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거스른 여자, 추근
중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여성혁명가 추근(秋瑾)은 흔히 ‘중국의 잔다르크’, ‘건괵영웅’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호칭만으로는 추근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 전족을 했고, 집안이 정한 상대와 결혼했으며,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당시 여성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삶이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접한 뒤 추근은 그 질서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남장을 하고 거리를 나섰으며, 가족을 뒤로한 채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오랫동안 자신의 몸을 구속해온 전족도 풀었다. 그의 혁명은 왕조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한 여성에게 ‘당연한 삶’으로 주어진 것들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백여 년 전 추근이 여성해방의 핵심으로 꼽은 것은 경제적 자립이었다. 부모와 남편에게 생활을 의존하는 한 여성에게 실질적인 자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여성들에게 공부하라고, 기술을 익히라고, 직업을 가지라고 거듭 호소했다. 교육 역시 교양 있는 아내나 현명한 어머니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삶을 선택하기 위한 기반이었다. 전족과 중매혼, 축첩과 일방적인 여성의 정절을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추근이 꿈꾼 여성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여성의 독립’을 권리의 선언에서 생활의 문제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뜻밖의 생생함을 지닌다.
추근으로 보는 여성 연대와 페미니즘
추근이 창간한 『중국여보』 표지에 등장한 여성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지만 전족을 하지 않았으며, 화려한 장신구 대신 죽창을 들고 있다. 그 지면에서 여성의 교육과 직업, 경제적 자립과 연대를 이야기했다. 여성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여야 할 주체로 호명한 것이다. 추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명의 영웅보다 여러 여성의 관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출신도 달랐고 정치적 입장도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배우고 일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의 삶을 고민했다는 점에서는 연결되어 있었다. 추근의 급진적인 선택 뒤에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끝내 기억해준 여성들의 관계망이 있었다.
2026년, 다시 보는 추근
1907년 참수된 추근은 신해혁명 이후 혁명의 열사로 추앙받았고, 항일전쟁기에는 화목란과 함께 애국적 여영웅, ‘중국의 잔다르크’로 다시 불렸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1912년 『매일신보』는 사흘에 걸쳐 추근의 생애를 소개하며 그를 청국혁명의 여자호걸이자 남녀동등권을 위해 싸운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혁명열사’나 ‘여영웅’이라는 이름이 커질수록 그가 생전에 가장 자주 불렀던 대상, 바로 ‘2억의 자매들’은 오히려 뒤로 밀려났다. 이 책은 영웅의 동상을 다시 세우기보다 그 동상 뒤에 가려진 여성해방론자 추근의 얼굴을 되찾는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