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포스트모털 시대
인류가 유목 생활을 했을 때, 사람들은 죽은 이의 시신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죽은 이를 기억할 수단은 제한적이었고 죽음은 삶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류가 농경으로 정착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인류는 죽은 자와 살아가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구석기 시대 나투프인들은 조상의 유골을 벽에 묻었고 두개골을 꾸미기까지 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조상들과 함께 살아갔다. 스 칼 외만은 현대인이 새로운 나투프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 시대까지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거주지 외곽의 묘지로 보내버림으로서 죽음을 일상에서 분리했다. 그러나 이제 죽은 자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 즉 디지털 세계에서 거주한다. 우리는 언제든 쉽게 그들을 볼 수가 있다. 게임기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록이 남아 있어 게임 속 유령 아버지와 함께 게임하며 경쟁을 벌였다는 일화는, 죽은 자와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게 된 오늘날의 특이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죽은 사람의 계정들이 자동으로 글을 올리기도 하고, 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AI 챗봇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죽은 자들과 산 자의 이런 공존을 ‘포스트모털(postmor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포스트모털이라는 조건 속에서 인류는 디지털 세상 속의 망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한 조상들이 유해를 처리할 방법을 새롭게 마련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과거를 남길 것인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는 ‘무엇을 삭제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대다. 이전 시대에는 힘 있는 자들을 위주로 역사가 기록되었다면, 이제는 성별, 인종, 재산, 신분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예전이라면 잊혔을, 역사학자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종류의 기록들이 생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록들은 상당 부분 대부분 디지털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향후 30년간 2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런 데이터를 모두 보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삭제할 데이터를 선별할 것인가? 이런 디지털 자료들을 단순히 고인이 남기고 간 유품으로만 봐도 괜찮을까? 만약 고인이 삭제하고 싶어 했던 자료가 후대를 위한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라면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이고 죽은 이의 의사는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거대한 디지털 기록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누가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삭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곧 미래 세대가 어떤 과거를 기억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된다. 현재 이런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망자의 데이터를 맡겨두어도 괜찮을까? 디지털 사후세계는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죽음과 애도를 상품화하는 업체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어떤 디지털 사후세계 시장의 현황은 물론이고 기업들이 죽은 사람의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까지도 살펴본다.
이 책이 다루는 문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며,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게 어떤 과거를 물려줄지에 대한 중대한 질문이다. 카프카의 유산관리인이었던 막스 브로트는 작품을 모두 파괴해달라는 카프카의 유지를 어기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제 우리는 브로트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거대한 문명적 변화의 시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디지털 유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