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칼보다 강한 것은 노래였다
이 세계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 된다
『핀란드 신화』의 영웅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싸운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대신 상대가 태어난 기원을 노래한다. 이름과 기원을 정확히 알고 말하면 적을 지배하고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주문 한 줄을 얻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가고, 괴물의 뱃속까지 들어가는 위험도 감수한다. 이 세계에서는 힘센 자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히 말하는 자가 세상을 움직인다.
노래와 주문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자가 마법의 현악기 칸텔레를 연주하면 산과 바위가 흔들리고, 나무와 동물들이 음악에 이끌려 모여든다. 잘생긴 전사가 노래를 불러 음식과 술을 불러내고, 놀라운 대장장이는 신비한 힘으로 망치를 두드려 상상 속의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말과 노래로 불러내는 것. 『핀란드 신화』에서 마법의 주문은 현실을 벗어난 초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질서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마법으로 움직이는 판타지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핀란드 신화』의 매력은 현대 판타지와 닮았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판타지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방식, 즉 말과 노래에 세계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오래된 상상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것을 노래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핀란드 신화』의 영웅들은 끊임없이 지혜를 찾아 떠돈다. 칼보다 노래가 강하고, 힘보다 지혜가 앞서는 세계.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낯선 세상이 펼쳐진다.
그리스 로마와 북유럽 신화 너머,
처음 만나는 북방의 상상력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의 영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강한 신체와 무기가 떠오른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들고 괴수를 때려잡으며, 토르의 손에는 늘 묠니르가 들려 있다. 그러나 『핀란드 신화』의 영웅들은 조금 다르다.
핀란드 신화 속 영웅들은 항상 승리하지는 못한다. 베이네뫼이넨은 적과 노래 대결을 벌여 늪에 빠뜨리지만 상대가 살려달라고 빌자 선뜻 구해준다. 레민케이넨은 죽음에 이르렀다가 어머니의 기도로 다시 살아난다. 불행한 영웅 쿨레르보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 애쓰지만 끝내 비극을 맞는다. 실수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도망치면서도 다시 자신의 운명과 맞서는 인물들. 완벽한 영웅의 승리보다 평범한 인간의 삶에 가까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르다. 핀란드 신화에서 숲과 호수, 바람과 불, 동물과 나무는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간을 돕고, 때로는 위협하며, 인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영웅들은 자연을 힘으로 꺾기보다 그 안에 깃든 질서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핀란드 신화』는 인간과 자연이 맞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읽힌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삼포’를 둘러싼 모험도 단순한 보물찾기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풍요를 가져다주는 삼포를 만들고 빼앗으려는 영웅들의 욕망, 그것을 지키려는 마녀 로우히의 집요함, 그리고 결국 바다에서 삼포가 부서지는 결말까지. 부를 둘러싼 욕망과 경쟁,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과 잃는 것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그래서 삼포를 둘러싼 이야기는 신비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모험인 동시에, 풍요를 얻고 지키려 했던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흩어졌던 노래가 어떻게
한 민족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핀란드 신화』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렇게 장대한 서사와 독특한 인물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베이네뫼이넨의 등장부터 시작해 구혼 서사, 모험 서사, 삼포를 둘러싼 전쟁 서사, 새로운 세상의 탄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한 작품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다. 19세기 핀란드의 작가 뢴로트가 만난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르던 노래들이었다. 같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했지만 내용과 순서가 달랐고, 어떤 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였으며, 다른 노래와 연결되지 않았다. 뢴로트는 이 수많은 전승을 그대로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흩어진 노래 사이에서 공통된 인물과 사건을 찾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조율하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여정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서로 무관해 보였던 노래들이 뒤로 갈수록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앞에서 등장했던 인물과 사건이 뒤에서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난다.
현대지성 클래식 『핀란드 신화』는 이 긴 서사를 독자가 하나의 흐름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처음 만나는 이름과 지명 때문에 길을 잃지 않도록 지도와 인물 관계도로 세계를 먼저 펼쳐 보이고, 흩어진 노래가 한 편의 거대한 신화로 탄생하는 과정까지 해설과 연보로 짚었다. 이야기의 재미와 작품의 탄생 배경을 함께 따라갈 수 있다. 무엇보다 노래로 전해진 서사를 ‘읽히는 이야기’로 옮기면서도, 주문과 대화처럼 인물의 목소리가 직접 담긴 부분은 행갈이를 살려 원작 특유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수백 년 전 누군가가 부른 노래는 어떻게 한 민족의 서사시가 되고, 다시 톨킨 같은 창작자의 상상력을 움직였을까?
『핀란드 신화』는 그 오래되고도 기묘한 상상력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책 속에서
공기의 딸이자 사랑스러운 여신, 자연의 정령인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광활한 하늘과 부드러운 허공에서 오랜 시간 홀로 떠돌았다. 그러나 늘 홀로 지내다 보니 점차 무료하고 지루해졌고, 남은 인생이 허무하고 절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마타르는 좀 더 아래로 내려와 드넓은 바다의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겼고, 물의 어머니가 되었다.
- 1장 베이네뫼이넨의 탄생 (31쪽)
그러자 베이네뫼이넨은 머리를 들더니 파도를 가르고 바닷물 위로 올라왔다. 그는 독수리의 등 위에 자리를 잡고, 날개 끝을 단단히 붙잡았다. 하늘의 왕 독수리는 등에 베이네뫼이넨을 태우고 바람길을 따라, 매서운 봄바람의 행로를 따라 포욜라의 너른 내륙, 음산한 사리올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수리는 목적지에 도달해 베이네뫼이넨을 내려놓고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 7장 베이네뫼이넨과 로우히의 거래 (83쪽)
과연 영웅은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까? 세상의 영웅들은 자신의 집과 가정을 지키기 마련이다. 문과 지붕, 창문, 횃불이 켜져 있는 기둥, 안뜰로 이어지는 길까지, 모든 출입구를 단단히 지킨다. 또한 영웅은 여인들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쾌활한 처녀들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련한다.
- 12장 깨져버린 킬리키의 맹세 (140쪽)
일마리넨은 용광로에 금과 은을 넣었다. 그리고 은 자루와 구리 손잡이가 달린 황금 쟁기를 만들어냈다. 사지를 보호할 수 있도록 쇠 장갑과 쇠 신발, 갑옷도 만들었다. 그는 쇠 갑옷을 입고 강철 띠를 두른 후, 쇠 장갑을 끼고 쇠 신발을 신었다. 그런 다음 사납게 날뛰는 말에 마구를 씌운 뒤, 뱀이 우글거리는 들판으로 히이시의 밭을 갈러 갔다.
- 19장 일마리넨의 고난 (223쪽)
모든 의자들은 은으로 만들어졌고, 바닥 전체는 구리 타일로 깔려 있었다. 모든 식탁은 황금으로 장식되었고, 그 아래에 비단 깔개가 깔렸으며, 모든 벽난로는 구리로 장식되었고, 화로석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화로 선반 위에는 조개 껍데기들이 놓여 있었으며, 칼레발라의 목재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21장 일마리넨의 결혼식 (255쪽)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 검은 뇌조 한 무리가 보였다. 거품을 흘리며 달리는 말의 앞으로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갔다. 그 새들의 깃털 몇 개가 레민케이넨의 앞에 떨어졌다. 레민케이넨은 마법의 힘을 기대하며 그것들을 주워 가죽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포욜라로 가는 도중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곤궁한 상황에 놓이면 무엇이든 쓸모가 있기 마련이다.
- 26장 뱀의 기원 (330쪽)
레민케이넨은 처녀들과 함께 성으로 향했다. 성에 도착한 그는 마법의 노래를 불러 식탁 가장자리로 술주전자를 불러냈다. 맥주 거품이 이는 황금 술잔도 불러냈다. 레민케이넨은 허기를 달래주는 마법의 노래를 불러 그릇들을 맛난 음식으로 채웠다. 잔에는 꿀술이 넘칠 만큼 가득 채우고, 달콤한 버터와 맛좋은 빵, 베이컨, 생선, 송아지와 사슴 고기 등 온갖 산해진미를 불러냈다.
- 29장 섬으로 도피한 레민케이넨 (362쪽)
사흘이 지나고 운타모의 전사들은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 쿨레르보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떠났다. 그러나 그 놀라운 아이는 수초 속에서 익사하지 않고 무사히 살아 있었다. 심지어 버드나무 바구니에서 나와 손에 황금 낚싯줄이 달린 구리 낚싯대를 들고, 물살 위에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었다. 쿨레르보는 흰송어를 낚고, 물의 깊이를 재고 있었다.
- 31장 악의 자식 쿨레르보 (387쪽)
그 말을 마치자마자 여인은 순식간에 눈썰매에서 뛰어내려 휘감아 흐르는 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녀는 요동치는 폭포와 매서운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쿨레르보의 사랑스러운 누이는 그렇게 가족을 만난 지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불과 물의 죽음을 맞이하여 투오넬라에서, 마날라의 성스러운 강에서 비로소 평온을 찾았으리라.
- 35장 쿨레르보의 불운 (425쪽)
과연, 용광로 안에서 한 처녀가 솟아났다. 그녀는 금발 머리카락에 은 얼굴을, 아름다운 용모와 자태를 뽐냈다. 이 모습을 본 일꾼들은 모두 두려움과 놀라움,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오직 일마리넨만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만든 그 신부를 밤낮없이 망치질로 다듬었다. 그는 여인에게 다리를 만들어주고, 손과 팔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신부는 그 다리로 걷지도, 그 팔로 일마리넨을 껴안지도 못했다.
- 37장 일마리넨의 황금 신부 (445쪽)
나이 든 베이네뫼이넨, 영원한 지혜의 현자는 칸텔레를 연달아 연주했다. 음악은 먼 곳까지 울려 퍼졌다. 산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계곡이 그 소리를 들었다. 단단한 암석이 산산조각 갈라져 조각들이 물 위로 첨벙 뛰어들었다. 조약돌이 바닷물 위로 솟아오르고, 소나무와 참피나무는 유쾌하게 웃고, 오리나무와 사시나무는 음악에 맞춰 깡충깡충 뛰고 몸을 흔들었다.
- 44장 두 번째 칸텔레의 탄생 (505쪽)
태양이여, 빛과 생명의 근원이여, 매일 아침 솟아올라
우리에게 즐겁게 인사해다오.
파종과 고기잡이, 사냥이 잘되도록
우리의 집을 평화와 풍요로 채워다오.
우리에게 건강을 주고, 얻을 것을 손에 쥐여주고,
행운이 우리의 손끝에 닿게 해다오.
- 49장 다시 돌아온 태양과 달 (5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