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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신발 속 모래알을 마주할 용기 _이지
농장에서, _최예린
그들이 죽을 때, 세계는 고요했다 _희음
뉴욕 맥도날드에서 서울 찾기 _수팽
개와 들개와 나무들과 들 _김누리
땅을 밟아 간다는 것 _태린
저자 소개
저자 : 이지
이런저런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상상들을 기워서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글을 쓴다. 비인간, 여성주의, 비건 미술 재료를 공부하고 있다. 감각하지 못하는 폭력을 감각하게 만들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에도 함께하게 되었고, 동료들에게 귀한 배움을 빚지고 있다. 하나의 저항으로서, 변화의 시작으로서 상상이 가진 힘을 믿으며 지워진 차별과 폭력으로 향한다.

저자 : 최예린
‘기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시간과 리듬에 맞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및 살처분폐지연대 등에서 만난 이들에게 의지하며 지낸다.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선생님들에게 앎에 대한 태도와 의미를 배우는 중이다.〈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축산 정책과 기록/문학 : 부업 축산과 개량종 담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비교문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저자 :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르포와 시, 에세이를 쓴다. 기후-생태운동, 동물운동, 평화운동을 여러 해 이어 왔다. 평등한 관계 맺기와 상호 돌봄이 어떻게 모두의 일상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모임과 세미나를 만들고 있다. 기록집《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을 썼고《김용균, 김용균들》을 함께 지었다. 시집《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그림책《무르무르의 유령》을 펴냈다. 에세이《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기후시집《여름, 연루》 등을 동료들과 함께 썼다.

저자 : 수팽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일을 한다. 무거운 이야기는 금방 가라앉지만, 가벼운 이야기는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환경운동, 미디어아트, 그리고 인공지능 관련 일을 했고, 미국에서는 박물관에서 동양 샤머니즘 연구를 했다. 지금은 환경과 의료가 교차하는 지점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 : 김누리
전주에서 나고 자라 읽고 쓰며 노래한다. 연루된 관계 속에서 공생할 수 있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기록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을 만나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나누는 힘을 배우고 있다. 돌봄과 연결의 힘에 기대어 앞으로 더 정확히 비관하고 구체적으로 낙관하고 싶다.

저자 : 태린
오늘을 살아가는 작은 사람. 분주하게 외쳐지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말보다 재잘재잘 울리는 새들의 말을 더욱 좋아하는 사람. 기후변화로 사랑하는 것들이 빠르게 사라져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람. 기계처럼 완벽하고 매끈한 존재보다, 자연을 닮은 구멍 숭숭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 더듬더듬 삶 속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말을 빚어가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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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불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딘가 이상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순간들, 아무 일 없다는 듯 부드럽게 돌아가는 세상의 바퀴와는 다르게 내 몸과 숨과 피부가 이상함을 감지했던 순간들. 그 순간을 무심히 흘려버리지 못할 때, 기어이 그걸 붙들고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세상과의 불화는 시작된다. 혹은 나 자신과의 불화가 시작된다. 앓는 시간의 시작.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혼자의 몸으로 앓는 시간의 시작.
(…)
여섯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간 뒤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평화로울지 모른다. 보편을 지탱하는 세상의 문법 체계는 생각보다 촘촘하고 견고하니까. 그러나 한 번 헛디뎌 본 적이 있는 몸은 이제 그 자리를 안다. 다시 그 자리를 지날 때 몸이 먼저 기억한다. 그 기억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서, 설명하려다 틀리고, 틀리면서 다시 더듬고, 더듬으면서 비슷하게 헛디딘 다른 몸을 만난다. 그렇게 서로에게 발견된 사람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세상의 문법과는 다른, 아직 이름이 없는 문법 위에서 보란 듯 펼쳐지지 않을까.
〈들어가며〉 중에서

지금은 고기와 무관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지 몰라도 나 또한 육식 문화, 넓게는 동물 착취 문화를 누리고 그 위에서 이익을 맛보았던 사람이다. 잠시 얻은 듯한 도덕적 우월감은 착각일 뿐 나 역시 결코 떳떳하지 못한 위치에 서 있다. 비건이 되고 다수자에서 소수자로 전환되며 느낀 차별과 불편함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나 스스로가 비건, 논비건 같은 말들로 서로를 갈라치기하고 미워하고 혐오하는 일에 가담해온 것은 아닐까.
이지 〈신발 속 모래알을 마주할 용기〉 중에서

이후의 삶은 쉽지 않았다. 마트에 진열된 살점들, 횟집 수조 속의 존재들, 거리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 앞에서 자주 무너졌다. 약속 자리에서는 나의 가치관을 숨겼고, 먹는 일 자체가 두려워지기도 했다. 술, 커피, 두유만 먹으며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그 시간 끝에 만성 위장병만 남았다. 나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동물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전히 질문 앞에 서 있다.
기린 〈농장에서,〉 중에서

축사의 냄새가 보여준 사실 앞에 나는 내내 머물고 있다. 사라진 몸이 남긴 자국 앞에, 한 번도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존재들 앞에. 그 모든 것이 이 사회가 무엇을 예외의 존재로 만들기로 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사회가 오랫동안 은폐하고 삭제해 왔던 장면들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계의 익숙한 문법을 떠나 ‘다른’ 문법으로 또박또박 미끄러지기 위해.
희음 〈그들이 죽을 때, 세계는 고요했다〉 중에서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먹을 때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구체적 향수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 안 될 걸 알면서도 향료를 빼 줄 수 있냐고 묻는 것, 그 작은 질문으로 추상적 질서에 미세한 지연을 만드는 것. 이런 사소한 균열들은 비장소로 설계된 공간을 다시 구체적인 장소로 전환시키는 실천이 된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낙동강 하구에서도, 공항이라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수팽 〈뉴욕 맥도날드에서 서울 찾기〉 중에서

그날 해창갯벌에서 돌아오는 동안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한없이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비인간의 삶을 포착하고 그들의 순간을 판단했던 내가 오만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 순간조차 그 개들의 이후를 상상하기를 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이 사는 집으로 오게 될 일은 평생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러니까 ‘임시 보호’나 ‘입양’이나 ‘반려’라는 말과는 평생 가까워질 일이 없을 듯한 개들의 삶을 짐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인간의 집 대신 스스로 집으로 선택한 들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들에게 집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김누리 〈개와 들개와 나무들과 들〉 중에서

거리를 두고 슬쩍 보는 소극적인 태도엔 ‘내가 어쩌겠어’라는 마음이 있다. 쏟아지는 사건과 사고 속에는 무수한 죽음이 있었고, 거대한 파괴가 남긴 비극에도 세상은 흔들림 없이 굴러갔다. 그 흔들림 없는 속도 속에서, 멈추어 슬픔을 느낀다는 건 도태될 수 있다는 공포로 해석되었다. ‘살기 위해’ 슬픔은 가벼이 넘겨야 한다 말했지만, 그것이 정말 나를 살게 하는 방법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태린 〈땅을 밟아 간다는 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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