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칸페키!” 인생 커피다.
35년 동안 문예의 멋을 좇아 세상을 떠돌며 각지의 다양한 커피를 맛본 한 출판인의 인생 커피.
중년에 접어든 지도 어지간히 지난 어느 날 훌쩍 떠난 동경 여행에서 그는 60년이 넘도록 커피를 만들고 있다는 한 커피인과 조우한다. 긴자의 뒷골목을 지나다 문득 마주친 허름한 ‘킷사텐’으로 무엇에 홀린 듯 이끌려 들어간 그가 마주한 세키구치 이치로 옹. 구석구석 ‘쇼와 필 昭和feel’이 배어 있는 열 평 남짓한 가게 한편에 웅크리고 앉은 그에게 구순의 주인장은 한 잔의 예멘 모카 마타리를 건넨다.
비 온 뒤 피어오르는 흙 내음을 따라오는 쌉쌀하고 상큼한 자몽의 맛. 그 또렷한 산미가 서서히 사그라들 즈음 초콜릿처럼 찐득한 감미가 몰려온다. 입안에 퍼지는 놀라운 단맛에 젖어 묘한 충만감에 빠져드는 그를 화사하면서도 통렬한 쓴맛이 일깨운다. 커피는 그런 것이라고. 잠깐 아련한 행복감을 주지만 여전히 현실의 삶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음을 일순간 깨닫게 하는 쓰디쓴 신기루라고. 이 묵직한 울림이 잦아들고 입안을 맴돌던 벨벳 같은 느낌마저 사라진 뒤에도 그는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얼마간 더 방금 전의 충격적인 경험을 음미한다. 존 콜트레인의 화려하고 선명한 색소폰 연주가 떠오르기도 하고 빌 에반스의 섬세하고 유장한 피아노 선율이 들리는 듯도 하다.
때가 되어 마음을 추스르고 노포를 나서는데 무언가 달콤쌉싸름한 것이 슬며시 목줄기를 타고 올라옴을 느낀다. “칸페키!” 인생 커피다.
그렇게 시작된 ‘람브르’와의 인연은 『카페 드 람브르』로 이어진다. 2018년 작고할 때까지 꼬박 70년을 커피인으로 살다 간 마스터 세키구치. 이 책은 커피에 바친 그의 인생을 기리고 그의 분신인 ‘람브르’ 창업 75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마스터 세키구치가 생전에 펴낸 책들 중 두 권을 추려 한 권으로 엮되, 2대 마스터 후지히코 하야시를 비롯한 람브르 식구들의 인터뷰를 더해 만든 이 책은 70년을 이어간 커피 인생에 바치는 헌사이다.
책 속에서
p.25
카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음식물을 제공하면서 고객에게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사활을 건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 되지요. 물론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도 중요하겠지만, 수익보다는 양심적인 음료와 서비스 제공이 우선시되어야 망하지 않는 법입니다.
p.55
람브르는 프랑스어이고 영어로는 앰버amber, 보석의 일종인 호박琥珀을 뜻합니다. 커피 본연의 색이 바로 호박색이지요.
p.56
맑은 커피를 알아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커피 잔 안에 스푼을 살짝 담가 보세요. 영롱한 스푼이 그대로 비친다면 커피가 맑다는 뜻인데 반해, 탁한 커피는 스푼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가장 알기 쉬운 방법을 알려드렸으니 커피를 내리는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탁한 커피는 멀리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p.88
‘올드 커피’란 잘 익은 생두를 온도와 습도를 조정한 창고에서 숙성한 것을 말합니다. 잘 숙성된 원두로 내린 커피 맛은 숙성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부드럽고 향도 한층 좋아집니다. 이와 같이 생두를 숙성하는 것을 ‘에이징aging’이라고 하는데, 모든 생두가 에이징을 거친다고 좋은 커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에이징의 묘미이자,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p.121
무슨 일이든 자칫하면 매너리즘에 빠져 건성으로 하게 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대충 내린 커피는 바로 맛에서 드러나고, 손님들도 금방 알아요.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커피를 내놓는 것 또한 마음에 안 들고요. 정성이 들어가 지 않으면 손님들은 금세 눈치를 채고 발길을 끊게 됩니다.
p.129
맛있는 커피만을 고집하는 람브르였으면 좋겠어요. 유행을 좇아가지 않고 람브르의 지금 모습 그대로, 진정한 커피, 커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남기 바랍니다.
p.136
지금처럼 변함없이 역사를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본심이에요. 제가 람브르에서 배워 온 것을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지만, 장사라는 게 또 그렇게만 해서 유지되는 건 아니잖아요. 한편으로는 시대에 맞춰서 조금은 유연하게,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그런 람브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