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처음에는 그냥 산이 좋아서 올랐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1990년대 후반부터였지 않나 싶다. 그러다 산을 좀 더 알고 싶어 산을 오르며 그 산에 어려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더욱이 산마다 품고 있는 아픈 역사와 대면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삼대를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일출, 노고단의 운해, 반야봉의 낙조, 피아골 단풍, 벽소령의 달빛, 세석평전 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강 청류 이렇게 굳이 지리산 십 경을 열거하지 않아도 속인들이 반하지 않겠는가 또한 지리산은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민족상잔 생채기가 남아 있는 이념 갈등의 치열한 현장이디. 6·25전 후 2만 명의 생명이 희생된 이곳에서의 전투, 세계 유격전 사상 그 가혹함과 가열함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기록될 정도다. 지리산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지난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이렇듯 우리나라 산하에 아픔이 없고 사연이 없는 산이 있을까 어디인들 쉬운 산이 있겠는가? 산을 오르며 산을 알아가는 것은 산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닐는지 싶다.
백두대간 준령 중 또한 아름다운 구간이 설악산 지구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 그랬었다. 지리산이 어머니 산이라면 설악산은 아버지 산이라고 지리산이 치맛자락처럼 깊은 골과 골을 펼쳐놓았다면 설악산은 쭈뼛쭈뼛 하늘을 찌르듯 기암괴석을 세워 올렸다. 공룡의 등을 타며 설악의 절경에 빠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은 아닐는지 싶다. 비법정탐방로가 많은 구간이기도 하고 천불동계곡 단풍과 천당폭포는 세인의 발을 묶어 놓을 만하지 않은가, 한계령에서 설악동까지 무박 2일로 걸어보았던 기억이 아련하다. 죄인도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천당폭포는 또 얼마나 희망적인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일반 산객들이 오르기도 하지만 많은 불자가 적멸보궁을 찾아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길도 풍경도 가장 아름답다는 연하선경*
누가 알까
겨울이면 깊고 깊은 상처를
저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온몸 칼바람 앞에 선다는 것을
---「연하선경」중에서
피밭이 많아 피아골이라지만
해마다 고운 단풍 핏빛으로 물드는 이유를
연곡사 노승에게 물어보랴
파랑새에게 물어보랴
이름 없이 사라져간 파르티잔에게 물어보랴
---「피아골 단풍」중에서
예전엔 학이 날아들었다는데
학 한 마리 보지 못했다
한줄기 가랑비 지나고
허공에 퍼지는
직지사 풍경소리만 청아하다
---「황악산」중에서
설악의 대청, 중청, 소청한테
귀싸대기 얼얼하게 얻어맞았다고
바람이 엄청나게 세서 귀때기가 날아간다고
그저,
바람도 귀싸대기도 다 내려놓고
청봉 하나를 꿰찼으니
설악의 서북능선을 차지하고 섰다고
힘겨운 너덜지대를 지나야
바람도 가벼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귀싸대기 얼얼하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 악을 쓰며
저마다 앞가림하기 위해
우린 오늘도 욕심의 주먹을 쥐고 있지나 않을는지
나는
바람도 귀싸대기도 다 내려놓지 못해
귀때기청봉에 서서
사정없이 귀싸대기를 때리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쥔 작은 주먹조차 쉽게 펴지 못한다
---「귀때기청봉」중에서
불공드리는 스님과도 같고
천년을 사는 거북이와도 같고
귀를 쫑긋 세운 토끼와도 같다
---「가야산 만물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