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7초, 우리가 그림 앞에 머무는 시간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 프로젝트 제로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이 미술관에서 한 점의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27.2초, 중앙값은 17초에 불과하다. 작가가 수개월, 수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 관객 앞에서 단 17초 만에 소비되는 셈이다. 효율과 속도의 논리가 예술 감상의 영역까지 파고든 결과다. 『슬로 루킹』은 이 ‘17초의 감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가르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함께 머무르는 법
저자는 미술사적 지식이나 분석적 언어를 완전히 내려놓고 대상을 분석하려는 시도조차 멈춘 채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는 ‘관조’와 ‘존재’의 상태를 지향한다. 불교 철학과 마음챙김 명상에 깊이 뿌리를 둔 그의 방법은 ‘텅 빈 마음’으로 작품 앞에 고요히 머무를 것을 제안하며,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려온 도슨트와 에듀케이터들에게 실용적인 돌파구를 제시한다.
미술관에서 시작해 삶 전체로 번지는 감상법
「한 시간에 그림 하나」는 그림뿐 아니라 걷기 명상과 결합한 「한 시간에 조각 하나」로, 나아가 산책과 육아, 반복되는 일상의 순간으로까지 확장된다. 판단을 유보하고 인내심 있게 머무는 경험은 미술관 문을 나선 이후에도 삶의 모든 순간을 더 깊이 인식하게 하는 내면의 근력이 된다.
한국의 미술관에서도 이미 증명된 방법
해제를 쓴 한주연(미술관교육연구회 회장)은 리움미술관의 대화형 감상 프로그램 「다르게 보기」,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느림/누림」, 대전 이응노미술관의 「한 시간에 그림 하나」 등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세 차례의 현장 실험을 통해, 피터 클로디어의 접근법이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생생한 기록이 해제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