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훈족’, ‘몽골족’, ‘투르크족’
3대 유목 민족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러시아의 전설적 역사가 구밀료프의 대표작!
칭기즈칸 제국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는 『원조비사』는 정사가 아니라 왜 ‘뒷담화 형식일까?
러시아 탄생기인 『이고르 원정기』는 왜 몽골의 유럽 원정을 빼고는 해독되지 않을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십자군은 왜 몽골족을 ‘야만족黃禍’으로 조작했을까?
예루살렘을 몽골족의 위협으로부터 구한 것이, 이전의 몽골족이 노예로 팔아버린 이집트의 맘루크들이었다고?
몽...
‘훈족’, ‘몽골족’, ‘투르크족’
3대 유목 민족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러시아의 전설적 역사가 구밀료프의 대표작!
칭기즈칸 제국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는 『원조비사』는 정사가 아니라 왜 ‘뒷담화 형식일까?
러시아 탄생기인 『이고르 원정기』는 왜 몽골의 유럽 원정을 빼고는 해독되지 않을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십자군은 왜 몽골족을 ‘야만족黃禍’으로 조작했을까?
예루살렘을 몽골족의 위협으로부터 구한 것이, 이전의 몽골족이 노예로 팔아버린 이집트의 맘루크들이었다고?
몽골이 유럽을 위협하고 있을 때 ‘아시아 한가운데 기독교 사제-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유럽을 떠돌았다. 이 상상만큼 인류의
역사를 파란만장하게 격동시키며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엮어낸 전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설을 추적하는 ‘지리학자-역사학자’ 구밀료프의 시선은
어마어마한 시공간을 넘나들다가 어느덧 『원조비사』와 『이고르 원정기』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문헌학자로 변신한다.
지구사와 미시사를 정교하게 교직한 이 놀라운 책은 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앙아시아 역사를 넘어 역사 자체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채워준다.
■ 로마 교황청의 문서 보관서에서 칭기즈칸의 ‘옛날 친구’까지, 고려부터 이집트까지 광폭의 역사의 캔버스에 그려가는 장대한 인류 역사의 ‘나비 효과(?).’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북경의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뉴욕에 해일이 인다’라는 말이 역사학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흥미진진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즉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침략’을 앞두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을 때 이슬람 배후에 ‘기독교 왕국’이 있으며 이들이 유럽을 구원하러 달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유럽 전역에 퍼졌는데, 이 소문은 유럽과 중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하지만 막상 역사는 예루살렘을 결정적 위기에서 구한 것은 과거에 몽골군에 포로로 잡혀 이집트에 노예-용병으로 팔려갔다가 이집트 왕국을 통치하게 된 맘루크 왕조의 이슬람 노예들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혹시 ‘영웅’이나 ‘민중’이 아니라 황당한 ‘상상’이나 뜬소문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역사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펼치는 캔버스는 로마 교황청의 문서보관소에서 칭기즈칸의 어릴 적 친구까지, 러시아부터 베트남과 고려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나온 어떤 역사학 저서보다 광폭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모든 역사학 연구에 의해서도 풀리지 않는 비밀로 남아 있던 두 세계적 텍스트 『원조비사』와 『이고르 원정기』에 대한 해독에 이르러서는 극미시사의 정점을 보여준다. 칭기즈칸의 역사를 다룬 『원조비사』는 왜 ‘정사’나 (이조) ‘실록’이 아니라 ‘비사’, 즉 ‘뒷담화’일까?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세계 제국의 건설자 칭기즈칸에 대해 왜 이리 횡설수설일까? 우리로 치면 ‘단군신화’에 해당되는 러시아 민족의 탄생기 『이고르 원정기』는 왜 지금까지의 온갖 해독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 같은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가? 왜 ‘원정기’라는 제목과는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계속 미지의 내용과 글자가 출몰하는가? 혹시 13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의 미스터리에 ‘몽골’이라는 두 글자를 넣으면 모든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러시아 민족과 역사의 산모는 ‘몽골’이란 말인가? 그리고 몽골군은 왜 폴란드에서 진군을 멈추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입담은 가히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학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대단한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칭기즈칸의 출현을 이해하려면 ‘영웅전’이 아니라 ‘기후사’를 살펴보아야 하며, ‘몽골족은 잔혹하다’는 황화黃禍라는 황당한 이론을 제2차 십자군이 조작한 이유를 살펴보려면 종교를 빙자한 이들이 얼마나 극도로 타락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문명의 충돌’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중심의 왕조사가 아니라 초원의 민족과 정주민 사이의 교류의 역사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중국사만이 아니라 유럽의 역사도 제대로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고르 원정기』의 비밀은 예상외로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화살’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시 전 세계를 통틀어 몽골군만이 사용하던 ‘뱀 독’ 화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시각을 아직 완벽하게 해독되고 있지 않은 우리의 『삼국유사』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지구화’라는 것이 21세기에 신자유주의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기본적인 상수임을 알려준다. 즉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지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극미사적 사실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진정한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아날학파, 실증주의, 민족주의 역사학 등을 모두 뛰어넘는 본서는 ‘인문역사학의 새로운 상상력’으로 우리 인문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 ‘새 역사는 새 푸대에’ 역사학, 즉 인간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의 지평을 열다
저자는 칭기즈칸의 등장을 연구하기 위해 먼저 기후사 그리고 이와 직접적으로 연동된 인구사를 추적한다. 그리고 항상 이처럼 하늘에서 바라보는 조감,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 그리고 쥐구명에서 듣는 내밀한 역사의 ‘3면경三面鏡’으로 역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이 ‘3면경’은 다시 더 작은 ‘3면경’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생각의 나무’의 3면경으로 귀결되는데, 저자에 따르면 역사학이란 어떤 객관적인 대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편견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처럼 독특한 새로운 인문역사학적 방법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의 파란만장한 개인적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연구하는 대상이 이러한 방법론 말고는 제대로 조명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흉노족과 투르크족을 지구적으로 연구하다보면 기존의 역사적 방법론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가 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중해’를 대상으로 한 아날학파의 장기지속의 역사학도 미시와는 연결될 수 없으며, 마르크스주의도 초원의 역사에는 여러모로 무기력하며, 초원의 역사에는 ‘실증’보다는 종종 ‘상상’이 한층 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본서는 단순한 역사학 분야를 넘어 한편으로는 여전히 민족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이해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인문주의’를 넘어 인간과 역사 그리고 문명의 충돌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신선한 시선을 열어준다. 구밀료프의 ‘민족의 타생’ 이론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민족주의가 얼마나 허술한지가 드러날 것이며,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필연’의 역사학이 얼마나 많은 ‘우연’에 의해 관통되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이며, 역사에서는 상상과 헛소문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냉혹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처럼 ‘러시아’ 역사학자의 신선한 시각으로 가득한 본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어온 인문학 연구 방법론과는 전혀 다른 시각과 관점을 통해 우리의 인문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역사학자-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전혀 다른 역사(학) 이야기
러시아의 역사학자, 민족학자, 인류학자, 페르시아어 번역가로 민족 집단 형성 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초,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안나 아흐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