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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으로서의 한일관계를 넘어서 : 혐오와 야합의 시대, 성신지교(誠身之交) 다시 돌아보기
논형 20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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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교훈담을 넘어서 - 한일관계의 역사적 궤적으로부터 무얼 배울 것인가?

제1장 _ 생존을 위한 궤변 방편으로서의 ‘조선’
제2장 _ 희생자 의식을 통한 인심의 고취 방편으로서의 ‘왜(倭)’
제3장 _ Gentleman과 부시(武士), 그리고 무사 - ‘방편’에서 내재화된 가치로
제4장 _ 윤치호에서의 ‘일본화’의 행방 - ‘목적’과 ‘방편’의 전도
제5장 _ 혐한의 시대 - ‘한국’이라는 방편의 부활

나오며 ‘일본’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이웃 일본으로

참고문헌 188 / 색인 200
저자 소개
저자 : 유불란
지은이 유불란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국비유학생으로 도일, 도쿄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일본정치사상사를 공부하면서, 1883년부터 1943년이라는 동아시아 근대의 가장 핵심 시기에 대한 방대한 일기를 남긴 윤치호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한중일과 미국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상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그를 통해, 어떤 고정된 교설이 그저 일방적으로 전파-수용된 것이 아니라, 문명화와 관련된 유동적인 의견들이 흘러들고 또 흘러 나가면서 윤치호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문명론 수용자들이 그런 능동적인 논의과정에서 어떤 ‘계산’을 거쳐 문명화지상론의 길을 결단하게 되는지를 추적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및 서강대 글로컬사회문화연구소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 LnL(기숙형 대학) 시범 사업단에서 전담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위논문 이래의 문제의식인 동아시아 단위의 사상적 상호작용의 분석과 그에 입각한 동아시아 공동체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정체성이라는 전략」(2022) 및 Whose Law to Apply? -Kwon I-jin’s Official Report of a 1707 Waegwan Legal Dispute(2020) 와 「정한론, 혹은 방편으로서의 ‘조선’」(2018) 등이, 저서로는 『역사화해의 이정표 1 : 이론적 기초를 찾아서』(2020) 및 『한국의 정치와 정치이념』(2018,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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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1장 「생존을 위한 궤변 방편으로서의 ‘조선’」에서는 일본 측의, 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와의 교섭을 전담하고 있던 쓰시마 측에서, 마치 고래 등 사이에 낀 새우와도 같던 저들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서양 세력의 등장이라는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조선’을 방편으로 활용하려 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제2장 「희생자 의식을 통한 인심의 고취 방편으로서의 ‘왜(倭)’」에서는, 조선 측 역시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 차원에서의 인심의 수습과 단결을 위해 일종의 프로토 내셔널리즘적 차원에서, 조선 후기 내내 임진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제3장 「Gentleman과 부시武士, 그리고 무사 - ‘방편’에서 내재화된 가치로」에서는 저들 경계 대상이 밉기야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서 저들이 어떻게 그토록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본받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본에서, 그리고 조선에서 차례차례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제4장 「윤치호에서의 ‘일본화’의 행방 - ‘목적’과 ‘방편’의 전도」에서는, 이처럼 ‘방편으로서의 일본’이 일본을 겨냥하는 대신 우리 인민들을 향해 이들을 계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어 가던 가운데, 윤치호의 경우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어느 틈엔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게 된 근대화라는 목적과 본래대로라면 이를 위한 방편에 불과했을 터인 ‘일본’의 가치전도가 어떻게, 또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제5장 「혐한의 시대 - ‘한국’이라는 방편의 부활」에서는, 이천년대 이후 일본의 보통 사람들에게 한국이 재발견되면서 벌어진 혐한嫌韓의 등장을 통해, 오늘날 한일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방편적인 사고가 어떻게 다시 두드러지게 되었는지, 나아가 그로부터 어떤 현실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였습니다.

이 책은 어떤 전문적인 학술서라기보다는 한일 관계사의 역사적 궤적 속에서 그간 나름의 일관된 맥락을 찾으려 노력해 온 연구자로서, 양국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대중 독자들께 생각의 재료들, 고찰해 볼 사상적 싹을 제공해 드리고자 정리해 본 일종의 사고 노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적 궤적 운운하는 순간, 혹시 케케묵은 한일 간의 역사적 에피소드들을 적당히 포장해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닌가란 질문이 제기될 법합니다. 솔직히 우리 모두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구호는 이미 신물나게 들어왔었습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일본이라면 이미 ‘정답’, 즉 식민지의 아픈 경험으로 귀결된 지난날 우리 자신의 잘못과 저들의 언제 되살아날지 모를 야욕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교훈’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시피 할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되풀이 되어온 한일관계의 병폐가 ‘방편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찌됐든 떼려야 뗄 수 없는一衣帶水 한일관계의 나아갈 길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작게나마 소망하는 마음으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책 속에서

한일관계에 대한 신문 기사나 대중 보도를 접하다 보면 한 번쯤은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라는 이름과 마주치게 될 터입니다. 대략 숙종 때부터 영조 시대 즈음에 조선과 도쿠가와?川 막부 사이의 외교교섭 시, 일본 측의 외교 업무를 전담하는 실무기관 격이었던 쓰시마 번의 통역 겸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관련 연구자의 입장에서야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섭사를 분석하는 데 나름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량감을 지닌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메노모리라 하는 외교 실무자가 이토록 대중적으로 회자 될 만한 인물이냐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선 솔직히 의문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비교적 최근까지도 심지어 일본에서조차 대중적으로는 물론, 학계에서도 해당 연구 분야 바깥에선 그리 주목받은 적이 없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 그러니까 기왕의 냉전 구도 하에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바꿔나갈지가 시대적 현안으로 떠오르던 바로 그 시점에, 당시 방일 중이던 노태우 대통령이 『교린제성交隣提醒』이라는 그의 저작 중 결어 부분의 ‘성의와 신의의 교제誠信之交’를 인용해, 이를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향점이라 선언하면서 일약 아메노모리 붐이 일게 됩니다. (11~12p)

이런 상투적인 수단으로서의 ‘(가상의 적이) 우려할 만하다倭情可慮’는 논리는, 그것이 정세 판단에 입각한 가정에 따른 것인 만큼, 상황이 변화할 경우 쉬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김태훈 2014: 66). 여기까진 조선의 경우에서든 쓰시마의 경우에서든, 강한 이웃들 틈에서 국제적인 정세를 능동적으로 추동키는 어려웠던 주변부 세력들로선 별반 다를 게 없는 기본조건이었다. 하지만 쓰시마의 경우가 특이했던 것은, 이런 인식과 당위성 및 수단을 그때그때의 최신 동향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포장해, 뭇 세력들 사이에서 거듭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는 데 있다(Gladwell 2000: 70).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쓰시마의 선구적인 시도, 즉 방편으로서 조선을 활용한다고 하는 선택지는, 점차 다양한 진영의 한반도 진출론자들에게 혹은 정략적 차원에서의, 혹은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노림수를 위해 ‘재활용’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017: 215). (53p)

요컨대 조선에서 임진년의 기억이란, 왜에 대한 무의식적인 원념으로서 의식의 밑바닥에 그저 가만히 깔려만 있던 침전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지역 및 개별 문중 단위에 이르기까지, 그런 보편적 정서를 동원의 기제로 활용하기 위해 무려 300여 년에 걸쳐 되풀이 호명해 온 일종의 정치·사회적으로 공인된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이규배 2008: 166-7). 그렇다면 이 같은 방편으로서의 왜란의 기억에서 ‘우리들’은, 그리고 이런 우리에의 귀속감은 실제로 어찌 규정되고 연결 지워졌을까? (61p)

무인, 혹은 ‘무武’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전통의 계승 쪽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외적인 위기의식 하에서 이에 맞설 사회적 기상의 쇠퇴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부터 비롯됐다. 예를 들어 명치 무사도 담론이 형성되는 데 그 단초를 제공한 이로 평가받는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1858∼1954)는, 1891년 「武士道」라는 글을 통해 서구와의 상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사기질武士氣質”이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연전에 외국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그는, 서구 세력이 횡행하는 가운데서도 특히 그 선두에 선 영국의 상업적인 패권에 주목했다. 오자키가 보기에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저들이 체현하고 있는 “신사기질紳士氣質”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신사라 부르고 우리는 무사라 일컫는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실질에선 동일하다. 영국 상인이 이르는 데마다 천하에 대적할 자 없는 까닭은, 그 상인의 대부분이 신사의 기상을 갖추어 비겁하고 졸렬한 거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 ...영국 상업의 번성함은 영국 상인의 두터운 신용 덕분이라. 이는 결백한 절개와 의협심廉節義俠의 기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른바 무사기질이 아니랴(尾崎 1893, 26)! (89p)

십 년만에 조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아, 난 지금과 마찬가지로 슬펐다. …오물더미의 지독한 냄새가 사방으로 풍기고, 지독히 가난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도저히 지켜낼 능력이 없는 조선을 슬프게 상징이라도 하듯 벌거벗고 볼품없는 민둥산. 이런 모습들은 어떤 애국적인 조선인이라도 역겹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절망적인 미소 밖에 지을 수 없다. 조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이라면 와 달라. 열 번이라도 오라(일기/1895/02/12). (124p)

오늘날 이들에 의해 인터넷 미디어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은, 대개 출처가 불분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에 다시 지극히 주관적인 억견을 덧붙여 왜곡시킨 논의에 입각한 경우가 태반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왜곡된 논의가 다시 곧이어 벌어지는 또 다른 논쟁의 근거로 활용된다는 데 있다. 이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정보 왜곡과 그로 인한 증오의 확산은 물론 앞서 혐오 발언의 규제처럼 시급한 대책을 요하는 문젯거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과거사 논쟁에서 지금까지처럼 정치적인 호소의, 교육 대상으로서의 객체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산자이자 주체로서 등장하게 된 작금의 동아시아적 현실 그 자체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즉각적인 규제와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공통 가치의 확립을 이을 ‘가상적 화해’의 시간을 어떻게 동아시아 각국 대중들과 ‘더불어서’ 구축해 나갈 것인가? 이것이 곧 이번 또 한차례의 ‘파열’에서 새로운 ‘봉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일 터이다. (175~176p)

이런 ‘불완전한 평화’를 어찌 평가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터입니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완전한 문제해결 상태로 바로 건너뛰어 갈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자면 어찌 되었든 불완전한 상태나마 일단 관계를 맺어서 차근차근 함께 노력해 나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겠지요. 물론 이는 눈앞의 이 완전치 못한 관계성에 그저 만족하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늘의 이 그럭저럭한 가상적 화해는 오직 제대로 된 양국 관계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로서만 정당화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앞서 본서의 첫머리에 살펴본 아메노모리 호슈의 성신지교, 즉 현실 속의 갈등을 부정하거나 덮어두지 않고, 오히려 이를 항상 전제한 위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린交隣, 즉 제 이익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거나 방편으로 삼지 않겠다는 그런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성심성의를 다하겠다고 한 문제의식은, 오늘날 한일관계에도 여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터입니다. (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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