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남들의 방식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하는 것에 잘 아는 것을 더하면, 전에 없던 방식이 된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성공담을 보고 있으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자크뮈스는 정식으로 패션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고, 좋은 소재와 부자재를 마음껏 쓸 만큼 자금도 충분하지 않았다. 옷의 디자인이 심플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대신 색감을 과감하게 활용하고 실루엣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했다. 제약을 결점으로 여기지 않고 장점으로 바꾼 덕에 자신만의 미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더 뜻밖이다. 1996년 스톡홀름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원래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광고기획사였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비주얼을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던 자신들의 강점을 그대로 패션에 끌어왔고, 남들의 인정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이러한 장면들에서 하나의 패턴을 읽는다. 특별함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발명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미 가진 강점과 경험을 새로운 영역에 연결하고, 남들이 정해놓은 문법 대신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할 때 전에 없던 방식이 만들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새로 가지고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합했느냐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브랜드들의 성장 과정에서도 공통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브랜드가 되는 법을 정리한 매뉴얼이 아니다. 뉴욕이라는 가장 치열한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수많은 브랜드와 함께 일해온 저자가, 살아남은 브랜드와 사라진 브랜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록이다. 자크뮈스는 스스로에게 위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토템은 독보적인 비주얼 랭귀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태생부터 여러 명품 그룹을 등에 업고 시작한 톰 포드는 완벽하게 계산된 디테일로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자기만의 자리, 즉 특별함을 만들어냈다면 다음에는 그것을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넓혀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오늘날 소비자는 제품 하나만으로 브랜드를 기억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제안하는 이미지와 공간, 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함께 경험한다. 자기만의 지위(Status)를 가진 브랜드는 어느 순간 자신이 출발한 카테고리의 경계를 넘어선다. 루이비통은 여행용 트렁크에서 패션으로, 다시 뷰티로 세계를 넓혔고, 바이레도는 향수에서 출발했지만 제품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파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알로는 요가복이나 애슐레저 의류를 넘어 웰니스와 럭셔리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이들에게 카테고리 확장은 단순히 상품군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것을 새로운 영역에서 다시 구현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브랜드는 없다. 성공 역시 그대로 옮겨올 수 있는 공식이 아니라, 저마다의 기준으로 오래 반복해온 선택의 결과다.
화제를 만드는 브랜드와, 대체되지 않는 브랜드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10여 년간 K-뷰티는 미국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세포라와 울타 뷰티에 별도의 K-뷰티 섹션이 생기고, 한국 브랜드들이 대형 유통망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라네즈를 비롯해 히어로 패치, 하나큐어, 조선미녀까지 K-뷰티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개별 브랜드로 인지되기 시작한 사례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히어로 제품의 폭발적인 인기는 전 세계 뷰티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K-뷰티’라는 카테고리의 성장과 개별 브랜드의 성장은 별개의 문제다. 아직 K-뷰티는 미국 시장의 완전한 주류라기보다 ‘새로운 흐름’에 가깝고,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이라는 이미지 역시 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성공한 해외 브랜드를 부러워하거나 그들의 방식을 따라 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남들이 잘되는 방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으며, 카테고리의 이름을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기억되는 일이야말로 다음 과제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특별함을 만드는 일과 그것을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유니콘으로 떠오른 뒤 빠르게 저물어간 글로시에와, 오랜 시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스스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에르메스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화제성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 즉 시간이 지나도 대체되지 않기 위해 브랜드가 무엇을 쌓아야 하는지를 이 책은 여러 브랜드의 부침을 통해 보여준다. 잠깐 이목을 끄는 일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일은 처음부터 다른 싸움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성공한 브랜드의 공식을 알려주기보다 특별함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장되고, 지속되는지를 보여준다. 1부에서는 자크뮈스와 아크네 스튜디오, 토템 등을 통해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2부에서는 루이비통과 바이레도, 알로, K-뷰티를 통해 하나의 브랜드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과정을, 3부에서는 글로시에와 에르메스, 티파니앤코 등을 통해 만들어낸 특별함을 오래 지키는 문제를 다룬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나 사업을 키워가는 사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 글로벌 진출을 고민하는 마케터와 기획자, 그리고 언젠가 자기 일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에게 저자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에르메스가 될 필요도, 샤넬이 될 필요도 없다. 카테고리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하나의 브랜드로 기억되는 것. 잘하는 것에 잘 아는 것을 더해 자기만의 특별함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남들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을 만드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