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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정세랑 작가의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그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으라면 『시선으로부터,』라고 말하겠다. _김하나(작가)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던가. _박상영(소설가)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은 여성이 가장이 될 때, 가족들이 어떠한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기분좋은 전망을 준다. _김보라(영화감독) 한국과 미국에 나뉘어 살고 있는 한 가족이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는 다소 엉뚱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시선으로부터,』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시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세계의 부조리를 관통하며 나아간다. 미술가이자 작가이며 시대를 앞서간 어른이었던 심시선. 그녀가 두 번의 결혼으로 만들어낸 이 독특한 가계의 구성원들은 하와이에서 그녀를 기리며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정세랑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시선으로부터,』는 한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올곧고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이다. 데뷔 10년,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면서도 우리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그가, 사랑스러운 소설을 쓰는 작가에서 이제는 사랑을 행사하는 작가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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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선으로부터,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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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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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_9~10쪽

누구보다 이 세계의 난폭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 약한 이들에게 공감할 줄 알았던 여성. 올곧으면서도 부드럽고, 때로는 과격할 정도로 진보적인 발언으로 세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던 심시선 여사의 10주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단 한 번뿐인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그것도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서.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_83쪽

그들은 그곳에서 특별한 제사를 준비한다. 방법은 각자 자유롭게 그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들을 수집해 오는 것.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심시선과 연결된 그들은 그녀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하와이를 여행한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지켜볼 줄 아는 사람들이지만 조금씩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는 그들은, 심시선을 기리기 위한 여행에서 그녀에게 선물할 물건과 추억을 찾으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시선으로부터,』는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바로 심시선이 그러했듯이.

이제 내가 그 아주머니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나는 영영 음식을 못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니 비척거리는 젊은이가 찾아와도 먹일 것이 없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_299쪽

정세랑이 불러낸 인물들은 인간이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서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세상을 희망한다. 까만 고양이를 실수로 밟으면 안 되니 센서등을 달아야 한다고 말하는 난정, 인간만의 미감을 위해 새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는 해림, 꽃목걸이의 면실이 거북이를 죽일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라는 말은 이들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절실하게 통감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위기와 위험을 예민하게 짚어낸다. 유조선 침몰 소식에 새들을 씻기러 가는 지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정세랑의 섬세한 감수성이 가리키는 세상이 멀지만은 않음을 예감할 수 있다.

심시선 여사와 그의 가족들은 부조리와 불합리에 소리낼 만큼 강단 있으면서 세상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연약함은 세상의 빈틈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빈틈의 존재들은 강단 있는 마음을 나누며 목소리를 획득한다. 정세랑의 세계에서 선함은 강함으로 쓰인다. 선한 의지는 강한 행동을 추동하고, 어떤 존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고안해낼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정세랑이 건네주는 선함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 속에서

지난 세기 여성들의 마음엔 절벽의 풍경이 하나씩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최근에 더욱 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세상을 뜬 할머니를 깨워, 날마다의 모멸감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가슴이 터져 죽지 않고 웃으면서 일흔아홉까지 살 수 있었느냐고.
_15쪽

우윤은 방에 ‘리브 어 리틀Live a little’이라고 멋들어진 필기체로 적힌 포스터를 붙였다. 글씨 아래로 커다란 파도와 점처럼 작게 서핑하는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고, 우윤은 더이상 아이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 늘 아픈 아이가 있었으므로 서핑을 해봐야겠다고 결정했던 것이었다. 리브 어 리틀. 난 좀 살아볼 거야.
_100~101쪽

우윤은 피곤해서 바로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규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우윤은 사촌동생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꼬인 마음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누군가는 건강하게, 좋은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뿐이었다.
“아, 무지개.”
졸음에 겨워 기분좋은 얼굴로 지수가 해변 저쪽을 가리켰다. 꽤 선명한 무지개가 보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보더니 아쉬워했다.
“엉망으로 찍히네……”
“그러게. 눈에는 이렇게 잘 보이는데.”
“나 결심했어. 할머니 제사상에 완벽한 무지개 사진을 가져갈 거야.”
“뭐?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하는 거야?”
지수의 결정에 우윤은 깔깔 웃었지만, 속으로 자신도 결정했다. 완벽하게 파도를 탈 거야. 그 파도의 거품을 가져갈 거야.
_102쪽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_229쪽

“엄마 이제 안 울어?”
해림이 물었다.
“응, 안 울어. 얼른 다시 사러 갔어.”
“왜 그런 걸로 울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거야, 그 사람이 죽고 없어도. 우윤은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건조한 답을 택했다.
“속상하면 울 수도 있지.”
_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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