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제 그만해. 잠시 네 방에 들어가 있어.”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방으로 보내라!
무너진 부모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아이의 불안을 잠재워 줄 최고의 훈육법
아이가 또 떼를 쓰기 시작한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는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점점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참다못해 아이에게 벌컥 화를 내자마자 후회가 몰려온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끝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준 채로 무력감에 휩싸인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답은 찾을 수 없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오늘날 부모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점점 더 말을 듣지 않을까? 충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안해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프랑스 아동심리학의 권위자 카롤린 골드만은 그 원인을 ‘한계의 부족’에서 찾는다. 심리상담가로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온 저자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에겐 근본적으로 고칠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겐 삶의 이유가 부족하지도, 가족과의 유대감이 부족하지도 않다. 즉, 정서적인 결핍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면에서 과할 뿐이다. 너무 수다스럽고, 너무 호기심이 많고, 너무 욕구가 강하다.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한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계란 아이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의미한다. 예컨대 식사 자리에서 숟가락을 집어 던지거나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이며, 아이가 이 경계를 넘어섰을 때는 부모의 단호한 훈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들이 지켜야 할 선을 세워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디까지 행동해도 되는지, 어떤 말은 하면 안 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한계가 설정되지 않은 아이들은 스스로 그 경계를 모색하기 위해 행동의 강도를 높여가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점점 더 충동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면서 불안에 시달리고, 부모는 통제가 불가능한 아이를 보며 점점 절망에 빠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아이의 한계는 어떻게 설정해 주어야 할까?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쾌하다. 아이가 규칙을 어겼을 때 아이를 안전한 방으로 보내 잠시 혼자 두는 ‘타임아웃 훈육’을 실행하는 것이다. 긴 설명도, 협상도 필요 없다. “이제 그만해. 잠시 네 방에 들어가 있어.”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혼자 방에 남겨진 아이는 처음엔 울고, 화를 내며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자신의 충동을 조절하고, 세상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아이가 한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이 방식을 통해 부모는 평온을 유지하고, 아이는 흔들림 없는 부모의 권위를 경험하며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제 긍정 양육의 환상에서 벗어날 때다
아이에겐 단호한 어른, 엄격한 부모가 필요하다!
한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아이는 어떤 증상을 보일까? 보통 1세 무렵이 되면 아이는 식사 시간에 첫 반항 행동을 시작한다. 음식을 쏟아붓거나 식기를 집어 던지고, 오븐 다이얼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이때 부모가 적절하게 개입해 훈육을 지속하면 아이는 차츰 식사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행동을 교정하면서 공동생활에 필요한 예의범절을 배워나간다.
그러나 적절한 훈육을 받은 적이 없는, 즉 한계 설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식사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문제 행동을 보인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자신이 어른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간주하며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단호하고도 권위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한편 일상에서 심한 불안을 느끼며 벌레나 청소기 소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무서워하거나 부모의 일시적인 부재에 과하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이의 행복과 자존감은 상처를 입는다. 제어되지 않은 아이의 충동적인 행동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아이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아이에게 정서적인 결핍이 생길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실망스러운 존재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아이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혹자는 아이를 방으로 격리시키는 훈육이 폭력적이라고 여긴다. 특히 ‘긍정 양육법’의 전문가들은 일체의 훈육을 거부하며 아이의 문제 행동을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제로 아이가 건강한 정신 구조를 확립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골드만은 긍정 양육법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부모라면 아이가 방에서 겪을 아주 일시적인 불편함과 한계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은 탓에 매일매일, 길게는 수년 동안 아이가 받을 끝없는 고통을 냉정하게 비교해 봐야 한다고. 물론 아이를 방에 보내는 일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를 혼자 울도록 내버려두는 일을 좋아할 부모는 없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아이가 조롱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아이는 그저 아이의 일을 할 뿐이다
이제는 부모가 부모의 몫을 할 차례다
우리는 흔히 교육의 목표가 훌륭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앞으로 맞이할 인생에 대비해 아이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아이는 점차 자라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수많은 좌절과 포기와 실패를 겪을 것이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우리는 아이가 실패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년기에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좀 더 편안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포기하고 단념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충동적인 행동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 골드만은 부모를 ‘어른 기린’에, 아이를 ‘아이 개미’에 비유한다. ‘어른 기린’은 ‘아이 개미’의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에도 동요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침착하면서도 담대하게 아이를 제어해야 한다. 혹여나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훈육을 주저하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와 단호한 눈빛으로 자신을 훈육하는 부모를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기린 같은 부모가 되자. 차분하면서도 의연하게 권위를 세우며, 부모가 할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