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조선영화란 무엇인가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조선영화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근대
일본영화·일본영화인과의 관계
조선영화 발굴과 연구 동향
이 책의 방향
# 02. 활동사진의 도래
첫 활동사진 공개
극장가 형성
일본인 주도의 영화 흥행
조선인 영화관 등장
무성영화의 목소리, 변사
# 03. 조선영화의 출발(1919~1922년)
1. 서구 연속영화의 유행
2. 조선인 연쇄극 제작
일본에서 기원한 연쇄극
단성사 주도의 연쇄극 제작
3. ‘영화적인’ 연쇄극
영화적(cinematic) 실천으로서의 연쇄극
서구 활극의 미장센과 일본 신파 서사의 결합
# 04. 무성영화의 제작(1923~1925년)
1. 신파영화의 시대
초기 무성영화계
첫 상업극영화
2. 재조선 일본인 제작사
동아문화협회
부산 조선키네마주식회사
3. 조선영화인의 형성
4. 영화극으로서의 표현방법
무대극에서 영화극으로
화면의 연락
클로즈업/대사(大寫)
5. 일본 신파와 서구 활극이 직조된 스타일
일본 신파영화의 조선적 번안
서구 활극과 블루버드 영화의 영향
# 05. 무성영화의 질적 전환(1926~1934년)
1. <아리랑> 전후 무성영화계
2. 일본인 제작사와 조선영화인의 협업
조선키네마프로덕션
덕영프로덕션
대륙키네마프로덕션
경성촬영소의 원산프로덕션
3. 서구영화와 접속한 <아리랑>
<아리랑> 속의 <카추샤>
유럽 예술영화 사조의 영향
서구 활극 장르의 영향
4. 조선 무성영화의 스타일
시나리오와 촬영대본 분석
<청춘의 십자로>로 본 무성영화 스타일
일본영화 스타일과의 접점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청춘의 십자로>(1934)
# 06. 발성영화와 영화기업화의 모색(1935~1939년)
1. 발성영화의 시대
서구 토키의 수용
외국영화 상영 제한
2. 조선어 토키 제작
경성촬영소의 ‘협업(協業) 시스템’
조선인 자본의 한양영화사
3. 2세대 조선영화인
일본 영화촬영소 유학파
무성에서 발성으로, 스타일의 변화
4. 조선인 영화기업의 등장
<나그네/다비지>가 촉발시킨 일본영화 합작
최남주의 조선영화주식회사
이창용의 고려영화주식회사
조선영화 이출(移出)과 일본 수용
5.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미몽>(1936)
<심청>(1937)
<군용열차>(1938)
<어화>(1938)
<국기 아래 나는 죽으리>(1939)
# 07. 조선영화의 전시체제(1940~1945년)
1. 조선영화의 새로운 국면
조선영화령과 영화신체제
전시체제 개편과 영화계
문화영화 제작
경성의 영화흥행
2. 조선영화에서 국책영화로
식민지/제국의 조선영화
조일 영화계의 교류
최인규의 영화
국책영화 제작 시스템
3. 발굴된 조선영화 분석
<수업료>(1940)
<집 없는 천사>(1941)
<지원병>(1941)
<반도의 봄>(1941)
<그대와 나>(1941)
<망루의 결사대>(1943)
<조선해협>(1943)
<젊은 모습>(1943)
<병정님>(1944)
<사랑과 맹세>(1945)
맺는 말
註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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