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역자의 말
이 책은 마이라 칼만의 책 중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기록이다. 칼만 가족의 역사 사이사이에,
톨스토이와 카프카, 말러와 체호프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불러와 단상을 이어간다. 가족사와 예술사가 어우러진 책이라고 할까.
무엇보다도 이 책은 특정 인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품고 살아가는 ‘후회’라는 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었던 순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죄책감. 칼만은 그 감정을 ‘후회(remorse)’라는 이름으로 불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후회를 결코 비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아왔기에 사랑했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후회’를 경험한다. ‘후회’는 삶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흔적인 셈이다. 칼만이 밝고 화려한 색상으로 그린 꽃, 과일, 접시, 의자 등은 모두 평범해 보이는 사물이지만, 실은 그 하나하나에 한 사람의 생애가 들어 있다. 고요하게 정지한 사물들 속에는 사실 사랑과 배신, 기쁨과 슬픔, 상실과 그리움 등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그림 곁의 글이 펼쳐 보이고 있다.
마이라 칼만은 거창한 교훈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생생한 그림 곁에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엉뚱하고 어느 순간엔 가슴을 찌르는 짧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각자의 기억과 후회를 반추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기꺼이 모든 이의 회고록이 될 것이다.
이 그림책은 발걸음이 자유로운 산책과 같은 책이다. 마음을 열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수월하게 이 책의 진면목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책에 언급된 말러의 가사를 여기 다시 옮겨둔다.
모두의 마음속에 노래하는 새가 있기를.
삶은 어둡고
봄은 여기 와 있고
새들은 노래한다.
2026년 여름
한정원
책 속에서
행복한 가족.
불행한 가족.
다 똑같지, 그렇지?
아아. 아아. 아아.
(첫 문장)
소피아 레브스는 레프 톨스토이 백작과 결혼했다.
시작은 미친 듯한 사랑이었고,
그들 사이에는 열세 명의 아이가 있었으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서로를 증오했다.
(...)
고통에는 회한도 담겨있을까?
나는 톨스토이 부부의 속내까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쓸 때면, 안개가 내려앉는다.
(16~18쪽, 레프와 소피아 中에서)
카프카는 속이 뒤틀렸고, 메스꺼웠다. 말러도 그랬다.
(...)
말러는 이런 가사에 음악을 입혔다.
삶은 어둡고.
봄이 여기 와 있고.
새들은 노래한다.
(53쪽, 카프카와 말러 中에서)
내 사촌의 아버지는 아주 젊었을 때 우리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의 가족이 홀로코스트로 몰살당한 후 그는 우리 가족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아주 온화하고 친절했다. 손가락 하나가 굽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그는 늘 웃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주름져 있었다. 내 사촌은 그가 천사였다고 말했다.
천사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천사가 되는 건 아니다.
그건 본성에 깃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91쪽, 츤도쿠 中에서)
이 방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방에서, 나는 남편과 처절하게 싸웠다.
그 사람 없이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는데. 분노와 실망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뭣 때문에?
대단한 이유 때문이기도, 아무것도 아닌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죽었다.
나는 슬퍼하고 울며 상실감에 빠졌다. 내 안의 일부는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하지만. 그가 만약 아직 여기 있다면,
아니면 그보다 더 좋게 그가 죽음에서 돌아온다면,
우리는 더 현명해져서 싸우지 않게 될까?
우리의 나날이 사랑의 꿀 속에서 유유히 흐르게 될까?
(109쪽, 티보르 中에서)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깨달았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벼락맞은 듯 갑자기, 어머니가 떠났다는 것을.
(...)
나의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온순하고 치아도 다 빠진 채로.
어쩌면 아버지는 상상했으리라. 그의 침대 곁에 놓인 꽃들을.
신선한 과일을.
하지만 누가 그것들을 가져다주겠는가?
(68쪽, 다시, 페사흐 中에서)
다시 우리가 사랑하는 책들로 돌아와서.
그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방 안을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으로 채울 뿐.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된다.
(93쪽 츤도쿠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