘 우리 현실과의 거리가 너무나 가깝다. 역사의 맥락을 바로 알고 현재의 가치판단의 근거를 찾아내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은 반드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을 읽어내고 새롭게 고찰해야 할 것이다.
『해전사』는 친일 군상부터 반민특위, 미군정,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해방전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처의 흐름을 매우 사실적으로 진단하는 동시에 오늘의 역사, 사회의 현실적 맥락이 무엇이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적확하게 해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1979년 10월 첫 출간 이후로 이 책은 지식인, 학생을 비롯한 민중들 사이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회자되기 시작했고 이윽고 검열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초판이 불꽃 같이 판매되었고 2쇄, 3쇄를 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 책은 계엄령 아래서 군 당국의 검열을 받으며 ‘판금’이라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당시에 대한 체험을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한 권의 책이란 우리들 자신의 지향의 한 반영일 터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묻는 준엄한 지적재판정이기도 할 것이다. 1979년 10월 15일, 10?26 정변 열하루 전에 간행된 『해전사』 제1권은 민족분단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강한 질문이었다. 외세에 의해 민족과 국토가 분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기왕의 분석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10?26으로 한동안 판금되었지만 나는 80년 서울의 봄, 서울시청에 진주하고 있던 계엄군 검열실을 찾아가 그들과 토론을 벌였다. (……) 민주주의와 민족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출판은 정부 권력에 의해 사갈시되었다. 5?17 이후에 우리 저자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조사받았으며 또 대학으로부터 쫓겨났다. 정부당국은 한길사를 아예 없애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82년에 나는 문공부로부터 영업 정지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1주일 만에 몇몇 분들의 도움을 받아 그 영업정지 행정조치를 취소시키는 기록을 남겼다. 나에게 그것은 대단한 체험이었다. 장관이 결재한 것을 번복시켰으니 말이다.(1994년 한길 북리뷰 중에서)”
공시적 관점을 넘어 사회의 병합구조를 읽어내기 위한 한걸음
하지만 변화의 화살표를 따라가고자 하는 민중의 욕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더욱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통한 연구 성과, 해방 후 전개된 민족운동사의 집중 조명, 남북한의 각기 다른 사회적 발전과 변화와 그 중심쟁점들을 파헤치며 10년에 걸쳐 전6권까지 출간되기에 이른다. 『해전사』는 우리 현대사의 흐름과 더불어 그 시대를 점유했던 수많은 지식인,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깝게는 미국의 패권과 이라크의 문제, 골 깊은 지역주의와 세대간 갈등 등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은 『해전사』의 의미를 이렇게 되새긴다.
“E.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규정하면서 살아 있는 역사로서의 현재, 그리하여 미래를 만들어가는 근본으로서의 현재를 강조한 바 있다. 해방전후사는 바로 이렇듯 우리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살아 있는 현재로서의 과거다. 해방전후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시기에 대한 인식이 곧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 정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근거이자 토대이기 때문이다. 1980년에 시작되어 10년 만에 완간된 『해전사』는 80년대 우리 운동이 획득한 하나의 학술적 성과이자, 우리 사회가 도달한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척도라고 할 만하다. 『해전사』는 우리 모두에게 현재의 직접적 근거이자, 역사적 교훈의 직접적 근원인 해방전후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길잡이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가 『해전사』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시적 관점만으로는 독특한 사회역사적 구조를 병합하고 있는 우리를 철저히 진단해내는 데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해전사』를 읽어내는 것은 정치, 언론이 밝혀내지 못하는 해방 후 분단과 유신에 이르기까지의 암흑을 밝혀내는 중요한 한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