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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09

옮긴이의 말 질투의 심연에서 만난 치열한 글쓰기 73
아니 에르노 연보 81
저자 소개
저자 : 아니 에르노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루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얼어붙은 여자』를 발표하며 문제적 작가로 떠올랐다.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리』로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1991년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담은 『단순한 열정』을 발표, 선정성과 그 서술의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십 년 후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라 할 수 있는 『탐닉』을 출간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집착』 『부끄러움』 『사건』 『사진 사용법』 및 비평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교수와의 이메일 대담집인 『칼 같은 글쓰기』 등이 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8년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9년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으며,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들을 추려서 재수록한 『카사노바 호텔』을 발표했다.

역자 : 정혜용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 통번역 대학원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 출판 기획 네트워크 ‘사이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번역 논쟁』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한 여자』, 『집착』, 『동의』,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에디의 끝』, 『연푸른 꽃』, 『지하철 소녀 쟈지』, 『식탁의 길』,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삐에르와 장』,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에콜로지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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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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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결코 말하지 않을 유일한 진실,
“당신과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

“공기처럼 가벼운 사소한 일이라도 질투하는 이에게는 성서의 증거처럼 강력한 확증이다.”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사적인 감정, 때로는 사람을 한없이 치졸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날선 비수처럼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치명적인 감정.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그 질투라는 감정에 점령당한 한 여자의 모놀로그다.

2001년 여름, 〈르몽드〉지의 바캉스 특집 지면을 통해 선보인 이 작품은 한 땀 한 땀 직조한 듯한 특유의 응축된 문체,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치열한 글쓰기 등 짧은 분량임에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대단하다. 『단순한 열정』 『탐닉』에서 이어지는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에 젖어 그 호흡을 따라가는 사이, 독자들은 질투의 수렁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를 다시 소유하고 싶다,
다시는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면의 멈추지 않는 잔혹한 회전목마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가 원한 동거와 나의 자유로운 생활을 맞바꾸기 싫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그에게 약간 싫증이 나서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어떤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아무 때나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해선 안 된다며. 순간, 내 안에 ‘무언가가’ 자리잡는다. 그녀가 누구지? 나이는? 무슨 일을 하는 여자일까? 그를 빼앗은 그 여자에 대한 궁금증은 강박증처럼 나를 옥죄어오기 시작한다. 밤새 인터넷으로 그녀의 신원을 알아내려 애쓰고, 발신자가 뜨지 않게 그녀의 집일 가능성이 있는 곳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보는 나. 그녀의 이름을 아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그것은 “내 존재가 텅 비어버린 지금 그녀에게 속한 아주 작은 어떤 것을 빼앗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투에 사로잡힌 나는 지나치듯 그가 던진 한마디 말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도 한다. “소르본 도서관에서 작업했어”라는 그의 말이 ‘그들이 함께 소르본 도서관에서 작업했다’로 들린다. ‘언어가 갖는 소통의 기능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내겐 그의 사랑이 나에 대한 것인지 그녀에 대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언어’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를 잃었다는 아픔은 이렇듯 그 여자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되어 나의 일상을 잠식한다.

질투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 중에서 『집착』은 작가 자신이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의 추한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또한 자신을 뒤흔들어놓는 그 파괴적인 감정에 온몸을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는 ‘바늘을 심는 듯한’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그러한 강박증에서 놓여나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질투라는 ‘감정’이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되는 이 작업은 결국 작가 자신이 타는 듯한 고통과 집착에서 놓여나는 출구가 된다.

이성의 극대점에 있는 질투라는 감정과 그것의 표출 양상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 적나라함이 감정적인 글쓰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에르노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계산할 줄 아는 작가다.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치밀하게 자르고 다듬어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어놓은 문장들 사이에는 세워놓은 바늘을 바라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리잡는다. 옮긴이의 말에서

스스로를 고통이 울려퍼지는 공명상자로 만들어버리는 치열한 글쓰기
사랑을 하는 우리의 지독한 자화상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그가 부주의하게 흘린 정보를 이용해 그의 여자에게 “당신의 시원찮은 오줌보는 괜찮아졌어?”라고 상스럽게 내뱉고 싶은 욕구, 그녀의 인형을 만들어 바늘을 꽂아 저주하거나,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권총을 들이대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기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유치하지만 쉬이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또 그 여자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욕구를 차마 누르지 못하고 밤에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고야 마는 자신이, 다이어트를 하다가도 밤만 되면 폭식을 하고 마는 여자의 모습 같다고 생각하는 장면 등은 여자의 눈으로만 읽어낼 수 있는 신선한 대목이다. 매일같이 만나고 전화로 나의 일상을 속속들이 묻던 그가,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재미있게 들어주던 그가 더이상 나를 찾지 않고, 내 일상의 묘사가 더이상 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 내가 다른 여자로 대체되었다는 그 고통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묘사된 잘 짜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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