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
지은이는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서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 몰락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의 이론을 따랐던 모든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이 실패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수단이 갈수록 고도화하면서 인간 노동력은 더 비싸고 더 필요 없는 생산요소가 될 테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즉 노동의 상품화는 인간 소외를 낳고, 노동과 생산수단의 분리는 부의 편중을 낳으며 생산수단의 발전은 이를 강화할 따름이라 예측한다. 그런 만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위해, ‘인류 복지’와 ‘자기 완성’을 추구했던 마르크스의 행적을 담은 이 책을 새겨 읽을 필요가 있다.
인간적 면모까지 담아낸 평전
이 책은 마르크스의 저술은 물론이고 그의 경제론, 종교론, 여성주의 등을 포함한 수십 종의 연구서까지 섭렵한 바탕 위에 쓰였다. 그의 두 ‘스승’,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와 장인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 현실적으로도 큰 도움을 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모제스 헤스의 영향과 인연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다. 더해서 마르크스의 인간적 면모도 여실히 드러낸다. 마르크스가 평생 아버지 사진을 몸에 품고 있었다든가, “유럽 언어로 된 모든 시들”을 성실하게 열심히 읽었다든가 마르크스 사상의 원천으로 알려진 대영박물관에 때로는 “빚쟁이를 피하기” 위해서 간 적도 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 시절 김나지움 졸업논문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인류의 복지’와 ‘자기 완성’이라고 했을 정도로 조숙한 천재의 면모도 들려준다.
종교 비판은 현실 극복을 위한 ‘싹’
물론 책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종교를 어떻게 보았는지 또는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이를 위해 헤겔과 포이어바흐 등을 거론하고, 청년 헤겔파와의 관계와 슈트랄라우에서의 각성을 꼼꼼히 살폈다. 지은이에 따르면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민중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멋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후광’이었다. 즉, 그는 종교란 현실의 삶을 위무하기 위해 민중이 선택하여 사용하는 위안물이라 보았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은 역설적으로 마르크스가 종교의 현실적 효용을 인정한 말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어낸다. 결국 그의 대표작 《자본론》에서도 종교 자체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성서 구절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탐욕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와 싸운 사람이 아니라 민중이 ‘종교라는 아편’으로 고통을 달래야 하는 ‘현실’과 싸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