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소설가 최진영, 영화감독 민규동, 배우 손수현 추천!
우리 SF를 물들일 가장 따뜻한 색, 파랑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천선란 『천 개의 파랑』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 속에서,
있는 힘껏, 여린 풀잎 하나 놓치지 않는 올곧고 믿음직한 시선
SF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소설이다.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엉망진창인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천선란은 다정함과 우아함으로 엮은 문장의 그물로 가볍게 건져 올린다. 그의 소설은 희미해진 이들에게 선명한 색을 덧입히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식물과 자연, 다수에 속하지 않는 인간을 배제하는 발전을 추구한다면 인류는 빠르게 멸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다시 배워야만 한다.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정상성과 결함, 실수와 기회,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무엇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찬란한 소설을 만났다. 고맙고 벅차다.” -최진영(소설가)
최진영 소설가가 추천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며 행복과 위로, 애도와 회복, 자유로움과 같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안락사당할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하반신이 부서진 채로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혜’, 아득한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끝없는 애도를 반복하는 ‘보경’, 『천 개의 파랑』은 이렇듯 상처 입고 약한 이들의 서사를,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따뜻한 파랑波浪처럼 아우른다. 세계의 구석에서 누구도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게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천변만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천 개의 파랑』은 변하지 않는 것, 이 세계의 가장 느리고 약한 것들과 기꺼이 발걸음을 맞추며 걷는다.
『천 개의 파랑』은 천선란 작가가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은 한 줄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도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려 흐릿한 풀잎을 바라보는’ 천선란의 시선은 올곧으며, 개미 한 마리조차 밟지 않기 위해 느린 걸음을 연습하는 작가의 태도는 믿음직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천선란의 시선과 발걸음에 맞추어 『천 개의 파랑』을 읽는 동안 ‘부서지고 다친 작은 존재들의 끈질긴 연대 너머로만 엿볼 수 있는 촘촘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
종을 넘어선 이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회복의 연대
★“달리는 순간만큼은 저도 호흡하고 있어요”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의 이야기
2035년, 경마 경기의 기수는 인간에서 휴머노이드로 대체된다. 인간보다 가볍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휴머노이드를 태우고 뛰는 경주마들은 그전보다 훨씬 빠르게 질주해야 한다. 계속 빠르게 달리기만을 강요당하다 연골이 다 닳아버려 더는 뛸 수 없게 된 경주마 ‘투데이’, 그리고 투데이의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온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콜리는 어느 날, 늦여름의 경기에서 스스로 낙마를 선택한다. 투데이가 다리를 완전히 잃기 전에,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리는 거잖아”
-기적을 만들어낸 소녀, 연재의 이야기.
로봇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녀 연재는 집안 형편 때문에 ‘소프트 로봇 연구원’이라는 꿈을 잠시 접어둔 채 방황하고 있다. 어느 날, 연재는 우연히 들린 경마공원의 마사 한구석에서, 부서진 채 폐기를 두고 있는 휴머노이드 ‘콜리’를 발견한다. 다른 휴머노이드 기수와는 다르게 경기 중 ‘하늘을 바라보다가’ 낙마했다는 콜리에게 연재는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그렇게 기적을 이뤄낼 연재와 콜리의 만남은 시작된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진정한 자유로움을 원하는 소녀, 은혜의 이야기.
연재의 언니, 휠체어를 타는 은혜에게 바깥세상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은혜는 다리를 잃은 경주마 ‘투데이’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매일 투데이를 보러 가지만,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서야 하는 은혜의 여정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은혜에게 필요한 ‘자유’란 생체 적합성 의족이나 전동 휠체어가 아닌,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친구 주원이 건넨 용기에 힘입어, 비로소 삼차원의 은혜는, 일차원의 세상이 규정한 ‘정상성’에 도전한다.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애도하는, 보경의 이야기
불의의 사고로 소방관인 남편을 잃고, 은혜와 연재 두 딸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보경에게 은혜는 ‘아픈 손가락’ 연재는 ‘신경이 손상된 손가락’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은혜에게 의족을 달아주지 못했다는 부채감, 은혜에게만 신경 쓰느라 연재의 재능을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보경이 두 딸을 향해 뻗은 손은 언제나 닿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나 서로를 안아주는 팔보다 더욱 진실 된 것은 서로 안기 직전 뻗은 두 팔의 머뭇거리는 떨림일 것이다. 보경은 우연히 집으로 들어오게 된 휴머노이드 콜리와의 교감을 통해 다친 마음을 회복하고 조금씩 두 딸에게 다가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