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 빠르고 정확한 택시 소년
“택시!”
감옥 어딘가에서 부르면 아이들은 총알처럼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간다. 물론 감옥에서는 뛰어서도, 큰 소리고 대답을 해서도 안 된다. 감옥의 규칙을 어기면 교도관들에게 벌금을 내고, 택시 일을 할 수도 없다. 감옥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누가 부르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다. 감옥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모두 택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빠르고, 정확하고, 정직하고, 감옥의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만이 죄수들의 심부름을 할 수 있다. 죄수들은 자기들이 직접 확인을 할 수 없는 메인 몸이기 때문에 더욱 의심 많고, 까다로운 손님이다. 디에고는 택시가 단순히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수들의 묶여 있는 손과 발을 대신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자,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해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디에고는 택시로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자기만의 원칙도 정해 놓았다.
*디에고 택시의 원칙
①정직! 고객을 속이면 반나절 부자였다가 영원히 가난해진다.
②정확! 고객의 심부름을 순서에 맞게 확실히 처리한다.
③신뢰! 정당한 대가를 받되, 가끔은 서비스도 한다.
④안전! 불량소년들이 나타나면 재빠르게 도망친다.
⑤성실! 언제나 어느 곳이나 부르면 곧바로 달려간다.
덕분에 디에고는 죄수들에게 인기가 많은 택시이다. 디에고에게 택시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볼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자,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알아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만큼은 디에고는 감옥 소년이 아니라, 소년 디에고 자신이다.
그런데 어느 날, 디에고는 여동생을 잘 챙기지 못해서 감옥 안을 돌아다니게 하는 실수를 하고 만다. 감옥 안의 규칙을 어긴 디에고에게 내려진 처벌은 택시 영업 정지. 동생 하나 챙기지 못한 디에고에게는 아무도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디에고는 감옥 안의 다른 죄수들처럼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달릴 수 없다.
디에고는 더 이상 ‘택시’가 아니다.
■ 소년들이여, 인생을 움켜잡아라!
학교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것 말고는, 디에고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친구들의 숙제를 해 주고 조금씩 푼돈을 벌지만 디에고는 택시로서 지녔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자유를 잃었다. 디에고의 마음속에는 엄마의 무거운 침묵과 여동생의 말썽에서 벗어나 큰 세상으로 가 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그런 디에고에게 감옥 친구 만도는 야망 있는 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인생을 움켜잡을 수 있는 큰일을 구해 온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는, 답답한 코차밤바를 떠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제안에 디에고는 만도와 함께 기꺼이 트럭에 몸을 싣는다. 금세 큰돈을 벌어서 가족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서. 트럭은 달리고 달려서 소년들을 밀림의 코카 숲에 내려놓는다. 넓고 푸른 코카 숲은 디에고가 살던 답답한 감옥과는 다른 세상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초록빛 꿈의 공간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소년들을 밀어 넣은 곳은 꿈의 공간이 아닌, 코카 잎 구덩이. 디에고와 소년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 한 채, 남자들이 물리는 코가 담배를 피우며 쉴 새 없이 코카 잎을 밟고 또 밟는다.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꿈꾸었던 디에고의 꿈은 코카 잎처럼 짓뭉개져 간다. 화학 약품에 하얗게 바래고 터진 살갗처럼 디에고의 꿈은 곪아 터져 간다.
디에고와 만도는 도망을 결심하지만, 어린 택시 소년들이 밀림을 빠져나가기에 밀림은 너무나 넓고 복잡하고, 뒤쫓아 오는 남자들은 빠르다. 결국 만도는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디에고는 죽을힘을 다해 남자들을 따돌리지만 코카 숲을 돌고 돌 뿐이다. 코카 숲을 자유롭게 달리는 택시를 꿈꾸었던 디에고에게 코카 숲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이다.
■ 아침 해와 함께 다시
뱀과 원숭이와 불개미들이 득실대고 언제 어디서 야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밀림에서 디에고는 혼자다. 디에고는 서로를 거물이라고 추어올리며 꿈을 나눴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만도를 떠올리며, 감옥에서 만도를 기다릴 만도의 아빠를 떠올리며, 감옥에서 자신을 기다릴 엄마와 여동생과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 낸다. 의젓한 소년이 되기 위해 꾹꾹 누르고만 살았던 디에고는 모든 걸 눈물과 함께 흘려보낸다.그리고 스스로 눈물을 닦는다.
오늘 당장 밀림에서 죽더라도 디에고는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다. 디에고는 빠르고, 정확하고, 정직한 택시이니까. 디에고는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 주위를 살피고, 걷고, 달린다. 그런 디에고에게 따뜻한 불의 기운과 스튜 냄새와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밀림에 사는 리카르도 가족은 디에고를 어린 새를 품듯 따뜻이 끌어안는다. 드디어 택시 소년 디에고가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디에고는 내일 아침, 아침 해를 맞을 준비를 하며 오늘 하루만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짓고 엄마와 아빠가 자유의 몸이 되는 날 코차밤바로 달려가는 꿈속으로.
내일은 디에고에게 어떤 아침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