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2016년 1월, 트로이 목마의 등장
2016년 1월 7일. 한국의 시청자들은 미국의 낯선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를 접했다.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 드라마 마니아들은 환호했지만, 대다수는 ‘그게 뭐야?’라는 반응이었다. 지상파 3사가 만든 ‘푹(Pooq)’이나 CJ ENM이 만든 ‘티빙’이 있었지만, 월정액을 내고 인터넷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이용자가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돌이켜 보면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 ‘트로이 목마’ 같다.
당시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지상파 3사(KBS·MBC·SBS)와 CJ ENM의 tvN이 드라마 왕좌를 다투고 있었다. 케이블TV와 IPTV가 자리를 잡았고, 네이버·카카오 같은 포털들이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이 당시 월정액 9,500원짜리 미국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 판을 뒤흔들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넷플릭스는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시작했다. 한국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콘텐츠는 거의 없었고, 한국어 자막조차 부족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첫해는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한국 시장의 시청 데이터를 수집하고, 어떤 장르에 어떤 연령대가 반응하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2년 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이번에는 통째로 바뀌었다!
202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반대로 한국에서 넷플릭스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용자수는 국내 OTT 플랫폼 중 압도적 1위다.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는 OTT이기도 하다. 제작사들은 새로운 기획안을 들고 가장 먼저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린다. 드라마 캐스팅 협상에서 배우들은 ‘넷플릭스 출연료 기준’을 내민다. 그 사이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2021년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가 시청하며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이 본 비영어권 작품이 됐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국내 OTT들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티빙과 웨이브는 생존을 위해 합병을 추진 중이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넷플릭스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한국이 세계에 팔리는 것인지, 한국이 세계를 파는 것인지, 그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이것이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년
이 우리 앞에 던져놓은 질문이다.
미디어가 전문가로서 ‘넷플릭스 다시 분석하기’
이 책의 저자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KBS공영미디어연구소에서 연구자로, 팀장으로, 소장으로 일하면서 넷플릭스와 OTT를 주된 연구 분야로 삼았다. 이 기간 동안 《넷플릭소노믹스: 넷플릭스와 한국방송미디어》,《넷플릭스 효과》,《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시장을 바꾸다》등의 책을 쓰고 옮기며 넷플릭스를 꾸준히 추적해 왔다. 지난 여름, 저자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이 됐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그 순간 ‘이건 반드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작업이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를 연구 분야로 삼아온 저자의 숙명이었는지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의 기록을 다시 펼쳐놓으면서 커다란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K-콘텐츠 시장에서 2022년이 티핑 포인트였다. 넷플릭스의 한국 전략에서 가장 큰 변화의 순간은 2022년이었다. 2022년 1분기에 넷플릭스 가입자가 처음으로 20만 명 감소했다. 주가가 폭락하고 전 세계 미디어 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넷플릭스는 이를 역이용하여 자신만의 전략을 세워서 이겨냈다.
두 번째, 한국 미디어가 ‘넷플릭스 당했다’는 사실이다. 한양대학교 이종수 교수는 《파우스트의 계약》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계에 ‘막대한 제작비와 글로벌 관객과의 즉각적 만남’이라는 매력적인 제안을 했고, 더 큰 시장과 재원을 찾던 한국 드라마계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은 것처럼.
세 번째, 그럼에도 ‘넷플릭스 효과’는 실재한다. 《넷플릭스 효과》의 편저자 다니엘 스미스-로우지와 케빈 맥도널드는 ‘넷플릭스 효과’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엄청난 속도로 융합되고, 매스미디어 비즈니스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네 번째, 컨버전스의 완성이다. 헨리 젠킨스 MIT 교수가 말한 컨버전스, 다시 말해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하나의 서비스에 융합되는 현상”을 넷플릭스만큼 완벽하게 구현한 플랫폼은 없다.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단일 플랫폼 위에 드라마·영화·예능·다큐·스포츠·게임이 모두 올라탄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
이 책은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년을 네 개의 부로 나눠 추적한다.
제1부 ‘넷플릭스,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다’에서는 넷플릭스가 1997년 DVD 우편 배송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전 세계 3억 명의 플랫폼이 된 과정을 해부한다. 구독 모델, 알고리즘 추천, 오리지널 제작, 광고 요금제 도입, 스포츠·게임으로의 확장까지, 넷플릭스가 어떻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혁신해 왔는지를 다섯 개 장에 걸쳐 살펴본다.
제2부 ‘한국에서 10년 동안 벌어진 미디어 지형의 변혁’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을 택한 이유에서 시작해 ‘약한 고리 깨기 전략’으로 플랫폼과 방송사를 하나씩 공략한 10년을 기록한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뒤흔든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 드라마 형식과 제작 방식의 변화, 시청 습관의 재편, 방송사 인력의 OTT 이동, 지상파와 로컬 OTT의 위기까지 여섯 개의 장에 담았다.
제3부 ‘한국 미디어의 대응 방안’에서는 넷플릭스의 성공 전략에서 배울 것과 경계할 것을 함께 진단한다. 블루오션 전략·인재 밀도·글로컬라이제이션의 교훈을 짚으면서, 동시에 창작 주권 상실과 IP 종속이라는 그림자도 직시한다. K-콘텐츠의 회복탄력성과 대형 미디어 그룹 체제 전환, 시즌제·제작비 구조 개혁, 정책적 제도 정비 등 한국 미디어가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할 과제를 네 개의 장에 걸쳐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제4부 ‘새로운 10년을 전망하다’에서는 새로운 10년 동안 한국 미디어의 위치를 종속·공존·독립 세 가지 시나리오로 그린다. 넷플릭스 자체의 미래, FAST·AI·커뮤니티 등 OTT 이후 미디어 모델의 가능성, 점점 파편화·개인화·참여형으로 진화하는 시청자 행동의 변화까지 네 개의 장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