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름 속에 담긴 인류의 교양 지식
출산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름, 제왕절개. 왜 전제 군주를 연상시키는 '제왕'이 수술 이름에 붙게 되었을까?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가 이 수술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카이사르는 "나는 여성의 다리 아래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라며 큰소리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수술로 태어난 사람이 카이사르가 처음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에는 사망한 산모라면 배를 갈라서 아이를 꺼내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 남미의 울창한 정글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떠올리게 되는 아마존에 담긴 이야기도 놀랍다. 아마존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부족의 이름인데 이들은 오른쪽 젖가슴이 활 쏘는 데 방해가 되자 이를 도려냈다. 아마존은 그리스어로 젖가슴이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행성들의 이름은 더욱 흥미진진하다. 얼마 전 태양계에서 퇴출된 플루토의 우리말 이름은 명왕성이다. 일본의 천문학자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플루토의 의미를 헤아려 붙인 것이다. 흔히 조문인사로 쓰는 '명복을 빕니다'의 명복은 저승의 복을 말한다. 그러나 명왕이라는 단어는 우리 문화에 없다. 우리말로 대신하면 '염라대왕'이다. 명왕성을 염라성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이뿐 아니다.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 콩코드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 있을까? 콩코드concorde는 끝에 e가 붙는 프랑스어다. 영국과 프랑스는 오랫동안 앙숙이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에 대항하는 혈맹이 되었는데 이들이 손을 잡고 착수한 프로젝트가 바로 초음속 여객기 개발이었다. 그러나 여객기가 완성되자 서로 자기네 나라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그때 드골 대통령이 '화합'을 상징하는 콩코드를 언급했고 결국 영국 정부는 e가 붙은 콩코드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끝에 붙은 e는 유럽Europe의 약자이자 훌륭함excellent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석까지 달았지만 영국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오랜 논란 끝에 영국은 콩코드라는 이름은 받아들였지만, 관사 없이 사용함으로써 콩코드를 고유명사로 보지 않겠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상식을 넘어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저자는 어려서부터 〈사회과부도〉의 지명을 하나하나 익히면서 세계를 발견했고, 이 책을 이름들의 보물섬으로 여겼다고 한다. 책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던 만큼 가보지 않은,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는 〈사회과부도〉만 한 건 없었을 것이다.
의사 공부를 하면서는 너무도 많은 의학용어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 이름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를 보게 되면서, 이름을 생각하고 이름을 모으고 이름들에 대한 글까지 쓰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름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해 온 것이며, 인류의 보편적 지성사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의 '이름들의 오디세이'였고 그 연재를 정리해 묶은 것이 이 책이다. 하나의 이름에 담긴 역사와 신화, 인물들의 이야기. 읽다보면 상식은 물론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까지 생길 수 있다.
책 속에서
많은 신생아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도와주는 제왕절개 수술, 그런데 제왕절개帝王切開란 이름이 참기묘하고 뜬금없다. 전제군주를 연상시키는 ‘제왕’이 왜 수술 이름에 붙었을까? 산부인과 의사들에게그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로마 황제 카이사르(영어식 이름은 시저)가 처음으로 이 수술을 통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왕절개 수술을 뜻하는 c(a)esarean section이란 단어가그의 이름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16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무통분만을 입에 올렸다가는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라.’고 했던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자로 몰렸다. 1591년 영국왕 제임스 1세는 에든버러에서 쌍둥이 분만 중에 산고를 견디지 못하고 진통제를 쓴 여성을 산 채로 화형시켰다. 250년이 지난 1853년, 런던에서 산부인과 의사 심슨James Simpson이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무통분만을 했을 때도 교리에 어긋난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모가 처형되지는 않았다. 그 산모가 빅토리아 여왕이었기 때문이다. -42쪽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 오피엄에서 추출한 여러 알칼로이드를 화학적으로 분석·연구하게 되는데, 그결과 모르핀과 코데인이 핵심 성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1868년에 모르핀과 코데인의 분자 구조를 변형하는 연구들이 시작되고, 19세기 말에 모르핀을 화학 처리해서 만든 디아세틸모르핀이 중독성 없(다고 여겨지)는 강력한 진통제와 기침약으로 시판되었다. 그리고 1898년에 그 효과가 탁월하다는 뜻으로 ‘헤로인heroi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89쪽
1967년 12월에 프랑스에서 콩코드 1호기 시제품이 나왔을 때 이 자리에 참석한 영국 기술부 장관은e가 붙은 콩코드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다만, 영어 Concord의 마지막에 붙은 e가 탁월함(exellence),잉글랜드(England), 유럽 (Europe), 협약(entente)을 뜻하는 의미로 붙는 것이라고 주석을달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결국 콩코드이름을 받아들이되 관사 (a, the) 없이 Concorde로만 부르기로 했다. -148쪽
피파 FIFA 월드컵은 4년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국제 축구 대회이지만, 사실상 그 이름값을 못하고 유럽과 아메리카만의 축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유럽의 강세가 뚜렷해 유로컵Euro Cup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축구 강국들이 모여 사는 유럽 대륙, 그 이름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유럽의 어원은 불행히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납치 사건에 뿌리를 두고있다. -178쪽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유럽인들의 세계관이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했다. 관련된 책도 읽고, 이야기도 들었으며, 이런저런 사물의 이름을 통해 많이 접해서 그런지 친숙하게 느낀다. 그에 비하면 북유럽 신화는 낯설다. 하지만 우리가 은연중에 쓰는 이름 중에서 북유럽 신화에서 온 것들이 적지 않다. 단적인 예가 바로 요일의 이름이다. -208쪽
우리는 플루토를 명왕성冥王星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일본천문학자가 플루토의 의미를 헤아려 붙인 것이다. 흔히 조문인사로 쓰는 표현인 ‘명복을 빕니다’의 명복冥福은 저승에서 누리는 복을 말한다. 하지만 명왕冥王이란 단어는 우리 문화에는 없는 이름이다. 우리말로 대신한다면 ‘염라대왕’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을 무작정 따라 쓸 게 아니라, 플루토를 염라대왕성이나 염라성閻羅星으로부르는 게 어떨까? -241쪽
당시 미국은 육해공군이 각각 미사일과 로켓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해군의 뱅가드와 육군의 레드스톤 의 자존심 대결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미사일과 로켓 개발을 두고 육해공군이 연합작전을 편것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양상이었으니까.1958년에 NASA가 출범하고 나서야 각 군에 흩어져 있던 프로그램들이 통합되었다. 그리고 공군의 토르 로켓을 위성 발사에 썼다. 망치를 들고 다니는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으로, 사람과 신을 통틀어 가장 강한 존재로 여겨졌다.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