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정말 예술인가?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가?
-예술의 가치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우리는 예술 작품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가?
-소유자는 작품을 파괴할 권리까지 가지는가?
-AI가 만든 결과물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는 여섯 개의 법정을 따라가며,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생생한 사건과 날카로운 판결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간다. 독자는 예술의 역사를 뒤흔든 브랑쿠시, 앤디 워홀, 뱅크시, 클림트의 사건부터 AI가 만든 작품을 둘러싼 최신 사례까지, 실제 사건과 판결을 살펴보며 법이 예술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책 말미에는 예술법의 주요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낸 용어 해설과 함께, 관람자와 컬렉터 등 일반인은 물론 창작자에게도 도움이 될 예술법 관련 Q&A와 체크리스트를 수록했다.
이제, 변기 하나로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뒤샹의 ‘선언’에서부터 AI가 법정에 선 가장 현대적인 전장에 이르기까지 ‘창작 전쟁’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치열한 대격돌의 끝에서 우리는 예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술인가?”
뒤샹에게서 시작된 정체불명의 ‘변기’부터
카텔란의 벽에 붙인 ‘바나나’까지
현대미술의 반격은 정체불명의 ‘변기’에서 시작되었다. 1917년, 기성품 변기에 가상의 이름 ‘R. MUTT’를 휘갈겨 쓰고 ‘샘(Fountain)’이라 명명한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뒤흔든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예술가들이 맞닥뜨린 전장은 다름 아닌 차가운 ‘법정’이었다.
법정은 물었다. 전통적인 형태를 닮지 않은 브랑쿠시의 금속 덩어리를 과연 예술품으로 인정해 면세 혜택을 주어야 하는지. 쇼윈도에 걸린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는 예술인지, 아니면 풍기문란을 선동하는 외설인지. 이 책의 첫 번째 법정은 미술사를 관통해온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 ‘이것은 예술인가?’에서 시작된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이 거액에 거래되며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은 다시 한번 정점에 이르렀고, 이후에도 예술계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법정의 판결문은 현대미술의 역사와 정확히 겹친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 키치의 왕 제프 쿤스,
오바마를 아이콘으로 만든 셰퍼드 페어리…
창작과 표절의 경계에서 법정에 서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을 둘러싼 법적 쟁점은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 포스트모던 키치의 왕 제프 쿤스, 오바마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거리예술가 셰퍼드 페어리까지, 이름난 예술가들 역시 예외 없이 법정에 섰고 그곳에서 승패를 가렸다.
이 책의 두 번째 법정은 ‘창작과 표절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거장의 독창적인 재해석과 원작자의 저작권이 충돌한 앤디워홀재단과 린 골드스미스의 분쟁, 남의 흑백 엽서 사진을 조각으로 옮겨 수억 원에 판매한 제프 쿤스와 아트 로저스의 사건, 대기업의 고소마저 예술적 퍼포먼스로 끌어들인 미스치프의 도발적인 전략까지. 예술은 끊임없이 차용과 도용, 창작과 표절의 경계를 넘나들며 법의 판단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이 도용이나 표절의 범위를 넘어, 작품 자체의 ‘진위’에 있다면 어떨까?
“AI는 죽은 거장을 살려내고, NFT는 불탄 그림을 부활시킨다”
위작 논란, 누가 진실을 정의할 권한을 가지는가
나치의 최고 권력자마저 완벽하게 속인 뒤, 경찰의 감시 속에 직접 위작을 그려 반역죄를 벗어난 천재 위조범이 있다. 네덜란드 화가 한 반 메헤렌의 이야기다. ‘다빈치의 잃어버린 걸작’이라 불린 〈살바토르 문디〉는 약 5천억 원에 낙찰되며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지금도 ‘복원’과 ‘위작’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347년 만에 재탄생한 ‘AI 렘브란트’는 이제 위작 논란이 캔버스를 넘어 서버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죽은 거장을 살려내고, NFT는 불타버린 그림을 디지털 세계에서 부활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더욱 흐릿해진다. 세 번째 법정에서는 예술품에 대한 진위 판단의 어려움에서 나아가 누가 진실을 정의할 권한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를 파고든다. 그리고 논의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 저자는 진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이 진위 판단이 곧 돈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가리켜 보인다.
“경매 망치를 내려치는 순간,
예술은 숫자가 되고 법은 이야기가 된다.”
낙찰과 동시에 그림을 파쇄한 뱅크시의 기행은 파괴 행위도 새로운 가치가 되는 미술시장의 역설을 증명했다. 미술품 지분을 쪼개어 파는 교묘한 수법으로 천억 원대 폰지사기를 친 이니고 필브릭의 전말은 예술이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어떤 재앙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네 번째 법정은 돈과 예술의 관계를 묻는다. 저자는 미술품이 본질적으로 가치 변동성이 큰 자산인 만큼, ‘확정 수익’과 ‘원금 보장’을 약속하는 순간 사기의 영역에 들어선다고 경고한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유사 미술품 사기극, ‘아트테크’ 사건을 통해서는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되짚는다. 작가의 인지도와 작품 가격, 투자 가치를 배제한 채 작품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을까. 가격과 가치, 소유와 권리 사이의 간극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바로 소유권이다.
1천만 달러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태운 불꽃쇼?
작품을 소유한 사람은 파괴할 권리도 가지는가
다섯 번째 법정에서는 예술 작품을 둘러싼 권리의 충돌을 다룬다. 만든 자의 권리와 가진 자의 권리가 충돌할 때,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야 하는가? 작품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그것을 파괴할 권리도 있는가? 장 뒤뷔페가 조형한 정원은 발주사 르노의 단순 변심으로 사라져버렸다. NFT 에디션을 팔기 위해 프리다 칼로가 일기장에 남긴 원작을 불태운 암호화폐 업자의 쇼와, 뱅크시 작품을 NFT로 발행한 뒤 원본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벌어졌다. 그러나 저자는 원작을 불태우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인격권 침해이며, 원작 이미지를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복제해 NFT로 발행하는 것 역시 저작재산권 침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법은 일반적으로 “내가 산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따르지만, 예술에서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예술 작품은 단순한 재산을 넘어 문화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소유는 권리인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80시간 소요, 900번의 프롬프트”로 탄생한 AI 예술 작품
법정에 선 비인간, 예술의 본질을 재정의하다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블록체인 위에 저장된 JPG 파일은 690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는 인간이 만든 예술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만약 예술을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라면? 이 책의 마지막 법정은 미래로 향한다. 기술과 자본의 최전선으로 이동한 예술 법정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피고석에 앉아 있다. 이것은 예술의 진화를 넘어 어쩌면 예술의 종말을 가리키는 징후가 아닐까?
그러나 법률가로서 저자의 관심은 AI 알고리즘이 스스로 창작한 결과물에도 저작권을 부여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나아간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예술의 정의는 그 어느 때보다 근본적인 도전에 봉착해 있다. “창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학습하고, 조합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의 창작 방식이 과연 인간 예술가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법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물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규제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은 예술을 가둘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은 늘 법의 경계에서 태어났다”
이 책에 소개된 드라마틱한 법정 공방들은 단순한 예술 범죄나 가십거리가 아니다. 제도의 한계와 기득권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온 위대한 천재 예술가들의 반격의 역사이기도 하다. 관습과 규정을 유지하려는 법과 기존의 틀을 깨고 낯선 세계로 나아가는 예술. 이 두 영역이 법정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 공인되었다. 법정은 예술을 심판하는 곳인 동시에 새로운 미학을 세상에 선포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 치열한 예술 법정의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 예술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캔버스 위 물감이나 거대 자본이 만든 이름값, 블록체인에 새겨진 디지털 코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인간의 영혼과 시대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때로 파산하고 때로 매국노로 몰리거나 뼈아픈 패배를 겪었지만, 그들이 법정에 던진 질문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미술사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