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회복은 ‘해결’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순간’에 시작된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교실에서 상처받고 설 자리를 잃으면서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며 도서실로 도피한다. 이들에게 도서실은 폭력적인 교실과 괴롭히는 아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생존의 공간이다. 도서실로 흘러들어온 이들은 서로를 마주하거나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앞선 이야기에서 조연이었던 인물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등 이야기가 독립적이면서도 도서실이라는 공간과 사서 시오리 선생님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나만 힘든 줄 알았던 학교생활이 사실은 모두에게 각자의 무게로 존재함을 깨닫게 하는 효과를 준다. 각 이야기의 공통분모인 시오리 선생님은 직접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적절한 책을 추천해주거나 건네며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조력자이자 이정표 역할을 한다. 여섯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통해 낯선 주인공들의 삶을 엿보고, 자신과 닮은 감정·결핍·희망을 발견한다. 자신의 비참함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닫혀 있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시오리 선생님은 이들에게 “학교에서의 시간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외부의 시선보다 내면의 힘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격려한다.
이 책을 쓴 일본 작가 아이자와 사코는 『미디엄』, 『인버트』로 일본 전역에 미스터리 붐을 일으킨 작가이지만, 데뷔 초부터 사춘기 소녀들의 예민한 심리 묘사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 『내 이야기를 읽어주세요』는 그가 가진 서정성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2021년 일본 서점대상(본옥대상) 후보에 오르며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독서의 의미와 ‘책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어, 독서교육 현장에서도 자주 추천되는 도서이다. “책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으며, 언제든 당신의 편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스쿨 카스트(교실 내 견고한 계급 사회)’를 정면으로 다루되 자극적인 폭로가 아닌 내면의 성장을 통해 극복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이 잔혹한 시스템 속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독서)’이라는 고전적이면서도 강력한 해답을 제시한다. 스스로를 누렇게 바래고 낡아서 버려지는 책들처럼 느꼈던 아이들이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는 저마다 특별한 책등을 가진 책들
도서실 안에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직접 꺼내 펼쳐보지 않는다면 책의 진짜 모습(내용)을 알 수 없다. 이것은 교실 안 아이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교실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책장에 일렬로 꽂힌 책에 빗대어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과도 같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고, 그중에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책들은 더러 있겠지만 표지나 서사까지 완전히 같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그 무수한 책들 가운데 우리가 꺼내서 펼쳐본 책은 얼마나 될까.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막상 읽어보면 그 어떤 러브스토리보다 흥미롭고 설레는 스토리가 그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 이야기를 읽어주세요』는 이와 같은 시각으로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이야기에 담긴 간절한 소망이 우리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불안과 소외감에 힘들어하는 모든 청소년과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그 이야기를 읽어줄 초대장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P. 13~14
지루하기만 한 매일을 그림자처럼 숨을 죽이며 살아간다. 아무도 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청춘을 만끽하는 풍경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손에 든 책으로 시선을 떨군다. 그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말을 걸어주는 친구는 없지만, 책만 있으면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실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마치 깊은 바닷속을 잠수하듯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점심시간과 방과 후는 나에게 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깊은 바다에서 올라와 잠깐 얼굴을 내밀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허락되는 시간. 도서부원이라 정말 다행이다.
P. 46
어째서 다들 저렇게 쉽게 미래의 일을 예견할 수 있는 거지? 자신이 어른이 될 거라고,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는 모두가 부럽기까지 했다. 나는 불량품인 걸지도 모른다. 다들 미래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조여오고 눈앞을 아득하게 만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치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 혼자만 햇빛을 두려워하는 뱀파이어처럼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P. 95
그 순간 하늘의 계시랄까, 어떤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나는 마미야가 끄고 나간 교실 전등을 다시 켜고 뒤쪽에 있는 쓰레기통을 살폈다. 꾸깃꾸깃 뭉쳐진 원고지가 보였다.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꺼내 펼치자, 겹쳐진 세 장의 원고지에 빼곡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모든 칸을 채우겠다는 듯한 기세였다. 순간,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
P. 154
알고 있었다. 내가 하는 사랑이 진짜가 아니라는 거. 남들이 보기엔 그저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 이상한 취미일 뿐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이제 와서 이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마치 저주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내 마음을 어쩔 수 없는 걸 어떡하겠어.
P. 174~175
나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들이 참 많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만화책, 내 취미와 장래희망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내 이름이다.
P.233
뭐가 됐든,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차라리 빨리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학교에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호시노와 그 무리들이 나에게 했던 짓이 세상에 드러나겠지. 기자들이 알아채고 뉴스에서 다뤄주기라도 한다면, 내 목숨과 맞바꾸는 대가로 그 애들의 인생도 나락으로 끌고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려면 유서를 제대로 써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